윤종신, <팥빙수> / W, <Lemon>
<팥빙수> -윤종신
팥 넣고 푹 끓인다 설탕은 은근한 불
서서히 졸인다 졸인다
빙수용 위생 얼음 냉동실 안에 꽁꽁
단단히 얼린다 얼린다
프루츠 칵테일의 국물은 따라내고
과일만 건진다 건진다
체리는 꼭지체리 체리는 꼭지체리
깨끗이 씻는다 씻는다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
팥빙수 팥빙수 여름엔 왔다야
빙수기 얼음 넣고 밑에는 예쁜 그릇
얼음이 갈린다 갈린다
얼음에 팥 얹히고 프루츠 칵테일에
체리로 장식해 장식해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
팥빙수 팥빙수 여름엔 이게 왔다야*
주의사항 팥 조릴 때 설탕은 충분히
찰떡 젤리 크림 연유 빠지면 섭섭해
**
빙수야 팥빙수야 싸랑해 싸랑해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 마 녹지 마
난나나 나난나나나 나난나나
빙수야 팥빙수야 싸랑해 싸랑해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 마 녹지 마
노래 <팥빙수>는 윤종신 9집 앨범 <<그늘>>에 수록된 곡이다. 히트 발라더이자 엔터테인먼트 사장님인 동시에, 그만의 음악 색깔을 확실하게 가진 실력 있는 프로듀서 윤종신. 남들이 다 하는, 다 부르는 그런 뻔한 노래가 아니라 항상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아이디어들이 반짝이는 그. 2010년 '꾸준히 열심히 하자'라는 다짐으로 시작한 <월간 윤종신>이라는 프로젝트 앨범이 10년째 성행 중인 이유도 그의 꾸준한 창작정신이 빚어낸 결과물 아닐까.
어릴 때 매달 정기 구독했던 만화책 <점프>,<밍크>,<나나>처럼 음악도 이렇게 매달 기다려지는 앨범이 있을 수 있다니. 또 월말에 탐나는 별책부록과 선물이 많이 딸린 12월호처럼, <월간 윤종신>은 하나하나 차곡차곡 모아져서 <행보 20XX 윤종신> 시리즈로 완성된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가수가 컴백하기까지 보통 1년의 공백 기간이 걸렸는데, 요즘은 하도 시대가 빠르고 뮤직 앱으로 최신 곡을 바로 듣는 시대다 보니 곡 하나 딸랑 들어있는 싱글 앨범으로 가수와 팬과의 만남이 잦은 건, 디지털 시대가 주는 또 하나의 신기한 현상 중 하나같다. 윤종신은 그런 시대적 특수성과 시의성을 누구보다 잘 포착해 음반 산업의 형태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포장한 창조적인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다.
다시 노래 이야기로. <팥빙수>는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나온 노래다. 뜨거운 여름, 아마 당시 나는 벅스 뮤직을 즐겨 들었기 때문에, 거기서 처음 이 노래를 알게 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데 듣자마자 충격인 동시에 ‘세상에 이런 노래가 나오다니!’하고 감탄을 했었다. 뻔한 사랑과 이별 노래가 가요계에서 잠시 주춤하는 유일한 계절, 여름. 타오르는 태양과 긴 장맛비를 뚫고 가요차트 1위를 석권하려면 날씨의 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여름에 주로 바다와 관련된 댄스곡이 많이 나오지 않나.
(물론 <<그늘>>이라는 앨범 안에 고속도로 Romance, 해변 Mood Song, 바다 이야기, 바캉스 마니아 같은 노래가 들어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 노래는 바다도 아니고 바캉스도 아닌 팥빙수를 노래하고 있다. 한국인이 여름 하면 떠올리는 보양식이 삼계탕이라면, 여름 디저트는 단연 팥빙수! 지금은 음료업계 전설의 곡이 된 이 노래 덕에 당시 팥빙수 매출도 심심찮게 올랐다나 뭐라나. 윤종신 씨가 나중에 팥빙수 가게를 차려서 이 노래를 1년 내내 틀어도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네. 꼭 갈게요!
팥 넣고 푹 끓인다 설탕은 은근한 불
서서히 졸인다 졸인다
빙수용 위생 얼음 냉동실 안에 꽁꽁
단단히 얼린다 얼린다
프루츠 칵테일의 국물은 따라내고
과일만 건진다 건진다
체리는 꼭지체리 체리는 꼭지체리
깨끗이 씻는다 씻는다
요즘은 ‘설빙’이라는 빙수 전문점이 생기면서 4계절 내내 팥빙수, 우유빙수를 맛볼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예전에만 해도 팥빙수가 흔하게 파는 메뉴가 아니고 제과점이든 패스트푸드점이든 어딘가를 찾아 들어가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팥빙수에 대한 희소성(?)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리고 빙수 마니아들을 위해 언제부턴가 얼음을 가는 미니 제빙기도 판매가 되어서 집에서 직접 빙수를 만들어 드시는 분들도 속속 출몰했지만, 필자의 집은 제빙기와 팥빙수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을 정도의 호들갑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사서 먹었다.
가사를 보면 팥을 설탕에 졸이는 것부터 얼음을 얼리는 것, 그리고 후르츠 칵테일의 과일이 국물에 휩쓸려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건져내고, 체리를 깨끗이 씻는 것까지 만드는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다시 한번 적지만, 정말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 수 있을까. 팥빙수 느낌에 딱 맞는 유치한 멜로디와 기대감을 갖게 하는 가사까지...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
팥빙수 팥빙수 여름엔 왔다야
윤종신 씨는 정말 팥빙수를 열라 좋아하셔서 이 곡을 쓰신 걸까?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그런 날이 올까? “실례지만, 어떤 맛의 빙수를 좋아하시는지요...” 왔다야는 와따(최고를 뜻하는 은어)를 의미하는 게 맞습니까?
빙수기 얼음 넣고 밑에는 예쁜 그릇
얼음이 갈린다 갈린다
얼음에 팥 얹히고 프루츠 칵테일에
체리로 장식해 장식해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
팥빙수 팥빙수 여름엔 이게 왔다야
주의사항 팥 조릴 때 설탕은 충분히
찰떡 젤리 크림 연유 빠지면 섭섭해
빙수용 투명한 크리스탈 그릇에 갈린 얼음을 쌓고, 그 위에 팥을 얹히고 과일과 체리로 장식.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주의사항! 설탕이 충분히 졸여진 팥이어야 하고, 찰떡과 젤리, 아이스크림, 연유가 빠지면 세상 서운하다는 것!!! 팥빙수에 떡이 빠져서 나오면 뭔가 건빵 과자 안에 별사탕이 빠진 느낌이랄까.....
그리고 또 다른 주의사항. 팥은 ‘졸이다’가 아니라
‘조리다’로 적어야 올바른 표준말이라는 것. <팥빙수> 가사 앞 소절을 보면, 대부분의 음원사이트 가사에 ‘졸인다’라고 적혀있어서 노랫말을 옮길 땐 그냥 뒀지만, 원래는 ‘조린다’가 맞다.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을 참고하면 ‘조리다’는, 고기나 생선, 채소 따위를 양념하여 국물이 거의 없게 바짝 끓인다는 뜻이 있고, ‘졸이다’는 ‘졸다’의 사동사로, 찌개, 국, 한약 따위의 물이 증발하여 분량이 적어진다는 뜻이 있다. 즉, 팥이나 설탕은 처음부터 물기가 있는 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고기나 생선처럼 간이 배게 한다는 의미에서 ‘조리다’, ‘조릴 때’로 써야 맞춤법 상으로는 맞다는 것! 잊지 마세요^^ (사실 노래 부를 때는 의미만 잘 이해되면 되기 때문에 맞춤법을 따지는 게 참 쪼잔하게 보이긴 하다. 직업병은 어쩔 수 없구나)
빙수야 팥빙수야 싸랑해 싸랑해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 마 녹지 마
난나나 나난나나나 나난나나
빙수야 팥빙수야 싸랑해 싸랑해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 마 녹지 마
<팥빙수> 노래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은 역시 여기. 빙수야~ 파앝빙수야!! 싸랑해 싸랑해! 빙수야~ 파앝빙수야!! 녹지 마 녹지 마! 빙수를 너무나 사랑하신 작곡가님의 애절한 고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여름에는 이별 때문에 흘리는 눈물보다, 빙수가 녹을 때 느끼는 속상한 심정이 리스너들에게 더 먹히지 않나 하고 조심스러운 소견을 적어본다.
+윤종신의 <팥빙수>와 함께 추천할 노래는 제목만 들어도 입안이 상큼해지고 침이 고인다는 W의 <Lemon>.
<Lemon (feat. 민경나)> -W
Slow motion 지루한 여름과
긴 한숨 긴 하품 긴 하루
Something cool 너의 졸린 눈에
새파란 새 파도 새 바람을
*쓰디쓴 잠의 소금기
건조한 눈을 씻어 줄
이 레몬을 너에게*
귀여워 너의 새 노래는
더 작고 더 낮고 더 여린
신기해 여름 감기 걸린
네 음성 네 투정 네 땀방울
**
투명한 꿈의 유리알 유희
서글픈 Digital의 편지들
어느새 희미해진 기억 속으로
안녕 안녕
무거운 잠의 기름기
먼지 낀 귀를 씻어 줄
이 레몬을 너에게
이 레몬을 너에게
이 레몬을 너에게
너에게
너에게
노래 <Lemon>은 앞서 #7. 비 오는 날을 주제로 쓴 글에서 언급한 밴드 W의 곡이다. W의 2005년 앨범 <<Where The Story Ends>>에서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와 함께 수록된 곡으로 여름날의 덥고, 건조하고, 지친 일상을 통통 튀고 귀여운 애니메이션 사운드와 개성 있는 노랫말을 담았다. 이 앨범의 다른 숨은 명곡들 못지않게 돋보여서 ‘여름’하면 떠오르는 나의 추천곡.
노래를 듣고 있는데 뭔가 만화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실제로 노래의 앞부분은 우쿨렐레 소리로 하와이의 어느 장소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중간중간 만화에서 나오는 핑~ 하는 효과음과 도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린다. 만화 <톰과 제리>에서 제리가 톰을 약 올리고 도망가면, 열이 잔뜩 받은 고양이 톰의 다리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변하면서 핑~ 하는 효과음이 나는 것처럼.
Slow motion 지루한 여름과
긴 한숨 긴 하품 긴 하루
Something cool 너의 졸린 눈에
새파란 새 파도 새 바람을
원곡에서는 앞에 두 소절이 마치 확성기에 대고 말을 하는 것처럼, 약간 멀리 있는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여름이면 흔히들 하는 장난,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에 입을 대고 아~~~ 하면 소리가 2중, 3중으로 나눠져 들리는 그런 장난처럼 보여서 재밌다. 지루한 여름과 졸린 눈. 긴 한숨, 긴 하품, 긴 하루를 대체해 줄 무언가. 새파란 새 파도, 새 바람이다. 라임이 이렇게 잘 맞다니. 랩 가사를 써도 정말 잘 쓰실 듯.
쓰디쓴 잠의 소금기
건조한 눈을 씻어 줄
이 레몬을 너에게
지루하고 졸린 여름에 남은 잠을, 쓴 소금기가 남아있다고 표현했다. 건조한 눈을 씻어주기 위해서 상큼하고 노란 레몬을 당신에게 선사하고 싶어요.
귀여워 너의 새 노래는
더 작고 더 낮고 더 여린
신기해 여름 감기 걸린
네 음성 네 투정 네 땀방울
이 부분부터 약간의 보사노바 풍 재즈 느낌이 나는데, 여름 음악에 어찌나 이리 잘 어울리는지! W는 정말 사람들에게 잊혀지면 안 될,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이들의 음악을 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일렉트로니카 밴드라는 수식어를 부끄럽지 않게 하는 진짜 음악을 아는 밴드다.
다들 덥다고 난리인데, 나 혼자만 오뉴월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려서 콧물 쏟고, 재채기하고, 오한에 시달릴 때... 겨울이 아닌 여름에 감기에 걸렸다는 게 뭔가 민망하기도 하고, 아프다고 티 내기도 싫고, 근데 몸은 정상이 아니고. 밖은 더운데 내 속은 추운 이상한 느낌. 그런 서럽고 서글픈 상황을 알아주는 이. 나의 아픈 음성과 투정과 땀방울을 한눈에 알아보는 사려 깊은 사람에게 레몬 하나 받아보고 싶어 지네. 갑자기.
투명한 꿈의 유리알 유희
서글픈 Digital의 편지들
어느새 희미해진 기억 속으로
안녕 안녕
이 앨범이 나온 년도인 2005년에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당시 꿈 많은 스무 살이자 국문과 여대생으로서 도서관을 매일 들락날락거리며 세계문학에 빠져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읽은 책의 권수는 손에 꼽힐...) 책 욕심이 많은 만큼 글 잘 쓰는 사람들에게도 묘한 질투심이 이때부터 나를 자극시켰고, 노래를 들을 때 어떤 가사가 좋은가 유심히 보게 된 것도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W의 <<Where The Story Ends>> 앨범의 많은 곡들은, 마치 현대시와 단편 소설을 읽는 것처럼 나에게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많이 느끼게 했다. 많은 해석이 가능한 고차원적인 노랫말 부분.
<Lemon>을 듣다가 귀에 들어온 ‘투명한 꿈의 유리알 유희’. 도서관 3층 어문학 자료실에서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코너를 기웃대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던 나는 <유리알 유희>가 어느 유명한 소설가의 작품 제목이라는 것을 직감했고 바로 찾아봤다.
알고 보니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생애 마지막 소설로 그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 1931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1943년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출판됐다. 이 작품으로 1946년 노벨 문학상도 받았다고. 부제는 <유희의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회상>. 줄거리 요약은 이렇다. 헤르만 헤세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 최대의 비극을 몰고 온 정신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욕망과 금욕, 혼돈과 질서, 삶과 죽음, 동양과 서양, 선과 악 등 양극의 문제를 풀기 위한 평생의 고민을 이 소설 속에 풀어놓았다고. ‘공상 과학 소설의 현대적 고전’이라 한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이 고전은 꼭 읽어야지 다짐했지만 결국 읽지 못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대출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재학생 신분을 박탈당했다. 끙. (학교 도서관에 물어봤더니 졸업생은 한 달에 5만 원을 내면 빌려준다고) 이 노래를 포스팅하는 기념으로 올여름에 <유리알 유희> 독파를 반드시 완성하리라!
어쨌든 <Lemon>의 가사를 쓴 분께서 이 소설 <유리알 유희>를 실제로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나에게는 이 단어가 획기적으로 다가왔었다는. 서글픈 디지털의 편지들도. 바쁘고 정신없는 현대를 살아가면서 골치 아픈 문제들을 여름잠 너머로 멀리 보내고 싶은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생각해봤자 해결되지 않을 쓸데없는 고민은 잠시 희미해진 기억 저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