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김연우,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 이소라, <바람이 분다>

by 유작가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 김연우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덧문을 아무리 닫아 보아도

흐려진 눈앞이 시리도록

날리는 기억들

어느샌가 아물어버린

고백에 덧난 그 겨울의 추억

아 힘겹게 사랑한 기억

이제는 뒤돌아 갔으니


바람은 또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내 맘에 덧댄 바람의 창 닫아 보아도

흐려진 두 눈이 모질게 시리도록

떠나가지 않는 그대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 같아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는 김연우 3집 <<사랑을 놓치다>>에 수록된 곡으로, 김연우 특유의 봄바람 같은 목소리와, 고음이든 저음이든 상관없이 폭넓게 안정된 음역대를 밑바탕으로 완성된 명품 곡이다.

루시드폴 작사, 작곡으로 간지러운(?) 목소리의 절대 주자로 손꼽히는 루시드폴 마니아 층에게도 인기가 많은 곡.


노래 하나에 꽂히면 무한반복으로 한 곡만 계속 듣는 습관이 있는 나는, 멜로디가 정말 귓속에 박힐 정도로 좋아했던 곡인데, 잊힐만할 때쯤 우연히 아이폰 노래 보관함에서 발견했을 때 그 뭐랄까...

건빵 봉지에서 따로 빼 숨겨뒀던 별사탕을 찾은 느낌? 숨겨진 명곡을 다시 듣는 희열은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안다.


먼저, 가사를 살펴보자.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그 사람. 힘겹게 사랑한 기억은 덧문을 아무리 닫아도 닫히지 않고, 더욱 선명해지기 마련이다. 흐려진 두 눈이 모질게 시리도록 떠나가지 않던 당신, 당신의 뒷모습.


이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 같다는 것.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어떻게 이런 말을 생각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부분만 반복 재생 1000번은 하고 싶은 심정.

놀라운 감성.

어쩌면 이 가사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매일, 매 순간 죄스러운 것 아닐까.


사랑하기에도 모자랄 시간에, 누군가를 물고 뜯고 밟고 판단하고 시기하고 깎아내리기 바쁜...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더럽고 추악한 생각으로 가득 찬 이내 마음을 버리고 청소하고 싶은, 눈부신 햇살이 가득 내리는 봄날이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먼저 보기보다는

내 눈에 티를 씻어내고 싶다.

그런 순수함을 되찾고 싶다.


+

김연우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와 엮고 싶은 곡은,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 이소라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의 불후의 명곡.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나만 혼자 달라져 있는 그런 느낌.

나는 힘든데, 죽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즐거운 느낌.

뭐가 그렇게 행복한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바람 한 차례만 불어도 금세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었다.

차라리 바람에 모든 게 흩어져 버렸으면 했던 시절.


<바람이 분다>라는 곡을 들으면, 특별히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대학교 1학년. 한창 모든 것이 새롭고, 이제 성인이라는 자유를 만끽하는 하루하루가 그냥 다 좋았던 것 같다. 남자아이인데도 웬만한 여자아이들보다 곱상하게 생겼고, 피부는 까무잡잡했으며, 다리는 슈퍼모델 뺨치게 가느다랗고 길었던. 빨간 캡 모자가 너무나 근사하게 어울리고, 국문과 모든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던 아이였다.


나랑은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였는데(특별한 섬싱이 없어서 유감이다) 어느 봄날, 일찍 학교에 와서 캠퍼스 여기저기를 두리번두리번거리는데 당시 잔디밭(그래 봐야 도서관 앞마당 한 켠 정도) 위 벤치에 앉아서 그 아이가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뭘 듣나 해서 조용히 가서 놀래 켜보니, 플레이되고 있던 곡이 바로 <바람이 분다>였다. 오래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날 보자마자 놀란 토끼눈으로 눈물을 조금 훔쳤던 것 같다. 꼴에 국문과 남학생이라고 굉장히 폭발적인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것은 분명하다.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에 이 남학생이 썼던 글의 주요 내용은, 어떤 의미인지,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늘 모호하기만 한, 새벽 3시에 약간 정신줄을 놓고 썼을 것 같은 ‘갬성 글’을 우리 과에서 가장 많이 쓴 사람은 아마 이 남학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기에, 나는 굳이 이유를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나도 이소라 노래 좋아한다며, 같이 듣기를 청했던 기억 외에는 뚜렷한 정황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무튼, 이런 이유로 나는 <바람이 분다>는 노래를 들으면 첫사랑도, 짝사랑도 아닌 까만 피부에 촉촉한 토끼눈을 가지고 가수 이소라의 감수성을 너무나 잘 이해하던 문학 소년이 지금도 기억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잘 살고 있냐? 최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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