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봄날은 간다> / 에피톤 프로젝트, <봄날, 벚꽃 그리고 너>
<봄날은 간다> -김윤아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와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와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오늘 소개할 노래 <봄날은 간다>는 그룹 ‘자우림’의 멤버 김윤아의 첫 번째 솔로 프로젝트 앨범 <<Shadow Of your Smile>>의 수록곡으로, 같은 제목의 영화 <봄날은 간다>의 OST로도 쓰인 유명한 곡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는 2001년 개봉 당시, <8월의 크리스마스>로 많은 팬덤을 이루고 있는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유지태와 이영애의 스타 배우들의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 때문에 꽤 흥행했던 영화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절제된 대사, 주인공들의 섬세한 내면의 감정 연기가 개봉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젊은 시절 상처한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는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 역)가 어느 겨울, 강릉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이영애 역)를 만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난다. 선남선녀가 단둘이 여행을 떠나면 뻔한 거 아닌가. 자연스레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여기서 그 유명한 대사가 등장한다. “라면 먹을래요?” ^^;;
상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은수를 사랑하게 되지만,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으면서 삐걱거린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은근히 결혼을 기대하는 상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영화 <봄날은 간다>는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최고 점수를 받은 몇 안 되는 한국 멜로 영화 중 하나다. 더불어 근 30년간 한국 멜로 영화 중 최고라고 평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다 아름답지만, 그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사랑을 나누던 상우와 은수가, 언덕 위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부둥켜안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벚꽃 엔딩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말하는 상우에게 은수는 그저 “헤어져.”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떠나지만, 다시 돌아온 은수에게 상우는 말없이 화분만 건네고 갈 뿐이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했을 때.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고, 남은 사랑으로 붙잡을 수도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이제 세상에서 가장 멀게 되어버린 이별을 마주했을 때, 그 커다란 슬픔을 견디고 극복하면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영화 속 상우와 은수처럼 벚꽃 나무 앞에서 이별을 한 경험은 없지만, 가장 화사한 봄이라는 계절과 벚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풍경이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이별의 순간.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라는 말이 이럴 때 어울리던가.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는 영화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았을 뿐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이 무심히 가는 봄날과 바람에 지는 꽃잎처럼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떠나가는 모습이 눈앞에 아련히 그려지게 한다.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그런 ‘마음 아픈 추억’을 김윤아의 애절한 보이스로 완성한 OST 명곡. 가사가 한 편의 시다.
+
김윤아 <봄날은 간다>와 엮을 곡. 에피톤 프로젝트의 <봄날, 벚꽃 그리고 너>
이 곡은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봄날의 조용하고 여린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곡 제목처럼 벚꽃을 보면 떠오르는, 나에게는 꽃과 같이 아름다운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 빨리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은 약간의 설렘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곡에 대해 검색해보다가 알게 된 사실. 노래를 부르는 보컬이 없는데, 가사가 있었다. 음악을 만들게 된 배경, 이유처럼 보이는 창작자의 메시지이자 덤덤한 내레이션.
<봄날, 벚꽃 그리고 너> -에피톤 프로젝트
벚꽃이 지고 나서 너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길가에
벚꽃이 내려앉을 그 무렵, 우리는 만났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끌렸었고
또 그렇게 사랑했었다
비상하지 못한 기억력으로
너의 순서에 없는 역사를 재조합해야 했으며
전화기 속 너의 말들은 오로지 기록하려 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나간다는 것은
한 줄의 활자를 읽어나가는 것보다 값진 것
나는 너를, 너는 나를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알아나가며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때론 싸우고 또다시 화해하며
그게 사랑이라고 나는 믿었었다
벚꽃이 피기 전 너와 헤어졌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그래서 너의 벚꽃이 피어나면 구경 가자던
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계절은 추운 겨울을 지나
또다시 봄이라는 선물상자를 보내 주었다
우리는 봄에 만나 봄에 헤어졌고
너는 나에게 그리움 하나를 얹어 주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이 연주곡이 그냥 곡이 아니라, 봄에 만나 봄에 헤어진 두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하나의 역사였고 막연한 설렘만 있는 게 아니라, 그리움 같은 것이 묻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많은 가사나 내레이션이 곡을 완성시키는 데 있어서 왜 중요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 곡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내가 가사, 즉 노랫말을 자세히 관찰하고 아끼고 되짚어 생각하는 이유.
노랫말은, 곡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하고, 곡을 더 풍부하게 이해시키고 해석하게 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