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박정현, <위태로운 이야기> / 뉴이스트 W, <북극성(Polaris)>

by 유작가


<위태로운 이야기> -박정현


절정을 지나버린 모든 것

결국 시들어 가는 많은 것

지금 난 그 가운데 있어


숨소리 하나 흔들림 없이

작은 떨림도 없는 눈으로

지금 넌 마지막을 말해


조금 아플 것도 차차 나을 것도

느리지만 잊을 것도

넌 이미 다 알고 있었을까

아무 이유 없이 그래 이유 없이

love 못 믿을 사랑

더없이 위태로운 마음의 장난


반짝이며 웃던 많은 날들도

심장소리처럼 뛰던 사랑도

그저 흘러가는 저 강물 같아

기도처럼 깊던 오랜 믿음도

그저 변해가는 저 계절 같아

참 위태로운 얘기


조금씩 사라지는 모든 것

결국 부서져 가는 많은 것

지금 난 그 가운데 있어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듯

마치 날씨 얘기를 꺼내듯

지금 넌 헤어짐을 말해


보낼 수 있는데 그건 괜찮은데

내가 정말 서러운 건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것

익숙함을 지나 지루함을 지나

love 못 믿을 이름

이토록 부질없는 슬픔의 마법


태양처럼 빛난 모든 순간도

노랫소리 같던 그 속삭임도

헤어짐을 향한 막연한 항해

한땐 목숨 같던 나의 사랑도

그저 스쳐가는 찰나의 바람

참 위태로운 얘기



오늘은 드라이브 뮤직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운전을 하든 못하든, 드라이브를 하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당신은 지금 제대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눈치를 채시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드라이브 뮤직 1위는 박정현의 <위태로운 이야기>다.

이 노래는 <나의 하루>, <You mean everything to me>, <꿈에>, <편지할게요> 같은 주옥같은 노래를 부르며 한국의 디바라는 칭호를 받았던 박정현이 2006년에 발표한 싱글 앨범 수록곡이다. 벌써 13년 전이네...ㄷㄷ


당시 나는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이렇게 나이가 밝혀지는군... 흡) 차도 없고 남친도 없고, 차있는 남친도 없었기 때문에 기분이 꿀꿀한 밤이면 아버지를 졸라서 한강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아버지는 가난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셨는데, 매일 일하고 늦게 들어오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남동생을 보살피며 자라셨다고 한다. 그래서 다소 무뚝뚝하고 다정한 성품의 소유자가 아니셨지만, 첫째 딸인 나에게는 늘 갖고 싶다는 물건이 있으면 다 사주셨고(엄청난 구두쇠라 주로 저렴이를 구해주시긴 했지만), 동생들보다 나에 대한 기대감이 크셨다. 그만큼 나도 부모님께 웬만하면 큰 사고 치지 않는 착한 딸이 되고자 했고, 사실 공부하는 것보다 책 읽고 음악 듣는 것만 좋아했기 때문에 나 때문에 속 썩지 않으실 정도로,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그저 그런 사춘기를 보냈다. 사설은 여기까지.


무튼 한강 드라이브는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와의 추억 중 어쩌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어릴 때 아버지와 여동생과 함께 기차여행을 다녀온 기억도 있는데, 너무 어려서 기차에서 잔 기억이 전부ㅠ) 이리저리 돌려보던 라디오 채널에서 마침 박정현의 <위태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시원한 한강 바람과 적절히 까만 밤하늘, 나를 위해 하루 종일 일하시느라 지치셨을 몸을 이끌고 기꺼이 운전을 해주고 계신 아버지... 일산에서 자유로를 타고 강변북로를 지나 한강을 쭉 달리다 보면 올림픽대교가 나왔는데 그 다리를 기점으로 턴해서 돌아오면 그날 드라이브는 끝. 한강을 달리면서 보이는 수많은 다리들, 강을 하나로 연결하고 밝혀주는 불빛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위안을 느끼며 하루를 정리했다.


30대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에 얼마나 많은 염려와 불안을 느꼈겠느냐만, 막 성인이 되고 대학이라는 문화에 적응하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제대로 정립할 수 없고, 위태로웠던 것도 사실이었기에 그래서 더 박정현의 노래가 와 닿았던 게 아닐까.


절정을 지나버린 모든 것

결국 시들어 가는 많은 것

지금 난 그 가운데 있어


숨소리 하나 흔들림 없이

작은 떨림도 없는 눈으로

지금 넌 마지막을 말해



절정을 지나고 시들어 가는 많은 것들과 그 가운데 서있는 나. 이 노래의 화자는 이별을 고하는 연인을 바라보면서, 남녀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결국 익숙함과 지루함을 지나면 얼마나 위태로워지는 것인지, ‘부질없는 슬픔의 마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반짝이며 웃던 많은 날들도

심장소리처럼 뛰던 사랑도

그저 흘러가는 저 강물 같아

기도처럼 깊던 오랜 믿음도

그저 변해가는 저 계절 같아

참 위태로운 얘기



내가 당시 위태로운 감정을 느꼈던 건, 사랑 때문이 아니었지만 노랫말 하나하나가 깜깜한 밤에 달빛을 받으며 흘러가는 강물을 너무도 적절히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태로운 것이 어디 사랑뿐이랴. 시시때때로 변하는 우리의 마음과, 감정과, 삶과, 일과, 사람들...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이 위태롭고 불안한 상태로 흘러가고 있지만 매일매일 견디고 버티면서 사는 거 아닌가. 우리네 인생과 참 닮아있는 노래라는 생각. 계절도 변하는데,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사랑이 변하지 않겠는가.


태양처럼 빛난 모든 순간도

노랫소리 같던 그 속삭임도

헤어짐을 향한 막연한 항해

한땐 목숨 같던 나의 사랑도

그저 스쳐가는 찰나의 바람

참 위태로운 얘기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태양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고, 스쳐가는 찰나의 바람 같은 순간도 있는 법. 변화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내 중심을 지킬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 같다.


+

박정현의 <위태로운 이야기> 다음으로 좋아하는 드라이브 뮤직. 최근에 발견한 뉴이스트 W의 <북극성>이란 곡이다.

뉴이스트 W를 잠깐 소개하자면, 2018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tvN 토일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OST를 불러서 주목받기도 했던 아이돌 보이 그룹이다. 개인적으로 아이돌 노래는 정말 신나거나(제일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는 워너원 <Energetic>. 이 노래만 들으면 진짜 신기하게 힘이 난다) 인기가 많거나 하지 않으면 즐겨 듣지 않는 편이지만, 뉴이스트 W <북극성>을 듣고 난 소감은 아이돌도 충분히 감성적일 수 있다는 것.

▶뉴이스트 W (왼쪽부터 백호, 렌, JR, Aron)


아이돌 잘 모르시는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을 위해서 잠시 멤버 소개를 하겠다.(갑자기 빠순이로 변신) 뉴이스트 W의 멤버는 Aron, JR, 백호, 렌 4명으로, 지금은 워너원의 멤버가 된 민현까지 포함해서 2012년 ‘뉴이스트’로 데뷔했다. Aron은 93년생, 나머지 멤버는 전원 95년생으로 지금 나이는 어느덧 20대 중반... 헉.... 내 나이 먹어가는 것만 생각하고, 아이돌 나이 먹는 건 고려하지 않았구나... 갑자기 현타가 오네...


<북극성(Polaris)> -뉴이스트 W


이 작은 나의 세상은

너로 가득 차 있는 걸

걸을 때 내 옷깃에는 너의

흔적이 묻어 나와서


기다림에 대해 몇 번의 사계절을

보냈는지 모르지만

또다시 몇 번을 반복해도

아무런 불만 없어

나는 너라면 충분해


*우린 떨어져 있지만 함께라는 걸

잊지 마 잊지 말아 줬음 해

저 밝은 북극성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의 기억처럼 만나겠죠


모든 별은 For you for you for you

I'll give you everything do it for you

북극성은 맨날 그 자리에 서 있어

모든 별은 For you for you for you

I'll give you everything do it for you

은하수 멀리 있어도 느낄 수 있어 그대*


rap) 솔직하게 이 말을 해도 될까

사실 좀 외로워

아냐 아냐 괜시리 더 큰 부담이 될까

못 들은 척해줘

이어진 별들아 하나의 그림이 되어서

언제든지 올려 봐도 그 자리에 있어줘

하루에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밝게 빛나 줘


네가 돌아오던 꿈만

몇 천만 번을 꿨는지도 모르지만

또다시 몇 번을 반복해도

아무런 불만 없어

난 그걸로도 충분해

**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아이돌 그룹인데 요즘 세대답지 않게(?) ‘북극성’이라는 소재로 노래를 불러서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들어봤다. (사실 10대 시절 굉장히 좋아라 했던 강타의 <북극성>을 떠올리면서 발라드인가 했음) 그런데 생각보다 세련된 디지털 건반음과 리듬감, 멜로디 라인에 한 번 놀라고, 감성 충만한 새벽 2시에 들어도 어울릴 만한 촉촉 보이스에 매료됐다.


이 작은 나의 세상은

너로 가득 차 있는 걸

걸을 때 내 옷깃에는 너의

흔적이 묻어 나와서


기다림에 대해 몇 번의 사계절을

보냈는지 모르지만

또다시 몇 번을 반복해도

아무런 불만 없어

나는 너라면 충분해


내가 이 노래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부분은 여기. ‘기다림에 대해 몇 번의 사계절을 보냈는지 모르지만’. (이 가사에 꽂혀서 이틀 내내 이 노래만 계속 듣고 다녔는데, 음악 어플 재생 기록을 보니 50번이 넘어 있었다)

기다림이 가져오는 쓸쓸함과 외로움, 끝나지 않을 아련함을 몇 번의 사계절을 보내면서 인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짧으면 2~3년, 길게는 그 이상의 시간을 한 사람을 위해 보낸 사랑이라는 뜻이겠지. 그런 순애보를 이런 가사로 표현해 내다니. 나중에 혹시라도 방송국에서 뉴이스트 W를 만나게 될 일이 있다면 이 가사를 누가 썼냐고 꼭 물어보고 싶다.


전체적인 곡 분위기는 제목처럼, 별이 밝은 곳에서 북극성을 찾기 위해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의 고요함과 쓸쓸함, 지금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묻어난다. 눈으로 별을 찾을 때만큼은 철저히 나 혼자니까. 금방 찾을 때도 있지만, 한참을 찾아야 할 때도 있고... 별을 올려다보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못 봤다.


앞에서 박정현 <위태로운 이야기>의 ‘계절’은 늘 변화하기 때문에 위태롭고 절정을 지나서 시드는 꽃과 같은 것이었다면, 뉴이스트 W <북극성>의 ‘계절’은 영원히 반복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는 것,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움은 영원할 수 있다는 슬픔으로 표현하고 있다. 북극성도 마찬가지.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어디를 가더라도 찾을 수 있는,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오게 하는 이정표가 되어주기 때문에..


북극성을 따라 걷다 보면 결국 우리는 만날 거라고, 은하수 멀리 있어도 느낄 수 있다고. 계절이 흐르고 꽃은 피고 져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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