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긱스, <짝사랑> / 이소라, <데이트>

by 유작가
<짝사랑> -긱스


난 정말 멍청하지 말도 곧 잘못하고

얼굴만 붉히면서 니 주윌 맴돌아도

난 너를 원해 냉면보다 더

난 네가 좋아 야구보다 더


넌 아마 모를 거야 아냐 그건 괜찮아

저번에 집에 갈 때 내게 웃어줬잖아

넌 너무 예뻐 햇살보다 더

난 네가 좋아 우주보다 더


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내 사랑 맨날 맨날 활활 타올라

마음 점점 더 숯검댕처럼

그렇게 자꾸자꾸 까맣게 타버리지만


난 너를 원해 포도보다 더

난 네가 좋아 들꽃보다 더


언젠가 어떤 날에 (언젠가 어떤 날에)

둘이 손을 잡고서 (둘이 손을 잡고서)

언젠가 어떤 날에 (언젠가 어떤 날에)

같이 갈 수 있을까(같이 갈 수 있을까)


넌 너무 예뻐 하늘보다 더

난 네가 좋아 만화보다 더


아침에 눈을 떠보면

널 볼 수 있단 생각에

난 너를 어쩜 짝사랑하나 봐

난 너를 진짜 사랑하나 봐

나나나나 나나나나 나나나나 나나나나


난 너를 어쩜 짝사랑하나 봐

난 너를 진짜 사랑하나 봐

난 너를



솔직히 내가 즐겨 듣는 노래는 신나는 댄스곡이나 랩이나 90년대에서 2000년대를 아우르는 가요들이나 OST 연주곡이 대부분인데, 봄이라 그런지 본의 아니게(?) 자꾸 사랑 노래만 소개를 하게 된다. 건어물 녀로 바짝 마른 지가 오래돼서 사랑에 빠졌을 때의 달달한 감정이 뭔지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계절이 계절인지라... 우중충한 분위기를 벗어버리고 오늘은 최고로 러브러브 모드가 뿜뿜 할 때의 그 제정신 아닌 감정 상태를 잘 표현한, 평소에는 듣기 낯간지러울 정도라 잘 찾아 듣지 않는 노래 중 숨겨진 명곡을 소개하겠다.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를 수 있으나, 90년 대 노래 꽤나 들었던 사람들은 ‘패닉’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적, 김진표 두 멤버가 1995년 1집 앨범 [Panic]으로 데뷔하여 <왼손잡이>. <달팽이>,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등의 주옥같은 노래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각자의 메인 역할을 살려 김진표는 래퍼로, 이적은 특유의 개성 있는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이적의 <Rain>을 소개할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제 들어도 마음을 적시는 비 오는 날 대표 선곡.


‘긱스’는 ‘패닉’의 이적이 리드보컬을 맡고 강호정(건반), 이상민(드럼), 정재일(베이스) 4인조로 구성된 그룹이다. 1999년 [GIGS 1집]으로 데뷔했고, 오늘 소개할 노래 <짝사랑>은 2003년에 발매한 2집 앨범에 들어있다.

또렷한 발음, 정확한 음감, 강약 고저는 물론 템포가 잘 살아있는 리듬감... 그래서 댄스, 발라드는 물론 밴드 음악까지 모두 섭렵한 이적은 천재 뮤지션이라는 수식어가 오랫동안 붙어왔다. 아, 심지어 글까지 잘 쓰기 때문에 천재 아티스트라고 해도 무난할 정도. (이적의 <지문 사냥꾼>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시라!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런 이적이기에, 기본적으로 믿고 듣는 뮤지션이지만 긱스로 활동하던 시절에 부른 <짝사랑>은 처음 들었을 때 뭔가 머리가 삐죽삐죽 서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짝사랑의 번개 맞은 느낌을 이렇게 잘 표현하다니!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머리에는 온통 그 사람 생각뿐이고, 뭘 먹든지 보든지 하든지 다 그 사람과 연관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급기야는 내가 제일 좋아하던 모든 것들 -이 노래에서는 냉면, 야구, 햇살, 우주, 포도, 들꽃, 하늘, 만화- 보다 더 좋아하고 원하게 되는 것. 이게 짝사랑이 아닐까. 그 사람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대체 불가능한!


난 정말 멍청하지 말도 곧 잘못하고

얼굴만 붉히면서 니 주윌 맴돌아도

난 너를 원해 냉면보다 더

난 네가 좋아 야구보다 더


넌 아마 모를 거야 아냐 그건 괜찮아

저번에 집에 갈 때 내게 웃어줬잖아

넌 너무 예뻐 햇살보다 더

난 네가 좋아 우주보다 더


하지만 이 노래의 주인공은 멍청하고, 말도 잘 못해서 얼굴만 붉히며 좋아하는 여성의 주위만 맴돌 뿐이다. 맴맴맴. 매미도 아니고. 답답하긴. 쯧쯧. 아직 2000년 대라서 썸 타는 게 뭔지 모를 시대여서 그런가. 요즘은 상대를 좋아하는 감정이 들면 그게 확실해지기도 전에 일단 들이대고 보지 않나. 나 너 좋아하는 거 같아, 너도 나 좋아하냐? 이건 그나마 양반이지. 나, 너 좋아하냐? 이렇게 자기감정을 대놓고 상대에게 물어보는 지경까지 온 시대인데. 하긴 15년도 전에 부른 노래니,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또 그 반이 변하고 있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같은 정서가 아닐 확률이 더 높겠군.


어쨌든 이 노래의 화자는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니가 냉면 100그릇 먹는 것보다 좋다고!’ 외치고 싶지만 소심해서 외치지도 못하고,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내 방 침대가 부서져라 방방 뛰면서 소리 지르는 일이 고작인 소심청년. 그래서인지 이적은 이 노래를 부르며 소심청년으로 빙의가 된 듯, 알 수 없는 그녀(?)를 향해 자칫 소음처럼 들릴 정도로 목청껏 외치고 있다. 너무나도 솔직한 가사와 바보 같은 고백, 그리고 경쾌하고 재치 있는 기타와 드럼 사운드가 이 노래의 맛.


주의사항. ‘저번에 집에 갈 때 내게 웃어줬잖아’라는 가사를 보면 유추할 수 있듯이, 웃어준 거 하나로 자기를 사랑한다고 착각할 수 있는 게 남자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웃어주면 안 된다. 웃는 여잔 다 예쁘다는 가사를 가진 노래도 있지 않나.


+

긱스 <짝사랑>과 함께 소개할 노래는 이소라 <데이트>. 이 노래도 사실 제목은 데이트지만, 가사를 살펴보면 실제 데이트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휴일 아침에 간 놀이 공원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만 묘사하고 있는데, 짝사랑이 지나치다 못해 데이트하는 상상을 하고 노래로 부르는 수준까지 된 게 아닌지 가히 의심이 되는 노래.


<데이트> -이소라


휴일 아침에 놀이 공원 푸른 동산 해는 쨍쨍

구불구불 미로를 돌아 신나는 여행을 떠나요

랄라라 라라리 나나나 랄라라리 라나나

랄랄라 라라리 나나나 랄랄라 랄랄랄랄


풍차가 도는 조각 공원 곱게 수놓인 튜울립 꽃

모로코 풍의 궁전 지나 뱅글뱅글 회전목마들

랄라라 라라리 나나나 랄라라리 라나나

랄랄라 라라리 나나나 랄랄라 랄랄랄랄


하늘엔 슁슁 애드벌룬 붕붕 나르는 커피잔

분수대 시원한 오후 지나 까만 밤하늘 불꽃 퓽퓽

랄라라 라라리 나나나 랄라라리 라나나

랄랄라 라라리 나나나 랄랄라 랄랄랄랄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멜로디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휴일 아침 놀이공원에 와서 눈앞에 펼쳐진 풍차 공원과 튤립, 회전목마, 애드벌룬, 분수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한다. 혼자만의 상상 데이트면 어떤가! 나만 행복하면 되지.


풍차가 도는 조각 공원 곱게 수 놓인 튜울립 꽃

모로코 풍의 궁전 지나 뱅글뱅글 회전목마들


나의 10대 시절 감수성을 자극한 하이라이트 가사. 모로코 풍의 궁전이라니. 모로코라는 나라는 듣도 보도 못한 듣보잡이고 가본 적도 없는 나라인데, 괜히 이런 노래에 쓰이니까 멋져 보여서 이 노래를 더 가치 있게(?) 여겼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동경을 적절히 자극했다고 할까.


실로폰과 아코디언(?) 비슷한 소리까지 가세, 동요인지 가요인지 모를 노래 분위기에 취하다 보면 조용히 이소라의 보이스가 속삭이듯 들려오는데, 백 뮤직에 방해되지 않고 조금도 튀지 않는다. 오히려 보컬까지 연주음의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고 여리게, 서정적으로 불러서 더 아껴주고 싶은 노래. 나를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하고, 사랑해주는 남자가 등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달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노래.


노래에 얽힌 에피소드. 고1 때 처음 이 노래를 들었는데 ‘까만 밤하늘 불꽃 퓽퓽’이라는 표현에 너무나 감동받은 나머지, 당시 ‘버디버디’라는 메신저 프로그램이 대인기였는데 내 아이디는 ‘불꽃 퓽퓽’이었다는 사실...!! 내 아이디를 본 친구들마다 이게 뭐냐, 무슨 뜻이냐, 웃긴다,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진짜 대박이라고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는데, 당시 누가 더 웃기고 재밌는 아이디를 만드는 지로 은근히 기싸움을 벌이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나는 ‘불꽃 퓽퓽’의 발견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기분으로 어깨가 으쓱해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라고. 나 참.


놀이공원에 가지 않았는데도 이미 바이킹, 신밧드의 모험, 후룸라이드, 아틀란티스까지 다 타고 머리카락 다 뒤집어진 채로 어질어질 내려온 느낌. 마지막에 휘파람 소리로 끝나는 센스까지ㅋㅋ 귀엽고 사랑스러운 노래.


가수 이소라의 숨겨진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어떤 노래도 모두 제 것으로 만들어 흉내 낼 수 없게 제대로 소화하는 진정한 singer. 노래에도 웰 메이드, 리미티드 에디션이 있다면 가장 많은 명품 곡을 가졌다고 해도 손색없는 가수가 이소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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