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칼국수집 아주머니

오늘의 고마움

by 유작가

약 10년 전부터 내가 사는 동네는 부모님이 계신 상암이 아니라 동대문구 답십리동이 되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살고 있는 동네. 서울이라고 하기엔, 옛날 시장 골목 풍경이 많이 남아서 정겨운 동네. 답십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청량리와 왕십리가 근처에 있고, 힙플레이스인 성수와 서울숲도 버스를 타면 15분 만에 가는 나름 역세권인 곳이다. (우리 집 바로 앞에는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꼭 사진을 찍어서 남길 정도로 풍경이 예쁜 간데메 공원도 있다. 일명 공세권!)


답십리역에는 맛집들이 은근 곳곳에 숨어있다. 용답역 먹자골목과 이어지는 상권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주민들 대부분이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다 보니 값싸고 맛있는 식당들이 하나 둘 생긴 것 같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추어탕집과 떡볶이집, 초밥집 등이 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3번 출구 앞에 떡 하니 생긴 칼국수집 하나가 있다. 이름하야 <명동 칼국수>. 이곳은 분명 명동이 아님에도 명동 칼국수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 한 번 야무지게 해 보겠다는 포부가 보였다고나 할까. 맛도 그런대로 괜찮아서 손님들이 항상 차 있는 가게다. 나를 이곳에 처음 데려가서 칼국수를 사준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배 언니였는데 그때 이 집의 맛을 알게 돼서 혼자서도 가끔 찾는 곳이 됐다.


얼마 전, 1월 1일 새해 첫날. 답십리동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 가게에서 파는 어묵을 사서 부모님 댁에 갔다. 엄마가 끓여 주신 비비고 만두를 넣은 떡국을 먹고, 어묵도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낮잠도 한 숨 자고, 이후에 오랜만에 여동생과 함께 근처 영화관에 가서 <스파이더 맨>을 보고 나니 하루가 저물었다. 그 길로 나는 답십리로 다시 돌아왔는데, 저녁때를 살짝 넘긴 시간이었고 배가 고팠다. 집에는 밥이 없는데. 그때 내 눈에 보인 곳은 답십리역 <명동 칼국수>. 신정연휴인데도 가게를 닫지 않고 장사를 하고 계셨다. '아싸~ 한 끼 해결하겠다!'라고 생각하며 들어갔다.


손님들은 빠져나가고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와 그 아내인 것 같은 아주머니, 그리고 주방일을 도우시는 아주머니 이렇게 세 분이 앉아서 사담을 나누고 계셨다. 그러다 내가 들어오니 "어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하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주신 사장님의 아내. 정초부터 웬 아가씨가 저녁 늦게 혼자 와서 밥을 먹나, 하고 이상하게 여길 법도 한데 그런 기색도 전혀 없이 반겨주셨다. 나는 칼국수 하나를 시켜서 허겁지겁 먹는데, 갑자기 아주머니가 공깃밥을 갖다 주셨다.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이번에도 환하게 웃어주시며, 서비스니까 그냥 먹으라고, 양이 많지 않다고 하셨다. 나는 이번에도 그 호의를 달게 받으며, 점심에 떡국과 어묵을 많이 먹었음에도 왠지 모를 헛헛한 마음에 밥 한 그릇까지 칼국수 국물에 말아서 다 먹었다. 마음이 따땃해졌다.


기분 좋게 계산을 하러 앞으로 나가니, 이번에도 아주머니는 나의 눈을 또렷하게 쳐다보시며 "맛있게 드셨어요? 오늘 이게 몇 번째 끼니예요?"라고 물으셨다. 깡마른 젊은 처자가 너무 열심히 국수며 밥이며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어서, 하루 종일 굶은 줄 아셨나 보다. 나는 "아... 부모님 댁 다녀와서 점심을 먹고 오긴 했는데..." 하고 멋쩍게 웃었다.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니,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또 인사를 하셨다. 그래서 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답례를 했다.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아닌 누군가에게 이렇게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한 해를 시작한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인 것 같다. 답십리 명동 칼국수집 아주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의 감사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 택배 아저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