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카페 자리 양보하기

오늘의 고마움

by 유작가

나는 카페를 좋아한다. 직업적인 특성상 집중해서 글을 써야 할 때도 많고, 바쁠 때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해야 했다. (가끔 지하철에서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측은히 바라보곤 한다)


막내 작가 때는, 매주 피디님이 애써 찍어 오신 60분짜리 촬영 테이프를 10개~12개 정도 프리뷰(*영상에 나오는 장소와 상황을 지문처럼 적어주고, 등장인물의 말을 딕테이션 하는 일)를 하기 위해서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 그때 집에서 하게 되면 백퍼 졸거나, 뭐를 먹거나, 잠깐만 자야지 하고 누웠다가 아침이 되는 재앙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에... 24시간 하는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쭈욱-쭉 들이킨 후, 눈에 불을 켜고 손에는 모터를 달고 열나게 프리뷰를 하며 나의 20대를 보냈다.


아마 나는 그때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게 됐던 것 같고, 카페 문화가 주는 약간의 '있어 보임'과 '불편하면서 동시에 안락한' 매력을 좋아하게 됐다. 성과도 별로 없이 졸다가 온 경우도 허다했지만, 같은 공간에서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과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며.


작가로서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면서 이제는 밤샘을 하는 일도 없고, 밤샘을 해야만 하는 일은 애초에 맡지도 않는다. 나의 수명을 깎아 먹으면서 일하기보다는, 그동안 쌓인 짬의 지혜를 십분 발휘하여 4-5시간 딱 집중했을 때 나오는 글의 퀄리티가 더 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어린 작가 시절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와 실패와 좌절과 노력과 눈물이 일궈낸 것임을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지금 나는 여느 직장인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을 한다. 그리고 개인 작업실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공동 작업실이지만) 그래서 굳이 카페를 가지 않아도 글을 쓰거나 일을 할 수 있지만,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나 뭔가 '힙한' 느낌을 받고 싶을 때는 일부러 카페에 간다.


얼마 전, 점심시간에 생각할 것이 있어서 밥을 빨리 먹고 회사 앞 카페에 갔다. 점심시간에는 항상 직장인들로 북적대기 때문에, 일부러 좀 일찍 나와서 카페 문 바로 옆 쪽 4인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역시나 나의 사랑, 아메리카노와 함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시간은 벌써 오후 1시가 되기 10분 전이었다. 아쉽지만... 다시 나에게 일정 금액의 월급을 지급하는 대신, 내 시간을 갈아 노동력이라는 힘을 착취하는 '회사'로 들어가야만 하는 찰나. 카페 문이 열리더니 4명의 남녀가 들어왔다. 두리번두리번, 앉을자리를 빠르게 스캔하며.


카페는 만원이었고, 4명의 남녀는 같은 직장 동료들인 듯했다. 1시가 다 되어서 온 것을 보아 점심을 먹고 카페에 회의를 하러 온 것 같았다. 그러다 한 명이 '자리 없음'이라는 스캔을 끝내고, 나가자는 시늉을 했다. 그들을 지켜보던 나는 재빠르게 짐을 정리하고, 외투를 입고 일어나 그들을 향해 "여기 앉으세요~" 했다. 사실 생판 모르는 남이었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까지 신속한 동작으로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지만.


날도 추운데, 거기다 나는 이제 들어갈 사람이고, 혼자 4인용 테이블에 앉아있었는데, 이제 그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호의에 일행 중 여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이 여자는 뭐지?' 하는 눈빛이었지만 뭐 어떤가. 내가 할 수 있는 잠깐의 작은 배려가 네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고, 자리를 얻어 낸 약간의 쾌감을 느끼면 안 풀릴 회의도 잘 풀릴 수 있지 않을까? 오지랖 넓은 나는, 가끔 이렇게 엉뚱한 행동으로 희열을 느낀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약간의 기분 좋음이라도 얻는다면, 그건 나에게도 감사한 일이지. 오늘의 감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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