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를 마주하며
국수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좋아하는 면 하면 빠질 수 없는 것. 바로, '라면'이다. 면 좋아하는 사람 치고 라면 싫어하는 사람 못 봤다. 라면이 좋은 이유세 가지. 차려 먹기 편하고, 값싸고, 맛있다. 그리고 기호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떡라면, 치즈라면, 오징어라면, 짜장라면, 꽃게라면 등 굉장히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 아닐까? 사람들은 라면에 계란이나 파라도 넣어 먹어야 제대로 먹는 것 같다고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그냥 딱 라면과 스프 둘이면 충분하다.
어릴 때부터 라면을 좋아해서 자주 먹었는데, 가장 좋아하는 라면은 진라면이었다. 신라면은 너무 맵고너구리는 면 굵기와 다시마가 부담스럽고(짜파구리는 맛있는 거 인정), 오징어짬뽕은 간이 너무 세서, 진라면이 적당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 엄마가 어릴 때 즐겨 먹었다던 삼양라면이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입맛도 나이와 세월에 따라 변하는 건가.(참고로 컵라면은 왕뚜껑만 먹고, 생각나면 먹는 사골탕면도 별미)
라면을 주로 먹는 날은 언제인가? 집에 밥이 없는데 햇반도 없고, 해 먹고 나가기엔 시간이 없을 때. 그리고 비가 올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 주로 이렇게 인 것 같다. 오늘 나는 미리 해둔 카레도, 밥도 있었지만 한 그릇을 비우고도 헛헛한 마음이 들어서 라면을 또 끓여 먹었다. 마침 아까 비가 왔고, 기온은 매우 차졌으며, 스트레스도 좀 받은 것 같다.
비가 오면 애호박전을 해 먹는 날도 있는데(몇 개 안 되는 나의 요리 필살기) 이상하게 공기의 영향이 있는 건지, 부침개를 부칠 때는 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더 멀리 퍼지는 느낌. 라면도 그렇다. 라면 스프가 내는 약간 매운 냄새와 유탕면이 물에 풀어지며 내는 고소함(?) 때문인지, 비 오는 날엔 왠지 모르게 라면이 더 당긴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먹는 비싼 파스타가 주는 맛과 멋이 있듯이, 집에서 혼자 대충 끓여 먹는 뜨겁고 매콤하고 짭짤한 라면이 주는 맛과 멋이 있다. 모든 게 꼬불꼬불 꼬인 것 같은 날엔 라면을 먹자. 라면이 주는 위안이라는 걸 느낄 수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