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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가 Oct 04. 2022

오늘의 비빔국수

국수를 마주하며

 맵고 알싸한 비빔국수가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어릴 땐, 주로 여름이 되면 엄마가 우리 가족에게 내어주는 단골 메뉴였다. 소면을 한소끔 삶아서 새콤달콤한 양념장에 오이, 양파, 계란, 당근과 함께 비벼서 주셨던 기억. 삼 남매인 우리는 병아리 떼처럼 엄마가 주는 면요리를 쫍쫍거리며 잘도 받아먹으며 컸다. 그때는 그냥 특식 정도로만 여겼던 비빔국수가, 성인이 돼서는 속이 쓰릴 때 찾는 음식이 될 줄이야.


 방송작가로서 마지막으로 일했던 프로그램을 마무리 짓고, 시원섭섭한 마음을 뒤로한 채 상암동을 떠나려는 찰나. 배가 너무 고픈데, 때마침 매운 비빔국수가 생각이 났다.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YTN 사옥 지하에 있는 한 국숫집에 들어가게 됐다. 비빔국수 하나를 시키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며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음식이 나오자 허겁지겁 먹던 그날의 비빔국수. 그로부터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로 기가 막힌 맛이었다. 맵고, 시고, 달고, 고소하고 오만가지 맛이 나는데, 서러운 눈물을 삼키며 마지막 면발을 우적우적 씹어서 목으로 넘겼다.


30 중반이 되면 어느 정도 세상을 사는 지혜도 생기고, 비교적 쉽게 쉽게   알았는데 그건 나의 커다란 착각이었다. 파도를 넘으면 다른 파도가  오고,  파도를 넘으면   파도가 항상 뒤쫓아 오는  같은. 그렇게 한동안 나는 물살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물속에 그대로 잠겨서 고여있었다.



 그때 이후로, 사실 한동안은 비빔국수를 먹지 않았다. 매운맛이 싫은 건지, 마음이 서러워지는  싫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러다가 얼마 전에 들깨 칼국수와 함께 비빔국수도 같이 주문했다.  가지를 함께 먹으니  다른 조합. 인생의 매운맛 때문에 속이 쓰린 날엔 비빔국수를 먹자.  가운데 왠지 모를 위안을 얻게 될지도. 국수에 담긴 우리네 인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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