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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가 Sep 29. 2022

오늘의 들깨 칼국수

국수를 마주하며

 서울에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고궁이나 유적지도 많고, 한창 뜨는 힙한 동네들도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오래오래 사진처럼 내 마음에 저장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 바로 서촌. 경복궁 뒤쪽에 자리 잡은 동네. 인사동, 삼청동, 익선동처럼 관광객으로 북적대지 않으면서 멀리 보이는 인왕산과 청와대가 운치 있는 배경이 되는 마을. 건물들이 낮아서 유난히 하늘도 잘 보이고, 부암동 쪽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공기도 맑고 깨끗해서 정신이 또렷해진다. 강원도에 자주 갈 수 없으니 도심에서 그나마 조용하거나, 높은 언덕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편인데, 그런 곳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이 있다.


 대림미술관과 윤동주 문학관도 내가 무척이나 애정 하는 장소인데, 이곳들을 방문할 때마다 들러서 먹는 국수가 있다. 그 이름은 '들깨 칼국수'.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서 바로 앞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면 엄청난 맛집들이 즐비해있다. 어디로 눈을 둬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면 어느새 오른쪽에 보이는 노란 간판 <체부동 잔치집>. 다른 가게들에 정신이 팔리면 자칫 하다 놓치는 수가 있으니 방심해서는 안 된다.


 나와 벌써 17년 지기 친구인 양미를 만날 때면, 보통 <체부동 잔치집>에서 볼 확률이 크다. 이곳을 맨 처음 함께 찾은 사람도, 제일 많이 같이 간 사람도 양미다. 우리 둘 다 처음 '들깨 칼국수'를 먹고 난 후, 이 맛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됐다. 이후로 나는 누구랑 친해질라 치면 이곳에 데려갔고, 양미 역시 본인의 가족은 물론 친척들까지 이곳을 방문해서 가족 회식을 했다고 한다. 물론 <체부동 잔치집>에는 '들깨 칼국수'만 파는 건 아니다. 잔치국수, 비빔국수, 비빔메밀, 떡만둣국, 메밀전병, 김치전, 해물파전, 만두, 보쌈 등등 메뉴를 얼핏 봐도 30가지는 돼 보인다. 지금은 물가상승 때문에 들깨 칼국수가 7500원이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6500원이었고 잔치국수는 3000원이었다는 사실. 가성비 '갑'인 맛집의 끝판왕이라고 감히 정의를 내리고 싶다.


 아무튼 양미와 나뿐 아니라 우리가 데려간 사람들도 그렇고, 이곳의 음식 맛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못 봤다. 겉에서 봤을 때는 가게가 좁은데 손님이 많아서 앉을자리 나 있을까 싶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의외로 넓은 홀과 지하 1층에도 단체손님 몇 팀은 받을만한 공간이 있다. 무뚝뚝한 것 같지만, 은근 츤데레이신 주인아주머니와 일하시는 분들의 손님맞이 스킬과 빠릿빠릿한 행동. 음식이 나올 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앞에 앉은 사람과 실컷 수다를 떨면 된다.


 엊그제 방문한 친한 동생과 나는 들깨칼국수와 비빔국수, 메밀전병을 시켰다. 이 집에서 핫한 스테디셀러들로만 구성된 주문. 들깨수제비와 김치전, 해물파전도 추천하고 싶었지만 이날은 저 메뉴들이 당겼다. 드디어 나온 들깨 칼국수. 한눈에 보기에도 찐~~~ 해 보이는 들깨 국물을 보며, 면이 아닌 국물을 첫술로 뜬다. 한 숟가락 꿀꺽 입으로 삼키면 누구나 감동의 쓰나미. 이날 이곳에 처음 방문한 동생도 역시는 역시였다. 이렇게 진한 들깨 칼국수 처음 먹어본다며 연신 감탄을 했다. 흠흠~ 그렇지, 내가 아무 데나 널 데리고 가겠니.


 어떤 육수를 쓰시는지, 감자 전분을 넣으시는지 육안으로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콩국수 국물을 방불케 하는 들깨 국물로 이미 맛은 평정. 거기에 칼국수 면과 김가루, 계란 고명, 약간의 파를 넣어서 한 그릇이 크게 나온다. 비주얼만 봐서는 이게 맛이 있을까?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먹어봐야 안다. 맛있는 칼국수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은? 정답 김치. 김치도 직접 담그시는지 빨갛고, 맵고, 달달한 게 면발과 함께 먹으면 환상 궁합. 사이드로 메밀전병이나 전도 하나 시켜서 쭉쭉 찢어서 한 입씩 먹다 보면 이런저런 속이야기도 나오고, 인생 뭐 별거 있나~ 이런 거 맛있게 먹으면서 사는 거지~ 하면서 어느새 신선놀음을 하는 기분까지 든다.



 사실 맞춤법 상으로는 <체부동 잔치집>이 아니라 <체부동 잔칫집>이 올바른 표기지만, 가게 간판은 모름지기 주인 맘이기 때문에 그냥 모른 척하는 게 상책. 음식점이니까 음식 맛이 올바르면 됐지, 까짓 한글 맞춤법이 뭐 대수냐. 일 년 내내 먹어도 안 질릴 정도로 맛있는 맛이지만, 특별히 하늘이 높고 파랗고 날씨가 쌀쌀해질 때. 찾아가서 한 그릇 먹으면 꼬소함에 정신 못 차리는 그 맛. 들깨 칼국수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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