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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가 Sep 25. 2022

오늘의 낙산냉면

국수를 마주하며

 국수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맨 처음 썼던 아이템이 냉면이었다. 그런데 이번 아이템도 냉면 2탄. 정확히 말하자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낙산냉면'. 낙산냉면은 서울 성북구 창신1동에 소재한 가게인데, 40년 원조 냉면집이다. 원래는 이름처럼, 서울의 종로구와 성북구에 걸쳐져 있는 '낙산'의 언덕길에 있었다. 한성대학교 캠퍼스와 이어지던 낙산 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작고 허름한 가게 안으로, 늘 손님이 꽉꽉 들어차 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낙산냉면을 처음 맛본 때는 대학교 1학년. 지금으로부터 15년은  지난 이야기다. 어느 학교나 그렇듯이 선배들은 신입생들을 데리고 학교 근처 이곳저곳 맛집들을 소개해주고, 밥도 사주면서 생색도 내고, 관심 있는 여자 후배들 마음도 얻고 그렇지 않나? 나에게 처음  냉면집을 소개해  사람이 누군지 기억은  나지만, 아쉽게도 선배 중에 썸을 탔던 사람은 없다. 국문과 남학생들은 하나같이 모두 문학소년이거나, 자기 세계에 너무 심취된 사람들이라 내가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진 못했던  문제였던  같다. 이후에 소개 소개로 동갑내기 어떤 영문과 남학생과 이곳에서 냉면을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서로 맘에 들지 않았었는지 그걸로 끝이었다. 그날 입고 나갔던 분홍색 니트에 빨간 냉면 국물이 튀어서, 얼룩 지우느라 한참 고생했던 기억만 남아있을 . 지금 생각해보니까 웃기네.


 아무튼, 나에게도 오랜 추억이 있는 낙산냉면. 올여름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 맛을 찾아 훌쩍 집을 나섰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가게가 이사를 가서 지금은 창신1동 두산아파트 초입에 자리 잡았다. 워낙 오래된 냉면집이기도 하고 언론에도 자주 나와서 맛집으로 유명해진 덕에, 외지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늦은 일요일 오후에 갔더니 다행히 줄 서지 않고 앉을 수 있었는데, 가족 아니면 친구 아니면 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냉면을 호루룩 호루룩 맛있게 먹는데 그사이를 당당히 비집고 자리에 앉았다.

 노란 바탕에 눈에 확 띄게 적어 놓은 메뉴판에는, 특냉면/ 얼큰이냉면/ 약얼냉면/ 낙산냉면/ 덜매운냉면/ 순한냉면/ 사리가 써져있었다. 잠깐 설명을 하자면 '얼큰이'는 아주 얼큰한 맛, '약얼'은 약간 얼큰한 맛. 낙산냉면이 유명한 이유는 매운맛 때문인데,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10년 만에 찾아온 나였기 때문에 그냥 무난하게 '낙산냉면'을 시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앞에 보이는 아주머니의 정겨운 안내글.


냉면이 시거나 달거나
맵거나 짜거나 하면
아줌마를 불러주세요


그렇다. 안내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낙산냉면에는 이미 식초와 설탕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이것을 감안하고 드셔야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시고 단 맛에, 매운맛이 가미된 냉면인데 한국인이 딱 좋아할 그런 맛. 처음 먹을 땐 자극적이지만, 집에 가면 도로 생각나고 또 먹고 싶은 그런 맛이다. 맵찔이들을 위한 꿀팁. 본인이 신라면을 먹을 수 있을 정도면 보통 맵기인 '낙산냉면'으로 시켜도 무난하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매운 걸 웬만큼 잘 드시는 분들(동대문 엽기떡볶이 한 번에 반 이상 드실 수 있는 분)은 '약얼냉면'을 드셔야 맛있게 잘 먹었다 생각하실 것 같다. 사실 어느 정도는 매워줘야 낙산냉면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날 나는 냉면을 먹는 내내 '아~ 약얼을 시켰어야 했는데...' 하며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낙산냉면에는 오이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데, 오이가 거의 면처럼 보일 정도로 많다. 깨도 마찬가지로 듬뿍듬뿍 넣어주신다. 오이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들은 이 점도 참고하시고 가셔야 한다. 냉면이 나오기 전에 주시는 육수에도 참맛이 느껴진다. 육수를 냉면이 나오기 전에 마실 땐 일반 숭늉처럼 구수한데, 냉면을 다 먹고 입을 헹구는 용도로 같이 먹을 땐 뒷맛이 달고 오묘하다.



  감추듯 냉면을 흡입하고 카운터로 계산을 하러 갔다. 40 전통의 냉면집에서 1층과 2층을 진두지휘하며, 누가 봐도 이곳의 대장처럼 보이시는 아주머니께 인사를 했다. 한성대학교 근처에 계실  먹었던 낙산냉면 맛이 그리워서 찾아왔다고. 아주머니는 그냥 '그러세요? 허허~' 하고   웃으시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계산을 하셨다. 나는 '안녕히 계세요~' 하고 가게를 나왔다.  곳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같은 음식을 만들고, 같은 맛을 낸다는 . 대장 아주머니를 보며 나는 일종의 겸허함을 느끼며, 심지어 존경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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