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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가 Oct 20. 2022

오늘의 팥칼국수

국수를 마주하며

 며칠 사이에 바람이 너무 차졌다.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인데, 이리도 빨리 지나가는 것인가. 시월의 선선한 공기와 높고 파란 하늘, 오후 햇살이 너무 좋아서 하루하루가 아쉬울 정도. 하지만 시간은 내가 붙잡을 수 없는 영역이니, 보내는 마음에 안타까워하기보다 매일 이 시간을 즐기고 기뻐하기로 했다.

근래 들어 요즘 내 컨디션은 최상인 것 같다. 호랑이 기운 받아서 잘 풀릴 거라고 좋아하며 2022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 조금 있으면 11월. 두 달이 조금 더 남은 시간들. 아끼고 소중히 다뤄서 써야겠다.


 벌써 겨울을 대비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날씨가 추워지니, 국수 중에서도 좀 더 겨울 냄새가 나는 것을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 팥칼국수. 국수 에세이 초반에 썼던 콩국수 썰에 이어, 팥칼국수 썰에도 빠질 수 없는 우리 엄마. 흔히 팥죽을 '동지팥죽'이라고 부르기도 하듯이, 일 년 중 가장 밤이 긴 '동지'가 되면 어김없이 외할머니가 시골에서 보내주신 팥을 잔뜩 꺼내셔서 손수 팥죽을 쑤어 주셨다. 보통 동지는 12월 22일 정도인데(12월 21일인 경우도 가끔 있음) 그날이 마침 여동생의 생일이어서, 동짓날에는 팥죽과 미역국을 같이 먹었던 기억도 난다.


 새알이 잔뜩 들어간 팥죽도 맛있지만, 별미는 팥칼국수. 오랫동안 푹 삶은 팥을 곱게 갈아 만든 진~~~ 한 팥물에 두꺼운 칼국수 면을 넣은 것이 팥칼국수. 우리 집은 콩국수처럼 팥죽과 팥칼국수도 달게 해서 먹는 설탕파였는데, 어떤 집은 소금파도 있고 부모님의 출신 지역에 따라 팥죽의 맛을 내는 기호가 집집마다 다르다. (사실 팥칼국수는 전라도 지역 음식이라고 한다) 지금은 단맛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릴 때는 단맛의 황홀함이 한창 좋았던 나이라, 밥숟가락으로 두 번은 크게 팥죽에 설탕을 퍼 넣어야 맛있다고 만족하며 먹곤 했다.


 동짓날에만 먹던 팥칼국수가 갑자기 먹고 싶은데 엄마를 찾아가서 해달라고 떼쓰기에는 너무 많이 먹어버린 나이여서 엄마 찬스는 패~스. 서울에 팥칼국수를 파는 집이 있는지 반신반의하며 검색을 해봤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간판만 봐도 믿음과 신뢰가 가는 팥죽/팥칼국수 집을 찾았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내 생일에 맞춰 퇴근 후 곧바로 직행. 올해 수고한 스스로에게 생일상을 주기로 했다.


 맛은 대만족! 일단 팥물 진하기 합격, 국수  합격, 김치  동치미맛 합격. 설탕은 이전처럼 많이 넣지 않았고, 티스푼으로   정도만 곁들이니 밍밍하지도, 달지도 않고  좋았다. 진짜 오랜만에 먹는 팥칼국수여서 반갑기도 하고, 혼자 이거 먹으려고 찾아온 나도 우습고 했지만결국 팥칼국수  대접을  비우고 나왔다. 포만감 1000%.


 이번에 구글링 하며 알게 된 건데, 팥칼국수가 복날 삼계탕 저리 가라 할 만큼 가을철 체력을 보강하는 음식으로 손꼽힌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팥의 효능을 찾아보니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등 영양소가 풍부하고 칼륨은 바나나의 4배나 들어있어서 피로 해소에 좋다고 한다. 게다가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이 풍부해서 항산화 식품이기도 하다고. 거의 신이 내린 작물급이네. 내가 팥을 필요로 한 이유를 알겠다.



 나무위키에는, 허영만 선생님의 만화 <식객> 25권 2번째 스토리에 팥칼국수가 등장하는데, 우울증에 걸린 '성찬'을 한 방에 치료한 음식이라고. 대단한데? 갑자기 그 스토리가 궁금해지네. 올겨울에 '이불 밖은 위험해' 이벤트로 <식객>이나 정독해볼까. 내가 팥칼국수만큼 좋아하는 팥죽, 단팥빵, 붕어빵 실컷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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