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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득 생각

눈사람도 인상이 있네요.

나의 모습은 어떤 느낌으로 마음에 새겨져 있을까?

by 축복이야

한 해의 마지막 즈음 흰 눈이 펑펑 내렸다.

진짜 눈답게 내리는 눈을,

내리자마자 순식간에 쌓이는 눈은 올해 처음이다.

나도 짧은 탄성이 나올 정도였는데

아이들은 더 말할 것이 있을까.

바로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제 열이 난 아이를 생각하면 망설여졌다.

잠시만 나갔다 오는 거란 당부를 몇 번이고 하고선

모자에 장갑에 부츠에 찬바람과 눈송이는 한 톨도

들어오지 못하게 무장을 하고 나섰다.


하얀 눈길을 밟아보는 건 나도 설레는 일이었다.

눈이 쌓인 곳은 다 밟아 보는 탓에 2분이면 가는

아파트 뒤쪽 공터를 한참만에 도착했다.

눈집게로 눈사람이라도 만들어 볼 생각으로 간 곳엔

이미 커다란 눈사람이 떡 하니 있었다.

그 몇 걸음 앞에는 젖은 채 뻣뻣해져 버린

긴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이제 막 어딜 가려던 아이는

우리의 시선이 눈사람에 꽂히자 다시 돌아와

눈사람 옆을 서성였다.

언제부터 나와서 만들었는지 이미 얼굴엔

이것 봐라~!! 하는듯한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크고 동그란 눈사람은 그 여자아이의 표정처럼

모든 게 다 동글동글 귀여웠다.


우리 아이들도 큰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런데 눈덩이를 뭉치고 그걸 또 크게 만들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꾸 부서져버리는 눈덩이에 속상한 아이들의 마음과

콜록 기침소리에 오래 놀다 가는 낭패가 나겠구나 싶은 엄마의 불안함만 서로 섞여 덩이덩이 커지고 있었다.

결국 작은 눈사람과,

눈집게로 만든 더 작은 눈사람만을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억울해 보이는 눈사람.


집에 와 몸을 녹이고 저녁찬거리를 사러

눈밭을 헤치고 가는 길.

그사이 가는 곳곳에 눈사람들이 서 있었다.

놀이터 그네 앞, 미끄럼틀 앞, 분리수거장 앞.

이렇게 많은 눈사람을 본 것도 처음이다 싶었다.

사람들이 어지간히도 내리는 눈이 좋았나 보다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른은 어른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열심히도 만들었구나 싶으니 눈사람을 그냥 지나 칠 수 없었다.

그 표정들을 가만히 보니 어찌 그리 각각인지

하나도 똑같은 얼굴이 없고, 하나도 똑같은 표정이 없었다.

개성이 흘러넘치는 눈사람을 보니

문득 이걸 만든 사람은 누굴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침시간 조금밖에 놀지 못하고,

큰 눈사람을 완성하지도 못한 우리 아이들의 작은 눈사람은 불쌍해 보이기도, 억울해 보이기도 했는데

저 눈사람을 만들던 사람의 마음도 그리 녹아 있는 걸까?

이리저리 눈사람을 보며 사진도 찍으며 걸어 다니다

아고!! 저녁 준비해야지!!

서둘러 걸어가고픈 마음이지만

미끌거리는 길을 잰걸음으로 걸어왔다.


내년 마지막날 즈음에 이렇게 또다시 눈이 온다면,

3시간을 굴려 키만 한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사진을 보내온 친구의 눈사람처럼,

우리 아이들과 아주 큰 눈사람을 만들어 봐야지.

그땐 조금 더 컸으니 콧물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억울한 표정이 아닌 눈사람을 만들어 봐야지.


고 녀석 인상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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