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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Jul 02. 2016

# 어디로 가고 있나요

방향 없이 흘러가다가

아파트 단지 앞 김밥집으로 향했다.

문 앞에는 "주일은 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사이 무슨 변화가 있었나 보다.

이렇게 김밥집 스토리를 궁금해하는 건, 그 날의 짧은 인사 한 마디부터였다.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네요..."

그 한마디에 계산을 하시던 사장님은 그제야 나에게 시선을 맞추며 웃음을 보이셨다.

마침 손님이 나말고는 없었으므로 얘기들은 이어졌다. 한 마디, 두 마디.. 얘기들은 줄줄이 김밥의 길이만큼 이어졌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김밥집을 하게 된 사연은 그분의 삶에서 놀랄만한 일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거나,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해왔던 일이 있었는데 뜻밖에 계기로 시작한 것이 김밥 집 이었으니 할 얘기들도 참 많아지신 것 같았다.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고급 음식점에 가면 그 값에 합당한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까칠한 손님이었는데.."

그분의 말을 쭉 이어 들었다.

"김밥집을 하니깐 어떤 분들은 값싼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니깐 그렇게 대하기도 해서 속상할 때가 있어요. 예전에 자신의 모습도 생각나고, 누군가가 해주는 것들을 거저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갖게 되네요... 인생의 공부라고 생각하며 하기로 하는데.."


얘기들을 듣다가 마침 한참 일본 식당의 아기자기하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식당 영화를 본 것들이 생각이 나서 그런 이상적인 식당을 해 보실 수 있기를 바라며 얘기들을 이어갔다.


그 뒤에도 김밥집이 생각나서 들를 적에 김밥을 사는 것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근황들을 묻는 모습으로 흘러갔다. 그다음 번에도, 그다음에도..


드문 드문 가긴 했지만 지난주에 들렀을 때 뜻밖에 소식을 들었다.

"가게를 내놓게 됐어요."

오래하실 수 있을까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만두시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셨나 보다. 생각해보면 4개월 남짓한 시간이었는데 식당 하면서 책 한 권은 쓸 것 같다고 하시는 얘기들에서 못다 한 말들이 많으신가 보구나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4년 같은 4개월을 보낸 사장님의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무작정 뛰어든 음식점 일이 그만두었다는 것으로 말하시는 것만은 아니라고 들렸다. 그 말을 다시 생각해보는 건 방향 깊게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뛰기만 했던 또 다른 나를 떠올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참 일들이 많아졌다. 공간이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듯이 이렇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 말고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일들이 자꾸만 눈앞에 보인다.

"사는 게 바빠서.."라는 말에 모든 함축적인 의미들을 구구절절 설명하면 길어지지만 그 사는 일, 잘 살아가기 위해 바쁜 것들의 방향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무작정 달리다가 힘을 다 잃고 주저앉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천히 달리더라도, 원하는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늦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의 대한 믿음과 배짱만큼은 지니고 싶다.

사색의 공간을 찾아 방향을 다시 고쳐 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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