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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Nov 24. 2016

# 자격을 갖는다는 것

강의실 한가득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는 초면인 사람들이 교실 가득 붓을 들고 있었다.

내 옆에 짝꿍이 되어 시험 보는 어느 분에 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수능처럼 인생의 많은 시간들을 공들여서 보는 인생 시험 같은 것도 있지만, 미래 대비용 시험도 심심치 않게 봤다.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 가려고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전공 관련 자격증 따려고 전전긍긍이었다.

그건 어떤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같은 일이었다.

나에게도 예외는 없기에 방학이 되면 오로지 자격증 따는 일로 시간을 보내었었다. 그렇게 딴 자격증들은 얼추 내게도 전공하는 학과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만 같았다.

그것이 내게 자격이라는 것을 이름 붙여 주었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자격증이 하나, 둘 생겼을 때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안심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 자격증 덕분이라 생각하고 나도 직장 생활이라는 것을 했다.  그러다 큰 슬럼프를 겪었다. 일에 대한 회의감 혹은 내가 평생 할 일이 맞는가에 대한 어떤 그런 생각들.. 힘들게 공부시켜 준 부모님의 고생이 헛수고가 되는 것만 같아서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몇 년간을 그래도 일을 했지만 끙끙거리다 결국은 이제껏 공부한 것도, 자격증도 다 소용없는 다른 일을 찾아서 갔다. 

바뀐 일은 내게 너무나 잘 맞았고, 신세계를 만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따려고 했던 자격증은 내게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 이후에 아주 오랜 시간 더 이상 자격시험을 볼 일은 없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아이 키우고.. 그렇게 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내게 그 이상은 없었다. 

아주 가끔 생각해본다. 나도 다시 일을 하게 될까? 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아직도 엄마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놓고 무언가를 하게 되리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지만 그 언젠가를 위해 자격을 채우기 위해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어 지는가 보다.  

오래전 어느 날처럼 또다시 자격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다시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에 시작이나 끝은 준비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인지 모르겠다.

하나의 세상에 들어가 보면 그 안에 수많은 능력자(_._)들이 눈에 보여 너무 오르지 못할 산처럼 지레 겁먹게 되는 마음도 들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그 고수들 역시도 처음부터 고수는 아니었으니 다 그 떨리는 처음부터 시작하였으리라. 

2016년 11월 어느 날. 나는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붓을 들고 시험을 보았고, 그리고 결과를 기다린다.

자격을 갖고 싶다..어쩌면 제일 원하는 것은 종이 자격보다도 가장 내게 필요한 당당한 마음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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