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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r 07. 2017

#글이 당신에게 보람을 안겨줄 때는 언제였을까

 

손에 빳빳한 상품권 두 장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우리 어디로 갈까?"

모래알처럼 작은 글씨를 읽어보는데, 우리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메이커 매장들의 이름을 드문드문 읽어 내려갔다. 이 상품권이 어디서 왔는가 하면 그야말로 글 써서 받은 것, 평소 좋아하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싶어 질 적에 채택된 사연 선물이었다.

음식물 분쇄기, 온누리 상품권, 의류 상품권, 건강식품, 수저 세트, 책, 공연 선물..... 이런 것들이 집으로 날아왔다. 너무 좋아서 택배로 온 수신 이름도 버리지 못하고 가위로 오려놓고 꼭꼭 간직하고 있었다. 받은 것들은 더 쓰지도 못하고 모아만 놓았다가 그야말로 아끼다가 다 무용지물이 될 것 같아서 쓰기로  했다.

나의 직업은 전업 엄마. 취미는 마치 숙명이자, 사명처럼 느끼고 살아가는 글쓰기. 불과 이런 일들은 몇 년 내외에 범위에서 글을 밖으로 써보기 시작하는 때부터였다

혼자만이 간직하는 글쓰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드문드문했었지만, 이렇게 나의 글을 겁도 없이 평가에 자리로 내어 놓는다는 건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열심히 잠도 못 자고 공들여 써놓은 글이 미채택이 되고, 읽히지 않고, 선택받지 못한다면 글이 내게 힘이 아니라 좌절과 실망감으로 다가올 것이 너무도 확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내가 쓰는 글이 정말 나만의 세상에 갇혀 나를 위한 글로만으로 존재할 것인가, 읽히는 글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도달할 수 있는 글이 될 수도 있는지 아주 낯선 세상에 떨구어 본다.

그렇다면 반응이 없는 글을 쓰는 이들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자격도 없는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 이철한 작가님의 연탄길도 지금 이렇게 많이 읽히지만, 그분이 그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냈을 때 몇 년 동안 번번이 거절당한 사연을 알기에 일반화할 수도 없다는 걸 잘 안다.   

다만 나는 용기 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해서라도 조금의 글로서의 재능이나 희망을 찾아 계속 쓰고 싶은 이유들을 만들고 싶어서였는지도 말이다.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보내고 받은 의류 상품권을 가지고 남편에게 옷을 사주러 집을 나섰다. 이름 난 매장을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옷들이 고급스럽게 걸려있었고 나의 시선은 제일 먼저 가격표로 향했다.

"으아... 비싸다 너무 비싸다. 무슨 옷들이 이렇게 비싼 거야."

그 상품권만 아니었으면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라고 우리들은  얘기했다. 그 날 우리들은 몇 군데 매장을 돌아다니다가 봄 재킷 하나를 샀다. 뭔가 바뀐 것 같은데 거울 앞에서 이 옷, 저 옷을 입어보는 남편의 모습을 보다가 뿌듯함이 밀려왔다. 남편은 뭐라 한 번도 하지 않는데 나는 늘 돈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집에 있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지 않는가. 그 옷을 볼 적이면 나도 글 써서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마치 커다란 징표처럼 생각할 것만 같았다.

어제 어쩌다가 어느 작가의 블로그 글을 보다가 글 써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글 제목에 확 마음이 끌려서 읽어 내려갔다. 결론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적어놓은 글을 보다가 나는 작가도 아닌데 왜 마음이 헛헛해졌는가 모르겠다. 글로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가치까지 생각하자니 글에게 미안해지지만,  며칠 전 글 써서 남편에게 비싼 재킷도 사주던 나는 얼마나 밥보다도 맛있고, 마치 베스트셀러 작가의 인세 이상을 받은 것 같은 기쁨을 누렸는데 말이다.

너무 앞선 생각이라면 글이 너무나 좋아서 생각하다가 더 멀리 생각한 한 조각이라고 말해두겠다.

지금의 내가 글이 좋은 건 이유 없이 오랜 시간에 나의 소원이자, 장래 희망이자, 쉼이었고, 내가 할 수 있었던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그것이었다.

좋아서 가다 보니 남편의 재킷까지 사줄 수 있던 어느 날, 글 써서 보람 있다는 생각이 마음에 차올라서 적어놓고 싶었다. 글이 내게 근사한 창조적 날을 선물해주던 그날을, 이 날을 기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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