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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y 05. 2017

#처음부터 뛰어난 작가는 아니었다

무심코 쌓여있는 핸드폰 사진들을 넘겨보다가 2년 전까지 다다랐다.

그중 몇 장의 사진들 앞에 멈췄다.

사진의 설명은 길기도 한데, 언젠가 남편의 회사에서 임직원 가족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한다는 엽서를 보고 썼던 참가자들 중에서, 나를 취재하고 싶다고 해서 글 쓰는 모습을 찍었던 영상 사진이었다.

글 쓴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찍고 싶다니 전화를 받고서 몹시도 설레기도 했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그 촬영이 뭐라고 전날 밤잠까지 설치며 걱정하다가 하지 않는다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아침이 되었다.

생각보다 당일 아침이 되니 이런 것을 또 언제 해보겠냐며 마음은 오히려 담담해졌다.

담당 PD님은 집에서 글 쓰는 나의 모습을 찍기도 하시고, 아이와 있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도 하셨고

그때의 글을 썼던 것들에 대한 계기들에 대해 물어보셨다.

그때 나는 대학시절에 고마웠던 누군가에 대한 수필 한편과, 꽃과 사람을 견주어 시를 쓴 두 편의 글이 있었다.

내심 나는 수필 쓰는 것을 더 좋아하였고 집까지 촬영을 온다니 무슨 큰 상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김칫국을 먹은 것이었다.

수필은 상도 못 받고, 생각지도 못한 시가 가작이었다.

큰 상도 아닌데 왜 굳이 촬영을 온다고 하셨을까 한동안 애꿎은 원망이 나오기는 하였지만, 그날의 기억들이 가끔씩 훑어보다가 두고두고 고마운 마음들이 우려 났다.

내게 질문으로 건네셨던 질문들, 종이 위에 글을 쓰는 모습들, 그리고 영상을 보면서 스쳐간 글귀에 강렬함 이런 것들이 마음이 멈추고 말아서 말이다.


"그녀들도 처음부터 뛰어난 작가는 아니었다"


  

지난주 한 작가님의 북 토크에 다녀와서 글 쓰는 것에 대해 생각들을 해보다가 이 글귀가 더 눈에 띄었는가 모르겠다. 작가님은 40대 후반이 지난 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셔서 에세이스트로 등단을 하셨던 분이었다.

25년간 시집살이와, 연년생 아이들, 남편 .. 어쩌면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자신에 대한 물음들이 글을 써가는 과정으로 이어지면서 작가가 되신 분이었다.

벌써 여러 권의 책을 내신 분이었는데 그날의 북 토크 자리에서 한 분의 얘기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글을 처음 쓰겠다고 했을 때, 내가 써준 원고를 내밀었는데 수정조차 할 수 없을만큼 엉망이었어요(작가님 말)

"내가 선생님으로 있었는데 이제는 자리가 바뀌었어요. 

누구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어떻게 말로 토해내느냐에 따라 다른데, 그 말로 토해내는 과정들이 너무나 투명해서 놀랐습니다..그때는 책 표지 앞에 무슨 프로필을 적어야 하는 지 고민을 했었는데, 이젠 프로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그녀에게 다시 놀랍니다(작가님의 지인의 말)"


오래전 글을 써보겠다고 했던 작가님을 지도했던 한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었다.

글이 무엇인지 마음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는 그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글로 바뀌어졌을 때 바라보던 선생님의 말은 나의 마음에도 다가왔다.

일상의 많은 일들이 어떻게 적히는지, 그 삶을 적어내는 과정들이 어떠해야 하는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이 글자들의 조합이 아니라, 그 작가님의 살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글에 진심을 읽어주는구나, 글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잘 살아야 하는구나로 들렸다.


작가님께 글 쓸 때의 힘든 점이 무엇인지 여쭤보니 책을 몇 권씩 냈는데도 여전히 글 쓰는 것은 힘들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하셨다.

거꾸로 글을 써서 좋았던 것은 잘 살아가고 있는지 계속 묻다 보니 자기를 성찰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 얘기들이었다.

독자들의 질문은 이어졌다.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시는지, 글을 쓰려면 채워져야 쓸 수 있는데 얼마만큼의 책을 읽는지,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의 내용들은 어떤 것인지 등등 말이다.


쭉 듣다가 보니 책을 내는 과정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첫째로는 글을 쓸 적에는 독자 찾기에 대한 것이다.

어떤 연령층을 대상으로 글을 쓸 것인지 말이다. 작가님의 현재 나이는 56세이신데, 나온 책의 독자층은 30대~40대 연령층을 위한 주제의 책이었다. 독자들 중에 한 분은 40~50대를 위한 책을 내달라고 부탁까지 받으셨으니 30대의 자아 찾기의 과도기들을 지난 후의 과정들은 어떤 글의 내용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둘째로는 글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글의 주제라고 하면 적절하겠다. 작가님의 글쓰기 주제의 키워드는 엄마, 자아, 꿈, 결혼이었는데 글을 쓴다면 독자의 편에 서서 그 또래에 고민하는 것들, 관심을 가진 것들에 대해서 써야 하는구나 느끼기도 했다.


셋째로는 작가라면 읽는 독자들의 생각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기는 자신을 위한 글이지만, 글을 쓴다면  읽히는 글들에 대한 생각들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 말고도 제일 궁금한 것이 있어서 여쭤봤다.

글을 썼지만 독자들에게 읽히지 않을 적에 그때는 글을 쓰지 말아야 할까라고 생각할 적이 있을까 하고.

다행이지만 작가님은 독자들의 반응 또한 좋은, 그런 글을 쓰고 계신 분이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할 적에는 어떨는지 모르겠다.

쓰는 글이 공감을 얻는다면 쓰는 사람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힘이 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쓰는 것이 그렇게 쉽게 단념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년 전 사진을 보다가 인터뷰를 했던 그 날의 말들이 새록새록 생각이 나서 작가님의 말과 함께 다시 읽어봤다.

"그들이 처음부터 뛰어난 작가는 아니었다..."

 뛰어남에 대한 기준을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삶을 잘 살아내는 것, 곁에 있는 사람들이 보아도 글과 삶이 다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작가님이 좋아하는 말이라던 "생각하고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을 생각하다가 2년 전의 그 우연찮은 백일장의 날로부터 지금까지도 글을 쓰고 살아가다 보니 작가님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들도 많이 있게 되고, 그 날이 다시금 그 위를 걸어가도록 붙잡아 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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