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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r 13. 2018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단어, 마흔

새벽을 향해 가는데 잠은 안 자고 스탠드 불빛 하나 켜놓고 노트북을 열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아침부터 새해 다짐을 적어도 벌써 적었을 텐데, 하루를 꼬박 넘기고서 이 시간에 멈췄다.  

'싱숭생숭' 온종일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이 상태로 온 집안을 정리하느라 기운을 뺐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어제의 연장이지만, 하루가 지나고 나서 나이 한 살 더 먹게 되었다.

그리고 난 마흔이 됐다. 마흔이라니...

그러려니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그 나이를 맞이한 처음 날은 싱숭생숭한 상태였다.

눈을 뜨자마자 청소 삼매경에 빠졌다. 담아놓은 것들 버리기부터 시작했다. 

버리고, 버리고 버릴 것들이 이렇게도 많았을까 공간 속에 있는 것들이 버거워 이것이라도 비우면 마음이 가벼울 것이라 생각했다.

늘 고정적으로 있던 노트북을 열던 자리도 바꾸어 앉았다. 이만하면 만족한다. 새로운 날, 새로운 분위기를 내었으니 

마음도 정리가 필요해졌다.

마흔, 마흔, 마흔. 이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내가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의 나이는 마흔한 살이었다. 이제 십 년을 넘어 내가 남편의 나이 가까이 뛰어온 것처럼 코앞이다. 

어릴 적 엄마, 아빠 나이를 가늠하다가  마흔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말하다가 엄청 큰 숫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혹이란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는 그 말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은 나이가 그렇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고 하는 말이었나 보다. 

서른아홉을 살면서 나는 마흔이 넘은 사람들에게 어떤지 나도 모르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어때요?.." 

나의 질문은 무거웠는데, 대답을 해준 사람들은 가볍게 회신을 해줬다. 

"똑같아." 

"똑같다니?.."

마흔이 된 첫날. 나는 똑같지 않았다. 

"그래.. 첫날이라 그럴지 몰라.."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문득 대학 때 친구랑 밥을 먹으면 했던 대화들이 생각났다.

"넌 나중에 어떻게 살 거 같아?" 

주저리주저리 우리들은 서로의 미래를 거꾸로 추리해서 말을 하기도 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그 친구도, 나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만 키우고 있을 것 같았던 나는 글씨를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이렇게 틈만 나면 잠자는 것보다 적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 점점 더 되어가는 것 같다. 

20대는 직장을 다니고, 30대는 결혼을 하고, 40대는 어떨지 나이를 어떻게 딱 잘라서 할 것들을 구분해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인지 서른 아홉을 살면서 모험도, 안해본 것들도 조금이라도 더 해보고 싶었다. 

마흔이 되면 모험이 멈춰지기를 바랬다. 그렇지만 물건들을 정리하다보니 그 생각이 맞을까? 싶은 마음에 털어버려야 하는 마음은 아닐까 싶었다.  

지난주 일러스트 전시회를 갔다가 그곳에서 전시를 하던 캘리 작가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가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가 글씨를 쓰는 것이라서 쓰는 것이 어렵지 않고 즐겁다는 말을 하는 그분이 생각났다. 

이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하라면 자신은 어려워서 못할 거라고. 

자신이 하는 일이 사역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며 한다는 그분의 말을 생각하다가 오늘 내가 한 싱숭생숭한 물음들이 부질없이 그쪽을 향해 간다. 

"그분처럼 그렇게 하는 일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나도 또한 자신있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무언가가 되려는 것에 대한 힘은 빼고, 담대함으로  글씨를 쓰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가면 좋겠다..."

글이 무엇인지 나는 이 글자에 마음에 설레며 시시때때로 고단하고, 그럼에도 다시 생각나는 사람인것 같다.

올해는 무엇을 기록할까 생각하다가 "마흔 즈음에'를 1년동안 어떻게 마흔 살을 먹어가는지 적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문득으로 적었던 생각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마흔을 적어보고 싶다.

(2018년 1월 2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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