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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r 13. 2018

#마흔, 지금의 나

지금의 나

지난주 라디오 방송에서 받은 표를 가지고 태어나 처음으로 일러스트 전시회를 다녀왔다.

그곳에 가면 국내 캘리 작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얘기가  순간 들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글씨를 쓸까?.."

잘 됐다 싶어서 24층에 사는 일러스트를 전공한 미대 언니랑 같이 서울 구경을 가기로 했다. 

부스에 들어서자마자 그림 세상, 둘러보는 사람들, 호기심 어린 눈동자들이 가득했다. 한공간에 머물며 서로가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을 보느라 마음이 두근두근. 내가 언제 이런 일러스트에 관심이 있었나 싶게 그림들이 시선 속으로 녹아들었다. 

부스마다 다른 그림들의 특징들이라면 작가의 성향이 고스란히 투영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동물 캐릭터로, 어떤 사람은 모든 그림들을 동그랗게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만화처럼 그리고, 어떤 사람은 수채화로 그리고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따뜻하게 그리고, 어떤 사람은 성경 말씀을 적고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한옥만을 특징적으로, 어떤 사람은 타로 카드로, 어떤 사람은 어두운 컬러로 험악하게 그리고. 

다들 그림을 그리는데 그 관점과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달랐다는 것이다. 

한 부스에 진열된 그림과 혹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몇 마디 얘기들을 나누다 보니 갓 시작하는 고등학생부터 이름만 들어도 알고 있는 책들의 그림을 그려 넣는 작가도 있었고, 다 달랐다. 

"색깔"

하루 종일 걷고 걷다가 발에 돌을 달아놓은 것처럼 무겁고 움직임은 느려갔지만, 마음속에서 이 단어가 툭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다른 그 색깔들이 눈에 띄게 드러나 예술가의 공간 속에 있었다는 거다.  

그곳에서도 조금 더 오래 머물렀던 곳은 나도 원하는 그런 색깔이 있던 곳이었다.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나도 할 수 있을까? .."

세상 참 재주 좋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만나고 온 것 같은 그 공간에서 물음표가 내게 던져졌다.

예술가들의 거대한 벽도 있었지만, 다양한 색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마음이나, 나는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 지 알것만 같았다.

마흔 즈음에 나는 무슨 색이 있기를 바랐을까?

"라디오에서 나왔던 나이에 대한 편견,  늦은 때, 젊지 않은 때가 이때일까?.."

자신의 색깔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남편의 언덕 옆에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것 같고, 언젠가 할 은퇴를 생각하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아내, 밥심 사랑심으로 자랄려면 챙겨야 하는 아이둘의 엄마, 라디오와 편지를 이유 없이 좋아하는 나, 이렇게 가끔씩 블로그에 적는 것을 즐겨 하는 기록하는 일상,

어떤 단어로도 지금의 나를 한 단어로 표현이 안된다. 

생각하면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이름표. 마흔. 

그럴듯한 직업의 이름표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 커주고 있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무엇을 위한 이름표는 늘 갈망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을 수도 있다는 마음은 공존한다.

세탁기 위에 세탁할 옷들이 쌓여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이들 때에 맞게 밥 잘 챙겨주면 좋겠고, 집안에 먼지가 쌓이지 않아서 상쾌한 오늘이었으면 좋겠다.이것이 바로 마흔의 오늘일뿐이다. 

한동안 종이위에 그림을 그려보며 이 생각만은 마음에 굵게 적힌다.

"색깔있는 사람" 지금 이 즈음에 나를 색깔로 표현하고 싶어진다. 


(2018년 1월 8일 적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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