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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y 21. 2018

#마흔 넘어 일하기 시작한 이유

이번 주가 결혼한 지 10년 되는 날이 돌아온다. 

어마어마한 세월을 살아야 배부를 만큼 시간의 질량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10년이 1년처럼 빨랐다.

그리고 우리들의 시간은 오래전 어렴풋이 생각한 것으로부터 조금씩 생각해야 할 것들이 눈앞에 놓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정년"이라는 것이다. 

남편의 나이 52세. 나는 마흔. 내가 남편을 만났을 29살을 생각하자면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갈지 몰랐다. 

아이들의 나이 10살, 8살. 아이들은 점점 내가 느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무럭무럭 자라 갔다. 그리고 더불어 남편의 시간도 말이다. 

한동안 남편의 회사가 구조 혁신을 한다고 많은 사람들을 내보냈다. 아내들이 무서워하는 '구조조정'을 했다.

웃으면서 하는 '인사'말고,  두려워지는 '인사'이동이 생기기 시작하면 '희망퇴직'을 권유하기도 하는 사례들은 그동안 비일비재하게 들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더 험한 지경에 이르기까지 가다가 그나마 몇 년의 월급을 쥐여주는 것까지 받을 수 없을 것을 생각하면 희망퇴직은 아예 덮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남편에게 전해 들었던 사례들은 좀 달랐다. 나이가 50이 넘어가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는 것을 선택하기보다, 굴욕을 참고서라도 어떻게 하든지 버텨보자는 것으로 선택을 한다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었다. 

오히려 그런 희망퇴직은 나이가 젊은 30대들 중에서 한다는 것이었다. 몇 년 치 월급을 다 받으면서, 이직의 기회가 그나마 많이 허락된 이들에게는 이것 또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그래..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이들도 길게 아주 더 길게 미래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는 선택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마음이 가는 건 50대 중반이 지난 사람들의 회사에서의 모습들이다. 어떤 분은 퇴직을 권유받고도 나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자녀의 학비 부담이었다. 회사에서 대학까지 대어주는 자녀 학비는 월급 생활자들에게 엄청난 혜택이 아닐 수 없는데 '아빠'이자 '가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자신을 향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버티기'를 선택한다고 했다. 

"버티기"그건 게임에서는 재미일지 모르지만, 직장에서는 눈물겹다.

그렇게 희망퇴직을 권고받으면서도, 일을 주지 않는데도, 무언의 압박을 참고 견디는 50대 중반의 이야기는 생각하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아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의 경제적인 것들을 책임지는 가장의 어깨는 얼마나 무거울까 

무언가 부족한 것이 없이 좋은 대학을 나오고, 많은 것들을 여전히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점점 밀려나는 나이의 파도도 휘몰아치는 바람의 일렁임처럼 '철썩'하고 밀려가기를 권고받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체 남편의 두 팔 안에서 지내오던 나도 이제 그 어깨 밖 세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의 나이와 남편의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순간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기도 한다. 

"그때 즈음 우리들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이런 물음이 저절로 나온다.

그럴 즈음 나는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여보 만약에 말이야, 당신이 회사에 안 다닌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혹시 회사 그만두면 뭘 할지 생각해 봤어?" 이 말을 하고 있으면서 뭔지 모를 미안함이 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같이 나눠야 할 대화의 주제들이 된 것 같았다.

돌아온 남편의 대답은 차례차례 바뀌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에서 "작은 회사로 이직하기"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수학 과외하기"로 바뀌어갔다.

남편은 언제부턴가 이런 나의 화두로 인해 이렇게 생각들을 바꿔갔는지 모르겠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것에 대한 남편의 생활 이야기는 앞으로도 적어보고 싶다.

그랬다. 나는 어느 순간 조금씩 삶에 대한 또 다른 순간을 같이 맞이해 주어야 할 아내의 자리 뒤로 같이 손을 잡아 주어야 할 동반자가 되어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지 열심히 회사 다닌 것뿐이 없는데 나이를 먹었다. 단지 열심히 살아갔는데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해야 할 때가 가까워 오고 있다. 

나는 그래서 점점 어느 순간 취미가 아닌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을 할 즈음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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