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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y 21. 2018

# 세 번째 직업 캘리그라퍼

취미가 아닌 일을 찾았다.

'캘리그래피' 이름도 생소했던 그 다섯 글자가 요즘은 지금의 온 시간을 채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머릿속은 당장 이번 주에 수업할 것들이 둥둥 떠다닌다. 글씨를 쓰는 일, 그것은 내게 또 다른 옷이 되었다. 

캘리그래피는 글자에 감성을 더해서 쓸 수 있는 모든 도구로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글자 예술이다. 글자 예술을 적어놓지만 글씨를 아주 잘 쓰는 명필을 상상하면 조금 벗어난다. 나는 초등학교 때는 글씨를 또박또박 잘 쓴다고 생활기록부에 적혀있었기도 했지만, 대학 때는 교수님께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고 잘 좀 써달라는 말씀도 듣기도 했으니깐 말이다.  

그런 내가 왜 '캘리그래피'라는 것을 선택했을까? 

생각해보면 글쓰기와 아예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글이 있어야 글씨를 쓸 수 있으니깐 말이다.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 블로그까지 만들었다면, 이제는 글씨를 쓰면서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비슷비슷하고, 어쩌면 하나에 집중하느라 글쓰기를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처음 수업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책상에 있던 화선지와 붓과 먹물을 보면서 "ㄱ, ㄴ, ㄷ, ㄹ, ㅁ.." 다시 한글을 배우는 것처럼 붓에 묻은 검은 물의 흔적들이 

"나는 누구?"라는 생각이 들 만큼 어색했다. 곁에 앉아 또 다른 진도가 빠른 수강생들의 글씨 솜씨를 보면서 오르지 못할 산처럼, 쳐다보고 있던 나는 어느새 캘리그래피 선생님이 되었다. 

말이 '어느새'이지 많은 날들을 생각하면 "세상에 공짜가 없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만큼 노력이 요구된다. 그것도 매일매일 말이다. 

초급, 중급, 고급, 전문가, 포트폴리오 과정을 거치고 나서 보았던 실기시험, 그리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 한걸음, 한 걸음이 어느 날은 재미있어서 하기도 하다가, 시간 압박에 힘들어하다가, 또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이 되기도 하다가, 잘하지 못하는 좌절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속에 있었던 것은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한 희망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오랫동안 세상에 나가지 않았던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많은 날들이 생각으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 보니 이 일에 대한 가치들을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 이렇게 힘이 나는 말들이 있을까? 

이렇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말이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시작에 대한 동기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삶의 숙제들이 들어와서였다면, 과정 속에서 느끼는 것들은 글에 대한 마음이 더 강해지기도 하다가 누군가의 마음을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통로로서 마음에 차오르는 것들이 참 따뜻하다.  

첫 번째 직업은 대학 전공을 살린 세금 신고하는 일을 했고

두 번째 직업은 전공으로부터 맞지 않는 나를 방황하게 하다가 대학교에서 일을 하던 조교를 찾아갔고

세 번째 직업은 이제 남편에게 가까워 오는 은퇴를 생각하며 글씨 쓰는 일을 찾아갔다.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남편의 언제가 다가 올 은퇴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때때로 어쩌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한다.

글과 관련된 가장 가까운 일 곁에 있으니깐. 

무언가에 대한 동기들은 뜻밖에 순간에,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나는 어디로 날아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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