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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Jun 01. 2018

#은퇴 준비생을 인정하기로 했다

2018년 6월 1일. 

올해의 절반이 지나갔으며, 다른 한편으로 올해의 절반이 시작되는 새벽이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계속 적고 싶었던 것을 공교롭게도 6월 1일에 적고 있다. 그것은 은퇴 준비생이라는 제목.

마흔을 적기로 했었는데, 이렇게 은퇴 준비생을 적고 있을 줄 몰랐다. 

한동안은 지금의 나, 마흔을 적어보려 했다. 그런데 뭔지 모르게 마음이 시원하지 않았다. 적지 않아도 될 것을 적고 있는 것 같았고, 그보다 더 마음속에서 흘러가는 또 다른 것이 나의 마음을 뒤에서 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은퇴에 대한 것이었다. 

목 끝까지 올라올 듯, 말 듯한 말이 마흔 곁에 있었던 은퇴라는 것이라니 왜 그럴까 문득문득 묻고 싶었다.

"왜 그럴까? 나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나는 마흔이지만, 남편은 쉰두 살이고, 남편은 다른 한편으로는 곧 나이기도 하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부부라는 것은 나와 상대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한 배를 타고 있으므로 내가 마흔의 배를 탔어도 나와 함께 한 사람의 상황을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며칠 전 여행을 갔었던 일에서 더욱 알게 되기도 했다. 


춘천 여행을 갔다가 같이 갔던 일행들과 카누를 타기로 했다.

나는 물을 무척 무서워하는 사람이라서 나를 제외하고 남편과 아이들 둘과 한 친구와 같이 배를 탄다고 했다. 

노를 저을 두 어른 사이에 딸 둘이 탔는데, 안전교육을 받고 배를 탄다며 내려갔다. 그리고 구명조끼를 입고 카누를 탔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탔다. 잘 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몇 번이고 잘 탈 수 있을지 물어봤는데도 타겠다고 했다. 잘 다녀오라고 하고 멀찌감치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안전하게 다녀오기를 바라봤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여덟 살 딸의 목소리였다. 

무서워서 후퇴했구나 생각하고 물어보니 뜻밖에 상황들을 전해 들었다.

카누를 타고 있던 배 옆으로 보트가 '쌩"하고 지나갔는데, 그 옆으로 물이 파도를 쳐서 출렁임 때문에 낮은 배 안으로 물이 들어왔다고 했다.

아주 작은 일렁거림이 넘실넘실 거리더니 '첨벙'하고 물이 배속으로 들어왔고, 아이들은 가만히 있다가  물이 들어오니 작은 아이는 무서워서 가겠다고 울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강 한가운데서 그야말로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 

울고 있는 아이 달래랴 정신이 없었고, 응급처치로 젓고 있던 노를 수직으로 추켜올리면 구조를 요청하는 신호라는 것을 교육받은 남편은 곧바로 노를 들어 올려서 그 모습을 보던 구조자는 배와 배를 연결해서 곧장 들어올 수 있었다고 했다.

다 젖어버린 아이의 신발과 옷을 햇볕에 말리며, 겁에 질린 것을 잊게 해주려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줬더니 울음을 뚝 그쳤다.

10살 첫째에게 무섭지 않았냐고 하니깐 무서웠는데 동생이 우니깐 참았다고 했다. 왠지 마음이 짠했다. 

같이 타고 있던 서른이 가까웠던 그 친구도 물어보니 어른인데도 물이 들어와서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고, 아이가 울고 있고, 배 안에는 물이 차있고  당황해서 배가 좌우로 흔들려 버리니깐, 무섭기도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제일 어른이었던 남편 역시도 말이다. 의외의 반응에 겁쟁이 여덟 살 아이의 울음이 어쩌면 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한 배를 타고 가고 있다는 건, 나만 괜찮다고 괜찮은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마흔이라는 폴더에 은퇴 준비생을 수정해서 넣었다. 그리고 제목을 수정하며 많이 망설였다. 

이 단어를 쓰는 것이 왠지 두려웠고, 적기 시작한다면 지금부터 흘러갈 많은 것들을 적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감성에 젖어 무언가를 적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적어야 한다면 나는 덤덤하게 적을 수 있을까, 그것도 한발 더 나아가 공개적으로 적을 수 있을까 차곡차곡 질문들이 날아왔다. 

그러다가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 나는 지금 내 마음이 이래요. 그리고 요즘 내 마음속에 차오르고 있는 것이 이것이에요. 그래서 이것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두려워요. 내가 은퇴 준비생에 대해서 적는 것에 대해서 기분 나쁘지 않아요? 괜찮아요? 그리고 내가 고민이 너무 많은 걸까요?"

뜻밖에 남편에게 돌아온 대답은 얼마간의 주저함 들을 박차고 나가게 했다.

"괜찮아. 그게 뭐 어때서 그래. 누구한테나 다 돌아오는 일인데.."

그래.. 그래서 적기로 했다. 적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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