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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y 24. 2018

# 결혼 10년 차에 발견한 것들

여느 때와 같이 눈을 떴다. 그리고 어제와 다르지 않게 주방으로 향했다. 

제일 처음 손에 잡힌 것은 흐르는 물에 닭의 맨살을 닦는 일이었다.

댕강 잘린 목과 속이 텅 빈 닭을 들고서 구석구석을 닦으려니 갑자기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먹고 싶다고 한 주인공은 열 살 딸이다. 

그래, 오늘 아침 메뉴는 백숙이다. 

커다란 솥에 물을 찰랑찰랑하게 넣고 제법 오싹한 닭을 풍덩 집어넣었다. 파와 양파와 마늘을 섞어서. 

오늘도 난 이렇게 주방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결혼 10주년의 감회를 먼저 느끼며 주방에 노트북을 가져다 놓고 닭이 푹 익을 때까지 적어보기로 했다. 

곧 아이들이 일어날 테니 나의 글은 두서없을 것이고, 자세히 적지 못할 것 같지만 정해놓은 시간에 후다닥 적기를 해본다. 

2008년 5월 24일

2018년 5월 24일 

10년이 지났다. 그때의 아침은 신부화장을 할 시간이었고, 지금은 딸 둘과 남편의 아침을 경호하듯 먼저 일어나 아침을 맞이했다. 

이렇게 빠르게 시간이 지나갈 줄 몰랐다. 그리고 나는 딸 둘의 엄마가 되어 있을 줄도 몰랐다. 그리고 또 마흔이 될 줄은 더더군다나 몰랐다.

주방에 서서 눈에 들어오는 거실과 집안의 진열된 것들이 왠지 지금의 나를 말해주듯 다 걸려있는 것 같다. 

오늘을 어떻게 적어볼까 생각하다가 감사한 것들을 적어보고 싶었다.  

최대한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적을 수 있을 것이기도 하다.  


감사한 것 

1. 아들, 딸을 낳고 싶었지만, 서로 다른 둘을 낳은 것

딸 둘은 친구 같았고, 무언의 경쟁 상대로 싸우기도 하지만, 너무 다른 둘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인생을 배우는 것 같다.

같이 있다는 것의 힘과 무궁무진한 자매들의 세계를 말이다.

오래전 엄마 마음 아프게 한 것이 얼마나 철없는 일이었는지 알았고, 말없이 등 뒤에 다가와 어깨를 주물러 주는 손이 얼마나 사랑이 마음을 녹이는지 알 것 같고, 무엇보다도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알게 해주는 것 같다. 


2. 겨우 일어나지만, 아빠와 남편의 이름으로 회사에 가는 한 남자

살아보니 매일 하는 일은 경이롭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더운 날이나, 심지어 몸이 아팠어도.

남편의 월급은 우리들을 시시때때로 평범하게 사는 일상을 지탱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피자를 먹으러 가는 일, 바람 쐬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도록 가는 일,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집 아닌 곳으로 떠나는 일, 신발 한 켤레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생긴 일, 옷장에 옷이 많아진 일, 아이들이 좋아하는 미술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일, 엄마 아빠 용돈 드릴 수 있는 있는 일, 배우고 싶은 것을 해본 일, 그렇게 월급은 우리들의 중앙에 있는 나무처럼 삶을 지탱해주었다. 때론 그래서 고맙고, 때론 돈을 버는 사람만 같아서 미안하고, 때로는 멋지고, 때로는 측은하다. 


3. 주부 경력 10년

결혼하고서 제일 첫 밥상에는 된장국과, 어묵 반찬에 김치와 김.  

엄마는 한동안 시집을 보내 놓고 전화를 하셨다. 뭐 해 먹고 사냐고. 나는 잘 해 먹고 산다고 했지만, 실은 밥때가 고민이던 날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친정집에 가면 공수해온 반찬들로 연명하였고, 또 시시때때로 사람들의 초대는 없는 것도 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여 음식의 종류들을 늘려가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음식은 사랑을 듬뿍 담아서 하는 것, 안되면 검색하면 다 나오는 레시피는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걸 알게 되어 버렸다. 


4. 남편에게 테니스라는 취미의 발견

남편은 집에 오면 회사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나름의 평정심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이었지만, 결혼 4년 차 즈음이었을까

뜻밖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나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의 어느 분으로부터 권유받았던 테니스라는 운동을 하기 시작한 후 남편은 마치 어깨에 날개를 달기라도 한 듯 날아다녔다. 

취미, 그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있는 사람에게 여유롭게 주어지는 특권이라고 생각도 없어졌다. 무언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사람을 행복을 띄어 넘어 무언가를 기다리게 하는 삶의 활력을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말은 언제나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남편에게도 자유시간을 주고 싶어 졌다. 


5. 라디오의 재발견

육아라는 고독의 섬에서 탈출시켜 준 구명 줄이다. 아이와 둘만이 있던 집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한 품에 들어오는 작은 상자였다. 라디오에 첫 문자를 보내고 나서 불렸던 이름은 얼마나 떨렸던가. 

집에 날아온 뜻밖에 선물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세상에 참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다르게 살아가고, 일상다반사, 희로애락이 

목소리 하나만으로 나오는 작은 상자는 나의 머릿속을 재배열할 만큼 큰 매개체였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글 쓰는 것을 시작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쓰고 싶어 졌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이 나왔을 때 세상에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힘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팝송의 팝도 모르던 나는 점점 좋아하는 팝가수도 생기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로보와 제임스 테일러다. 


6. 카메라가 생겼다. 사진의 힘

나의 어릴 적에는 번번한 카메라가 없었다. 사진기를 봤다면 졸업식 날이나 특별한 날에 샀던 장난감 같았던 일회용 사진기였다.

둘둘 감아서, "찍" 그리고 다시 돌돌 감기.

그래도 사진 찍는 건 재미있었다. 결혼하고서 첫 카메라를 장만했을 때 그 얼마나 기뻤던지, 지금까지 쓰고 있는 카메라는 

우리 가족의 모든 것들을 다 담아내 준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찍고 싶었던 순간들을 정말이지 원 없이 담았다.

모든 것들이 정지된 화면. 나는 그 시간의 멈춤을 사진을 통해서 바라보며 흐뭇해진다.  


7. 창문이 큰 집

어릴 적에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결혼한다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 지 말이다. 대충은 기억나고, 거의는 기억나지 않지만, 제일 기억나는 건 창문과 흔들의자였다. 왜 그렇게 창문이 큰 집에서 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밖이 보이는 그런 창문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4계절 색깔을 볼 수 있고,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누워서 바람을 맞고 싶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비도 하염없이 보고 싶었다.

지금은 보통의 아파트들이 다 창문이 크지만, 시골에서 자라온 나는 창문 큰 집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8. 전업주부와 일을 할 수 있는 반반 상태의 나

한때 언젠가 결혼할 나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었을 때, 나는 두 가지 모습을 다 그려봤던 것 같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전념하는 전업주부와 셔츠 깃이 빳빳한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나를 말이다. 

그런 어렴풋한 것은 결혼과 출산 임박을 앞에 두고 보다 선명해졌다. 출산휴가 3개월 후에는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 이 질문에 말이다.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우는 것을 선택하고, 그러기를 희망한 시간이 훌훌 지나갔다. 

그야말로 점점 나의 전공과 내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던가도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먹고, 키우고 사는 일에 삶이 흘러갔다.

그것의 가치는 예상했던 대로 참 크기도 했고, 반대로 나는 점점 더 작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뭐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은, 이럴 거면 왜 엄마, 아빠에게 짐 같은 학비를 받아 다녀야 했을까 하는 생각들도 들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참 회의적이지만, 나를 찾고 싶어 지는 절박함은 내가 정말 시간이 많았던 결혼 전보다 더 많이 절실해지기도 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뭘 할 수 있을까?"이런 질문들.

이것저것 해보면서 몰랐던 세상을 다시 보게 된 것 속에서 글씨 쓰는 일을 하고 있다. 

강사이므로 언제 다시 백수가 될지 모르고, 아니면 계속할지 모르지만, 글을 쓰고 있는 내게 줄을 서서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쓴 종이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에게도 뭔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겨자씨를 발견한 것 같다. 


9. 쓰는 것의 발견.

 나는 참 소심함 사람,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낯을 가리는 것까지 의기소침한 사람이었다.

말이 없었지, 내 안의 하고 싶은 말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이어리에 적고, 누가 볼까 봐 한 해가 지나면 태워버린 다이어리가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다가 싸이월드가 생겨나고 나서, 적는 것이 얼마나 속이 후련한 것인지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음악까지 들어가며 자판을 두드리는 일상, 밤에 늦게 자더라도 적고 나면 그다음 날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마음 

또 가끔씩 좋은 반응을 주었던 사람들의 흔적들도 뭔지 모를 설렘이 시작되었다. 

싸이월드가 갑자기 틀을 바꿔놓고 나서, 들어가기 싫어진 후로 뚝 끊어진 쓰기는 어느 날 블로그로 이어졌다. 이것은 내게 글을 보고 싶다고 했던 그 자매의 말 한마디였는데.. 나는 그녀에게 참 고마울 뿐이다. 이제는 내가 쓰고 싶어 졌으니깐. 쓰는 건 얼마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인지 수시로 느끼며, 그런 마음을 이렇게 받아 적고 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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