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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Sep 13. 2018

# 2년 차 캘리그라퍼로서 하고 싶은 말

오늘 아침은 문득 이 이야기를 적고 싶었다.

그 사이 쌓이기만 했던 마음속 두툼한 편지들을 한 장씩 들어 다시 가다듬고 싶은 마음이랄까.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이 년수라는 것이 전문가가 되어가는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것이므로, 그 안에 어떤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글씨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글귀들을 적고 있었는지, 그 사이 나는 어떤 생각으로 지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을 쓰고 싶었는데, 글씨를 만나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글이 좋았다. 

어릴 적부터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나, 앞장서서 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 싫었다. 

말을 한번 하려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은 볼이 빨갛다 못해서 토마토같이 변해버리는 나의 얼굴을 보며 집에 가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겠다. 

글은 누구에게 말하지 않아도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이 주는 속 시원함도 있었고, 찬찬히 생각하다 보니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차곡차곡 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래.. 그렇게 나는 글이 마치 또 다른 나처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글이 내게 특별히 "넌 재능이 있어"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좋았을 뿐, 초등학교 때 꾸준히 썼던 일기 쓰기 상을 받은 것이 없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듯 시간들이 흐르고 글이 내 곁에 가까이 다가왔던 건 스무 해 중반 이후였다. 

싸이월드가 생기고 나서 적을 수 있는 공간이 내게 생긴 이후로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나도 무언가 쓰고 싶어 졌다.

그렇게 쓰던 어느 날, 글 밑에 덧글들이 적히기 시작했는데 그 흔적들에서 뜻밖에 용기가 생겨났다.

정확하게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이었다.

그런 글들이 나도 모르게 더 쓰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또 적다 보니 내 삶이 뭔가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덧붙여 '생각의 가지치기'가 되는 것 같았다. 

적지 않고 지나갈 때는 그냥 무언가 휩쓸려 살아가는 것 같았는데, 적다 보니 중심이 잡혀서 걸어가는 것처럼 발걸음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지나고 지나다가 서른 해의 결혼을 하면서 삶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혼하자마자 임신을 하게 되었고, 무거워지는 몸을 실감하며 곧 엄마가 될 거라는 생각에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배우고 싶은 것들을 어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은 더 분주해졌다.

빵 만들기와 일본어 능력 시험. 

그 와중에 시험까지 본다고 준비는 했는데 둘 다 자격증은 따지도 못하고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엄마가 되어서

엄마가 되고 나서 머릿속은 "엄마+아이"로 단순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이, 잠자는 것이 소원이 되었던 엄마 생활은 그저 아이가 크는 것 하나만으로 시선이 고정되었다.

아이가 웃으면 나도 웃었고, 울고 있으면 나도 울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엄마라는 이름은 어깨에 걸쳐진 아기 띠만큼이나 무거웠다. 식당에서 먹는 밥은 음미하면서 먹는 것이 아니라, 그냥 먹는 것.

외출하고 싶어도 아기가 먹을 모유는 나의 몸에 있다는 것이 엄마와 아기 사이에 굵은 끈이 있는 것만 같았다.

달력은 예방접종을 놓치지 않고 맞춰야 하는 것들의 용도가 되어갔다. 

입는 옷도, 신발도 모든 게 아이를 위해 바꿔져 갔으며 책도 유아 백과사전이거나 유아식 책이거나 점점 모든 것들은 그렇게 익숙해졌다. 


#그렇게 크지 않지 않을 것 같은 아이들은

"언제 크나"했던 아이들은 시간처럼 정확하고 명확하게 성장했다.

백일, 돌, 그리고 두 살 세 살, 네 살.. 태어난 지 몇 개월을 세었던 아이들은 나이로 말하는 게 편해지는 때가 왔다. 어린이집에도 가고, 유치원도 가고, 초등학교도 들어가고..

아이들이 그렇게 커갔다. 어깨를 짓누르던 아기 때 속에 있던 아이는 어깨를 주물러주고, 밥을 준비하는 엄마 옆에서 도울 것좀 달라고 말하는 조력자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다가 배우게 된 것들

리본공예, 플루트, 그리고 직업이 된 캘리그라피

아이들을 키우며 배우게 된 것이 아이들 놀이 프로그램이 먼저였고, 그다음은 머리핀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시작한 리본공예였고 그러다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다. 

한때 나는 머리핀을 매일 만들어 주었더니, 어린이집 선생님께 한 번도 똑같은 핀을 하고 온 적이 없다며

신기해하셨다. 

그러다 중학교 때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때면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좋아서 들어갔다가 제임스 골웨이의 음반을 듣게 되었다. 플룻의 청아한 소리는 무언가를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 소리가 기억이 나서 플룻을 배우 보기로 했다. 그 생활은 엄청난 자존감의 회복이 되었던 것 같다. 

엄마로서 지내던 시간의 가치들은 알면서도, 점점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 같은 시간은 내가 공부한 것들과 꿈꿔오던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속삭이듯 정지된 시간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마음의 수면 위를 헤치고 나와야 했다. 아기띠를 하고 플룻을 배우러 강의실의 문을 여는 그 순간, 이미 난 시작 속에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악기를 배우면서 중학생 때의 내가 된 것 같았고, 그 악기를 통해서 나중에는 복지관에서 몇 명이 모여서 재능기부를 하러 갔을 때 그 앞에 앉아계셨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보며 배운 것을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기쁨이 컸다. 그렇게 지내오다가 지금의 캘리그라피를 만났다.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무언가를 찾을 때

그동안은 아이를 키우며 굳어버린 마음과 생활에서 뭔가의 활력을 위해서 취미로 배웠다면, 직업으로 무언가를 찾아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남편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나에게도 직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이들이 컸다는 반증이기도 하며, 마흔이 가까워오며 더 늦기 전에 나도 나로서의 가치들을 찾아가고 싶었다.

그렇다고 전업 엄마는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처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있어보니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만 내 안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갔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좋아하고 있나"

점점 무언가 나의 발을 한 발씩 움직여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을 때, 악기를 배우러 가던 문화센터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워보기로 했다. 글을 좋아하니깐 글씨를 쓰는 것이 더 끌렸다는 것이 그즈음 생각이었을 거다. 


#캘리그라퍼. 나를 작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자격증을 준비하면서도 내가 누군가를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수없이 배우는 사람들이 많은 캘리그라피를 나를 알려 줄 이력서 한 장을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닐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아파트 게시판에 "마을 활동가"모집 공고를 보다가 마을에서 수공 예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뜻밖에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게 되었다. 재능기부 수업으로 하다가, 정말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업을 하게 되었고, 축제 때는 지원을 나가게 되어서 글씨를 쓰는 일이 생활이 되어갔다. 

지금도 생각한다. 만약 그즈음에 그 아파트 공고를 보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자격증을 들고 정말 잘 사용하고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지금의 나, 글씨를 쓰는 사람, 어쩌면 결국은 글을 여전히 소소하게 적고 있는 나.

얼마 전 고등학교 수업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수업을 한 번 씩 할 적마다,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들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그때 한 친구는 두 번째 만나게 되었던 친구였다. 

5월에 만났을 때와 다르게 무겁게 보였던 친구의 표정에 마음이 많이 갔다. 무슨 일이 있는지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게 이야기를 해줄까 싶었는데, 마음이 열고 얘기를 해주는 게 참 고마웠다.

그것도 참 어려운 말들이었는데... 그 마음 아픈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 친구에게 캘리그라피라도 가르쳐 주며 마음에 중심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그 친구의 삶에서 몇 시간, 며칠 만나는 사람으로 지나갔을지라도 그 친구의 마음을 들어주었던 사람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그 친구에게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는 날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친구는 수업 시간 내내 잠을 잤던 여학생이었다.

보통 다른 선생님들은 그럴 경우에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셨는데, 완전히 배제한 체 수업을 하고 지나가기가 마음에 걸렸다. 그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가끔씩 가며 등을 토닥여서 일어나라고 하기도 하다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잠을 자라고 하기도 했다가 나도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참 어려운 친구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 친구가 일어나서 글씨를 쓰길래 고마워서 몇 마디 말들을 나누다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불면증이 있어서 계속 수면제를 먹다가 약을 끊고 있는데, 잠을 못 잔다고 했다. 

그 몇 마디 말에 그동안 수업하며 잠만 자는 그 친구가 한없이 야속했던 마음들이 누그러졌고, 오히려 그 친구가 가엽게 느껴졌다.

잠을 잘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에 대해서.. 더 알수록 마음이 아팠던 건 썼던 글귀에 대해서다.

그 수업시간에는 캔버스에 글귀를 적어보는 시간이었는데 "성공하는 것만이 복수해주는 것"이라는 문구였다. 

무엇이 그 친구에 마음에 복수를 꿈꾸게 했을까? 그 글귀를 보면서 뭐라고 말을 더 붙일 수가 없었다. 

"복수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니?"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 작은 소녀의 어깨는 애처로웠다.

더 많은 말을 나누기에도 자신의 몸을 철저히 가시로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아서 한 발씩 다가가기도 어려웠지만, 그 친구가 기억에 참 많이 난다. 만약에 내가 더 그 친구에게 다가갔다면 어땠을까?..  


#좋아하는 단어 편지, 마음에 닿는 편지 한 통 같은 그런 글씨 쓰기를 희망하는.. 편지 캘리그라퍼

생각해보면 글씨를 쓰지만, 글을 쓰고 있고, 글을 쓰고 있지만 글씨를 쓰고 있는 시간을 하루하루 보내는 것만 같다.

지나간 시간은 지난 시간대로, 앞으로 가는 시간에 연결이 되고 또 다른 방향이 되어주는가 보다.

그래서 지금은 글과 사람들을 적고 있는 캘리그라퍼로 지내고 있는 중이다.

2년 차. 오늘은 왜 이렇게 많은 말을 적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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