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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Sep 15. 2018

#엄마역할, 엄마노릇

뭔가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글씨를 쓸까, 그림을 그려볼까 하다가 노트북으로 옮겨앉았다.  

공모전도 끝나고, 수업도 종강하고 그야말로 넉넉한 시간일 법도 한데, 한 주 동안 앉아서 글씨 한 장 쓰지도 못하고 한 주를 보냈다. 생각해봤다. 하루의 일과 중 "다 했다"하고 엉덩이를 붙이고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밥하고, 정리하고, 매일 글씨만 쓸 수는 없으니 읽고 싶었던 책들을 꺼내놓고 읽다가 다시 집안일하고, 그러다가 너희들이 오고, 친구들이 오고,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펼쳐놓고는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고. 마음속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들었던 생각들은 엄마+다른 일 을 하는 것은 역시나 초인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지난주는 그 생각에 덧붙여서 엄마의 숲을 헤매는 것 같은 날이었다. 상담 날이었거든. 

엄마들은 의례 얘기한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은 "다 잘해요"라는 말만 듣다가 오는 날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잘못해요"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기분 좋은 말이지만, 그것 말고도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선생님의 시선 속에 너희들은 어떻게 보였는지 궁금한 것도 참 크단다. 

채원이의 상담 날, 선생님은 채원이에 대해서 칭찬으로 시작해서 칭찬으로 끝이 났다. 거기다 마음씨까지 곱다는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내내 "이 무슨 복이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원이 상담 날, 선생님 역시 예원이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체구가 작지만 강단이 있다거나, 반 친구들에게서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 아이들이 많이 적어낸다며 호감형인 친구라며 말씀하셨다. 기뻤다. 그러다가 말들이 이어지다가 "수학 문제를 풀 적에 이해가 느린 것 같아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에 덧붙여서 하는 이야기들은 그동안 엄마도 느꼈던 것들이었던 것들을 선생님도 이야기 하셨다. "느리다"라는 것이다. 

문제를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데 대충 읽는다던가, 빨리 무언가를 수행하지 못하고 천천히 반응하는 네 모습을 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상담을 받는 내내 칭찬을 했던 부분은 어느 새 저 멀리 떠나 보내고 불쑥 불쑥 이제 학원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다. 그날은 왠지 저녁 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두 명을 키우는데 한 아이는 빠르고, 한 아이는 느리고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비교의 대상이 되었나 엄마 스스로에게 속상하기도 했다. 

너희들을 키우면서 이런 느낌을 받는 건 처음은 아니었는데, 이제 1학년에 들어가니깐 그것이 학습으로 나타나는가 싶어서 어떻게 공부를 시켜야 할까 괜스레 아파트 공부방을 수소문해봤다. 찾은 곳들이 별로 마음에 가지 않아서 전화만 해놓고, 열심히 찾아만 놓고 다시 원점이었다. 


학교에 돌아와서 오후 반나절 예원이가 보내는 시간은 가뿐하다. 자신이 다니고 싶은 미술학원에 가는 것, 학습지 푸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난 그러라고 했다. 이제는 다 커서 알아서 하는 것들이 많아 일상적인 것들을 하고 있을 적에 엄마는 주로 글씨를 쓰고 있거나, 무언가를 하고 있던 모습들이 괜스레 미안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다가 예원이에게 소홀한 건 아닌지..

학습지를 풀고 있는 옆에 가서 푸는 것들을 보면서 어떻게 풀었는지 물어보거나, 읽었던 줄거리 내용들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니깐 재밌다며 술술 말을 해줬다. 이 방법은 선생님이 사실 추천해주셨던 방법이었다.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억지로 보내지 말고, 엄마가 옆에서 도와주라고 하는 것 말이다. 조금 꼼꼼해질 수 있도록 습관들을 잡아주는 것도 말이다.  


밑에 층 준희네 엄마랑 톡 메시지들을 주고받다가 이 말이 적혀있었다. "엄마 노릇하기 힘들어요" 준희는 이것저것 재능이 무척 많고, 하는 것마다 잘 따라가는데도 엄마 노릇이 힘들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들을 채워주려고 하거나, 여러 가지들을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해주느라 지난여름 방학 때부터 지쳐 보였다.  

아.. 엄마도 이 메시지를 보는데 격한 공감이 갔다. 그렇다고 엄마가 일거수일투족을 다 잘해주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랬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것들의 경계선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엄마면서 자신의 무언가를 하겠다는 자아실현은 동시에 갈 수없는 걸까 물음이 들었다. 푹 나의 세계에 빠져있었다면 너희들의 곁에서 있어야 할 시간도 당연한 거겠지. 그것이 사실 그 무엇보다 제일이기도 하고. 


목요일 하교 후 얼굴에 뾰루지처럼 올라온 것들이 신경 쓰여서 다음 날, 오후 병원에 다녀왔다. 소아과 한쪽에서 기다리며 병원을 둘러보다가 하나같이 엄마들의 모습들이 눈앞에 크게 보였다. 엄마들의 표정 속에서 엄마의 역할들을 해내기 위해 온 동지들처럼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예원이의 얼굴을 보시더니 열꽃 바이러스가 지나가는 거라면서 3일 정도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괜찮다"라는 말 한마디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 채원이, 예원이가 좋아하는 스시를 먹고 모처럼 시간이 난김에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와플을 먹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자니 모처럼 데이트 같았다. 얘기를 나누다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뭐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뭘까"서로 얘기를 나눴다.

채원이는 가장 쉬운 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어려운 것은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원이는 쉬운 것이 "1+1은 2"라고 말했고, 어려운 것은 수학 문제 푸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마에게도 물어봐 달라고 했다.

"엄마는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엄마가 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은 말이야... 그것도 엄마가 되는 것이야"라고 말했다. 그 순간 채원이 예원이눈빛에서 엄마의 동일한 대답에 뭐냐고 하는 듯하면서 알 것 같은 눈빛으로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10살 채원이


 정성스러운 편지쓰기를 좋아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을 아낌없이 덤으로 주는 8살 예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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