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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Jun 09. 2018

#남편은 은퇴 후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처음 글을 쓰니 다음 글을 써야 할 이유들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조금 더 내 마음을 열어 보여주어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글을 쓴다고 해서 지금 나의 생활이 생각에 빠진 사람, 혹은 고뇌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 참 평온하다. 남편은 자고 있고, 나는 일찍 일어난 덕분에 미뤄놓았던 글을 쓸 수 있었다. 집안은 조용하며, 늘 무언가를 쓸 적마다 듣는 음악은 마음을 안온하게 해준다. 

그런데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있다. 모르겠다. 지금 나는 이런 말을 손으로 끌어서라도 노트북 위에 적어놓아야 하는지.  


한동안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오면 마치 수험생처럼 '정석'을 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집중해서 하고 있다 보니 옆에서 tv 켜놓기도 미안해서, 나도 덩달아 옆에서 주로 글씨를 쓰고 있었다. 

음악을 틀어놓은 채 남편은 수학을 풀고, 아내는 글씨를 쓰고 있는 밤 풍경. 

우리들의 시간은 한동안 이어졌다. 

이것을 하게 된 건 어느 날 남편의 말 때문이었다. 

"나.. 나중에 수학 과외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어머니가 일찍 중학교 다닐 적에 돌아가시고, 아버지만 있는 상황에서 남편은 성실하게 공부한 덕분에 학교에서 등록금을 면제받고, 생활비는 수학 과외로 벌어서 생활했다고 했다. 그래서 수학만큼은 잘할 수 있다며 이렇게 52살이 된 그가 정석 책을 펼쳤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어떤 수학을 과정을 하고 있는지 찾아보더니 예전에 한 권으로 된 것들이 여러 갈래로 나눠졌다며, 어떤 책을 공부해야 하는지 나름의 조사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남편은 나중에 수학 과외 선생님이 되는 걸까? 생각했다. 

"여보 나이 많은 선생님을 아이들이 좋아할까?" 

이 물음에 남편은 오히려 나이 들수록 신뢰감을 줄 수 있다며 괜찮은 일이라고 했다. 

글쎄.. 모르겠다. 이것이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지.

그렇지만 다른 무엇보다 우리들이 지금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막연하지 않아서 좋았다.

한편으로는 저녁 풍경 속에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최근이 낯설고 또 마음 한편이 시간의 강을 많이 건너왔구나 싶었다. 


매일매일 하는 날도 있었고, 회사에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날에는 남편의 산소 같은 취미 '테니스' 채널을 켜놓고 무념무상으로, 일명 "멍"한 채 tv를 보던 날도 많았다.  

회사 다니면서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지쳐있는 사람에게 무언가 준비하기를 바라는 것은 때때로 욕심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작심 며칠이 지난 것에 이러다 멈춰버릴 수도 있구나 싶으면서도 "여보 요즘 수학 책을 안 보내?" 흘러가는 말을 하면 서로가 다 아는 지금을 굳이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남편의 수학 능력(?)을 써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열 살 딸의 수학 시험을 다 틀려 오던 두 번째 날이었다. 

어느 날 현관문에 들어선 아이는 시무룩해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했는데, 말하기를 '수학 시험을 못 봐서'라는 말이었다.

"엄마 혼내지 마세요"

"흑... 당황.. 스러웠다."

그것은 첫 수학 시험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번째였다. 

그때는 왜 그렇게 엄마들이 학원을 보내고 싶어 지는지 알 것 같았다. 수학학원 다니는 엄마들의 말을 들어보다가, 학습지에서 연산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께 여쭤보니 수학의 방법들은 그야말로 갈수록 점임 가경, 머리가 멍해지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당신이 수학을 가르쳐줘요. 나중에 가르쳐 줄 것 하지 말고, 지금 딸 수학 공부를요" 

이런 일들이 있게 된 후, 새로운 풍경들이 이어졌다. 

아빠는 늦은 퇴근이었지만, 기본적인 것들을 조금씩 알려주었고, 주말이 되었을 때 수학을 가르쳐 주었다. 

중간중간에는 문제집을 사서 숙제를 내주어서 확인해가는 방법으로 하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곧, 고스란히, 우리 모두를 웃게 하던 일이 있었다.

"여보, 수학 시험을 다 맞아서 왔어요"

아이의 시험지에는 눈에도 선명한 "매우 잘함"에 동그라미가 닿아있었다. 

얼마간 아이는 자신은 "수학을 못하는 아이"라며 울상이더니, 이제는 자신감이 제법 생겼고, 무엇보다 수학 재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며 안도하고 행복해했다.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무엇보다 남편에 노력이 빛을 발한 것 같았다. 

'나중'말고 '지금'해볼 수밖에 없었던 딸아이의 수학 시험지는 이렇게 아빠에게 먼 훗날이 아니라, 당장 수학 선생님이 되게 만들어줬다.

"그래 이렇게 해보는 거지 뭐.."


은퇴 후에 대해서 할 말들이 이렇게 적었는데도 적을 것들이 여전히 목 끝에 남아있다. 그것은 이다음 글에 적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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