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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Jun 25. 2018

# 은퇴가 아니라, 퇴사를 한 그녀의 말

바쁘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읽고 싶었던 책들을 쌓아놓고 보는 것, 아무 약속도 잡지 않고 그냥 있는 것, 쓰고 싶었던 것을 기록하는 것. 

그렇게 할 수 있는 오늘 아침은 모처럼 모든 것들이 느리게 흘러갔다. 


쓰겠다고 펼친 오래된 노트북은 쓰기도 전에 열이 한껏 올라서 자판이 뜨겁다. 쓸 시간이 오랜만에 많아졌는데 마땅히 쓰고 싶은 것도 생각나지 않아서 책이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에 잡히는 대로 가져온 책이 뭐냐면 요리책 두 권과 그림책 한 권, 그리고  에세이였는데 이 책으로 가장 먼저 손이 갔다. 

나의 생일에 다녀왔던 당인리 책방 발전소에서 사온 "진작 할 걸 그랬어"라는 책... 사 올 때는 좋다고 품 안에 안고 왔는데

바빠지니깐 먼지가 쌓였던 책을 미안하게 펼쳤다. 

창가 쪽으로 의자를 놓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읽는 책이란 달고도 달았다. 

에세이라서 쭉 이어 보지 않아도 되기에, 제목을 보다가 마음에 끌리는 제목을 먼저 펼쳤다. 느릿한 글들이 차분하게 마음속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문장들이 이어갈 때 즈음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 사람도 이렇게 살아가는 구나.." 


이 책은 뭐랄까. 

'퇴사'를 하고 일본 책방으로 여행을 떠났던 MBC 김소영 아나운서의 책이다.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배제된 그녀가 5년 동안 일했던 곳을 그만두기로 한 것은 그녀에게 준비되지 않았던 퇴사였다. 

무언가를 다 준비해놓고 나온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아침 출근해도 아무일도 주어지지 않는 그것으로 가는 것이 길게 이어지다가, 더이상 아침 출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도 마음도 힘들어지던 그 때 그녀는 결심했다. 퇴사하기로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어디든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비행기표를 끊은 것이 일본 도쿄라고 했다. 오로지 서점을 찾아다니는 것을 생각하며..

그녀의 책안에 분류를 열어보면  "책방에 간다는 것"과 "책방을 한다는 것" 이렇게 나눠있는 것을 보며 그녀의 책방여행을 하며 둘러보던 시선들이 보인다.  책방을 진짜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넘겨가며 읽다가 프롤로그 문장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퇴사를 했다" 

처음으로 시작된 문장을 몇 번 반복해서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이 책에 '퇴사'가 나와서 선택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사게 된 책의 첫 문장이 '퇴사'라니 이 단어는 내게 뭘까? "

그런 생각들이 넘실 지나갔다. 

이렇게 나는 남편의 은퇴준비생으로서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데, 스스로 선택한 '퇴사'가 무언가 다른 듯 하지만 닮은 듯했다.    

일본으로 떠났던 여행은 단순히 일상 도피가 아니라, 그녀가 하고 싶었던 것을 것을 하는 자유스러움도 있고, 마침내 책방을 한 그녀가 책방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까지 읽어내려가며 퇴사부터 새로운 일을 발견한 것까지의 이야기들로 이뤄진다.  

훑어보다가 마무리에 쓰인 그녀의 말은 책방 지기로서의 소신도 엿보인다. 

즐거운 일을 즐겁게 하면 된다는 것, 50년 차 책방 지기가 될 수 있을지 미리 걱정하진 않을 것이라는 그녀의 다짐에서 나는 그 자체로 즐기자고 하는 그녀의 말에 밑줄을 긋고 싶었다. 

퇴사 후 막막했을 자신의 상황 속에서, 책이 좋아서 찾아갔던 그곳에 결국은 자기의 일로 삼았던 그녀의 선택은 충분히 퇴사자들에게도, 혹은 이렇게 은퇴준비생을 기록하는 이에게도 희망적인 메세지들을 준다고 느꼈다.

그녀가 회사를 나오던 날, 올려다 보던 회사의 거대함과 눈앞에 놓인 끊어진 길 위에서 한동안 서있었다는 표현을 번갈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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