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복 Aug 02. 2018

#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마흔의 8월

빼곡히 적힌 달력 일정들 사이로 오늘 아침은 마흔 노트를 열어보고 싶은 날이다. 

남편은 단기선교로 일본으로 떠났으며, 나는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캘리그라피 전시회에 내놓을 글씨들을 쓰고 수업 준비도 하고 아이들의 여름방학 위시리스트를 하며 숨쉬기 힘들 정도로 덥지만, 감사한 시간 들을 살아가고 있다.  


적어놓은 마흔 노트의 제목들을 훑어봤다. 

뭔가 걱정 속에 적어놓은 것들이 막 느껴지는데, 지금은 남편도 나도 발등에 떨어진 것들을 하다 보니 마흔과 은퇴에 대한 묵상(?)들로부터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깐 '지금'을 단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마흔의 질풍노도는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지금이 8월인데 조금 있으면 12월, 그러니깐 곧 마흔한 살이 되는 것도 곧 찾아오겠구나 생각하니 차라리 지금의 마흔이 젊은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1월의 마흔과 8월의 마흔은 다르지 않았다. 

누가 내게 와서 '마흔'이라는 것을 일부러 확인시켜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단지 나 혼자서만 그렇게 생각했고,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대신 이 시간들 동안 나는 아이들만 키우던 엄마에서 글씨를 쓰는 엄마, 그러니깐 글씨 쓰는 사람으로 내가 존재하고 있다. 

스무 살에 나는 세무학과 대학생

서른 살에 나는 결혼을 했고

마흔 살에 나는 캘리그라퍼.  

10년씩 건너뛸 때마다 다른 일을 하고 있고, 그 시작과 동시에 그 뒤로 쭉 그 생활을 했다. 

그렇다면 마흔부터 나는 언제까지 글씨를 쓰고 살아가고 있을까 

쉰 살이 된다면 "______"무엇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얼마 전 일러스트 전시회에서 한 캘리그라퍼를 만나서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분은 원래는 중환자실 간호사였는데, 생사에 갈림길에 있는 중환자실의 환자들을 보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버킷리스트에 하고 싶은 것을 적어놓고 하나하나 해보다가 우연찮게 캘리그라피를 하게 되었고, 그 길로 쭉 지금은 캘리그라퍼로 살아가는 지금이 무척 만족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쭉 이 일을 하실 거예요?"

나는 뜬금없지만, 이 질문을 건네고 싶었고 그분의 대답은 곧장 이어졌다.

"네.. 저는 이 일을 평생 하고 살아가고 싶어요." 


돌아오는 길, 나는 그분의 이야기들을 곱씹었다.

그분이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그 이야기들은 충분히 내게도 곱씹어야 할 질문들이었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나요?" 

그런 질문을 나에게 누군가가 질문을 한다면, 나의 대답은 "음... 저는 어느 정도 비슷해요. 그리고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대답한 이유에는 캘리그라피를 하게 된 건 2년 전 뜻밖에 시작이었다. 

문득문득 글을 쓰고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캘리그라피는 우연한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걷다 걷다 보니 이 모습 속에 언젠가 내가 생각했던 것 같은 무언가가 느껴질 때가 있다.

글귀를 쓰고,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또 나는 그런 것들을 기록하고 쓰고 살고 있는 사람. 

그러니깐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서 결국에는 무언가를 쓰고 있는 사람이 되고 있다는 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깐 말이다.  


마흔의 8월. 

이 즈음 누군가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그 질문을 적어놓아본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나요?"    

 

마흔의 8월, 캘리그라퍼로서의 신념


매거진의 이전글 # 은퇴가 아니라, 퇴사를 한 그녀의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