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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Nov 26. 2018

#마흔, 문턱에서 끄트머리

노력하고 있어요

한동안 쓸 것이라는 생각조차 못한 체 발등에 떨어진 것들을 하느라 하루와 일주일 한 달이 그렇게 흘러갔다. 수업이 있었고, 다시 공모전 준비가 있었고, 동아리 모임도 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어야 하고, 챙겨야 할 것들이 생기고, 갈 곳들이 생기고...

한 달의 달력을 시작도 하기 전에 한 달이 차여 있는 것을 보면 날마다 출근하던 결혼 전 직장인으로 있을 적보다 더 세분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과 은퇴준비생은 그 사이에 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첫눈이 내린 11월의 하순을 맞이했다. 그러니깐 겨울, 그러니깐 마흔의 문턱이 아니라 끄트머리인 날들이다. 무엇으로 인해 이런 삶이 흘러가고 있을까? 


쓰는 지금 찬찬히 생각해보면 처음은 일을 하기로 선택한 것으로부터는 아닐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서른 여덟, 서른아홉, 마흔을 준비하느라 글씨를 쓰는 자격증을 열심히 준비하고 그렇게 준비한 것으로부터 2년 정도 경력을 만들어간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때그때 들어오는 일들을 하다 보니 2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이 대단한 것이라며 한 가지를 했으면 했지, 두 가지를 다 하면서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할수록 느끼면서 해왔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도 나도 크기도 했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는 말이 생각날 만큼 그때그때마다 그 삶에 적응하면서 넘어간 날들이 지금이고 오늘이 되었다.

 

마흔의 11월. 

이쯤 되면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1월에 이것을 쓰기로 했을 적부터 무척 궁금했다. 

삶이 엄청나게 달라져있을까? 아니면 더 나이 먹어가고 있다고 한숨을 쉬고 있을까? 

지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삶이 엄청나게 달라져 있지도 않지만, 달력 한 장이 지나면 마흔한 살이 된다는 생각은 오히려 지금이 젊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강력한 단어 하나를 적어보라고 한다면 "노력"이라는 것이 떠오른다. 노력하면서 마흔을 보내다 보니 11월이 되었다. 

수업을 잘 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이나 중고등학생들을 만나더라도 알아가려고 노력했다. 아이들 이름을 외우느라 노력했고, 아이들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 노력했고, 잠이 들락말락 한 아이들은 왜 잠이 와야 하는지 노력했다. 마음이 힘들어 보이는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힘이 들까 알고 싶어서 노력하고, 주어진 역할들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하고..

집이 깔끔하기 위해 노력하고, 월요일마다 친구들을 데려오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예스'라고 말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저녁이면 "오늘 메뉴는 뭐예요?" 무척 기대하는 아이들의 밥 메뉴를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는 건 힘든 게 없는지, 요즘 재미있는 건 뭔지, 필요한 건 뭔지, 더 필요한 건 뭐가 없는지 알아야 하는 노력을 하고..

노력이라는 단어가 그냥 떠오른다. 어떤 날들은 이런 노력조차 행복했고, 어떤 날은 이런 노력으로 인해 힘이 바닥이 나서 푸념이 되기도 했다. 

'세상에 쉬운 게 하나 없네"라고 말하면 남편은 그랬다. "그래.. 세상에 쉬운 게 없지. 삶은 기본적으로 버거운 거야. 그렇지만 가끔 행복과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야"라고 말했다. 

쉽다고 생각한 것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삶이 온통 고통투성이인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데, 왜 그 말이 그렇게 힘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도 그랬고, 특히나 고등학교 때 나의 별명이 '노력파'였다는 것이 이것을 쓰면서 떠올랐다. 그러니깐 처음부터 타고나서 무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공부를 하는 것도, 무언가를 늘 할 적마다..

이렇게 적으니깐 삶이 온통 노력이라면 좀 버거울 만도 하지만, 모든 것이 힘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지내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알아가려고 노력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그것이 때론 삶의 의욕이 되기도 했고, 그것으로 인해서 알게 된 많은 것들이 마음 벅찼던 순간들을 안겨준 것들이 얼마나 많은 지.. 

마흔 앓이를  정작 마흔에 하지 않았고 다가오는 서른아홉에 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럼 남편의 은퇴에 대한 것은?이라고 묻는다면, 남편은 한결같이 은퇴를 하면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공부방'을 한다는 것에 변함이 없다. 그것에 전투적으로 준비할 만큼은 아니다. 아직은.. 회사는 경기 불황을 잘 넘어갔고, 회사에 다녀오고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상태라는 것을 공감하는 마음은 오히려 내가 더 커지기도 했다. 그 하루만으로도 너무나 수고했으니깐.. 


무언가 하나를 시작하면 신경을 무척 쓰는 나에게 남편이 한 마디 덧붙였다.

"미리 걱정하지 마. 막상 하면 다 잘하잖아..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이 말을 결혼하고 나서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깐 나는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 미리 걱정하고, 준비하면서 나를 들들 볶지만, 정작 하면서는 너무 즐겁다고 말하고 들어오는 나.

그러면 나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떠오른다."여보 노력하고 있는 거예요.. 노력했으니깐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앞으로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지는 않다. 지금처럼 내 앞에 주어진 것들을 노력하고 있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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