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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Dec 31. 2018

#마흔 아내와 52세 은퇴 준비생 남편 1년 기록 후

2018년을 이틀 남겨놓고 10년도 아니고 30년이 지난 남편의 대학 교정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학교 정문을 지나 캠퍼스를 둘러보던 남편은 감회에 젖은 듯 학교를 둘러봤다. 운동장을 지나 기숙사와 도서관 식당 학생회관 그 공간을 따라 걸었다. 잔디밭 앞을 지날 적에는 故 김광석 가수가 와서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남편의 발걸음을 따라 그가 머물렀던 오래된 시간 속을 아이들과 같이 걸으며 30년 후 그곳을 이렇게 같이 걸을 수 있는 모습들을 그려봤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3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떨 것 같아요?"


문득 남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후회 없이"


남편의 대답을 들으며 생각했다. 오래전 시간 속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내가 아는 남편은 성실하게 공부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에 학비 부담을 덜어드리려고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래전으로 돌아가도 그때만큼은 못할 거야. 당신이 잘 살았으니깐.."

후회하는 것 같은 남편의 대답에 어쩐지 회신을 해주고 싶었다. 


어제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올해에 기록하기로 했던 날들을 갈무리해야 한다는 책임 같은 것이 느껴졌다.

2018년에 1월, 몹시 혼란스러웠던 마흔을 말하며 어떤 기록들을 할 수 있을까 많이 궁금했다. 그리고 은퇴에 대한 것들도 말이다. 

마흔에서 은퇴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 조금은 평범하지 않겠지만, 띠동갑 남편과 살아가는 나에게는 나의 나이가 곧 남편의 나이 같은 연대적 시간들을 나누어 가졌다고 생각했다. 


살아갈 날들은 궁금하고 어떨 땐 두렵고 어떨 땐 걱정도 되지만, 살아온 날들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생각에 빠져 살아간 시간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서 살아간 날들이 훨씬 가득했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글씨를 쓰기 시작하며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은 부동산도 공부했다가 포기하고는 수학으로 마음을 굳혔다. 아직까지 수학 학원을 보내지 않는 열 살 난 딸의 선생님을 자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회사 생활만으로도 하루가 꽉 찬 시간을 보냈다. 

그래.. 이 기록들이 마치 은행에 적금을 넣는 것 같은 마음으로 적는 건 아니었다. 고민하는 것들부터 어떤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는지 기록해두면 어떻게 살아갈지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브런치에 이것에 대한 글을 올릴 적마다 꽤 조회 수가 많이 되는 것에 조금은 놀라기도 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궁금했나 보다. 만족할 만큼의 어떤 속 시원한 해답을 주는 글은 안되었을지 모른다. 나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고, 그저 살아간 나의 시간들을 적을 뿐이다. 


여행학교에서 만나 뵈었던 선생님들을 통해 은퇴 후는 어떤지 여쭙게 되면 생각과 현실은 전혀 다르다고 하셨다. 그래도 때때로 주위에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마치 인터뷰를 하는 사람처럼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것도 습관처럼 되었다. 


이 즈음에서 마흔과 은퇴 준비생의 1년을 몇 줄이라도 정리해본다.

마흔은 어린 나이도 아니지만 늦은 나이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이를 먼저 생각하면 어쩐지 뭐든 머뭇거려지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 마흔이란 단어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은퇴 준비생에 대한 것은 은퇴 후는 여전히 막연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됐다. 

예를 들면 월급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을 때 가계부에 얼마만큼의 고정지출이 있는지, 어떤 필요 없는 지출은 없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 지도 중요하기도 하지만,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하는 지도 계속 물어가는 단계이긴 한 것 같다. 

요즘 가끔씩 남편이 유튜브에서 은퇴에 대한 여러 가지 것들을 찾아 듣는 것을 보면서 내심 놀라기도 한다. 어쩔 땐 그 모습이 영 적응이 안 되어 차라리 아무렇지 않게,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이 나았나 그런 생각도 들곤 했다. 

그래.. 어쩌면 이렇게 관심들이 변해가는 것이 나이에 따라 아이들을 키워가는 부모라는 이름 속에 더 진지해졌을지 모르겠다. 


2019년에는 어떤 기록을 해야 할까

그걸 굳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기록해야 할까도 생각하게 되지만, 기록에 대한 값어치는 사실 마음이 먼저 알아보는 것 같다. 지금 시간들을 살아가는 나를 아무렇게 가도록 놓아두지 않기 때문에. 


오늘은 딱 여기까지만 적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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