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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Jan 10. 2019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나이듦과 은퇴에 대하여

2019년 기록기 시작

1월이 지나고도 여러 날이 지났다.

예전 같았으면 쉽고 빠르게 결정해서 적어놓았던 것들을 쉽게 적지 못했다. 마치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와야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한 발 기차를 향해 다가가야 하는데, 내 마음에는 그런 기차가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막연하게 기다리고 또 기다린 것 같은 느낌들이 우두커니 홀로 남겨있는 것 같았다. 


작년 2018년의 "마흔과 은퇴준비생"이란 제목을 정해놓고 많이 망설였다. 

마흔은 그 해에 해당하는 것은 적어도 되지만, 은퇴준비생은 길게 가야 할 제목이어서였다. 그렇지만 적어보고 싶었다. 그해에는 그 생각이 가장 컸고, 마음속에 꽉 찼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한 발 물러서서 이것을 적고 있는 것의 의미는 무얼까 생각했다.

"나는 먹고사는 것에 너무 전전긍긍하는 것은 아닐까"그런 부끄러움도 조금은 있었다. 

덧붙여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없다. 정말 그런 고민이 무척 컸으니깐 말이다. 그런데 2018년에 기록을 하면서 기록의 흐름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먹고사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것인 걱정처럼 시작했던 것들이 나이를 들어가면서 마주한 것들을 같이 느껴갔다. 


29살일 때 41살의 남편을 만났던 그때는 봄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에게서 지금의 남편을 소개해주고 싶다고 하셨을 때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시작하는 것에 대한 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였다. 어쩌면 나는 결혼은 하지 말아야 할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났다. 

마음에 방어벽으로 꼭꼭 닫아두고 있었던 내가 점점 마음을 열어갔던 것은 조금씩 잊을만하면 나타난 그 사람의 흔적들이었다. 그러다가 한 해가 지나고 만나나 보자고 생각했을 때, 지금 생각해도 좀 말이 안 되지만 나는 그의 나이를 모르고 이름과 하는 일 두 가지만 알고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 이면에는 나를 소개해준다고 하셨던 분이 나이차이를 생각해서 소개해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컸었다.

그런 채로 그를 만났다. 

퇴근 무렵, 직장 앞에서 나를 보는 그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참 착하게 웃고 있었다. 수원이 직장이었던 그가 나를 만나려고 반차까지 써서 퇴근 시간에 맞춰온다고 일찍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갔던 곳이 학생 식당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교에서 일하던 때였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학생 식당이었다. 그것이 뭐 이상하지 않지만, 나 역시도 자연스러웠다. 

고등어 정식, 갈치 정식을 시켜놓고 어색했던 밥을 먹던 그와 나누었던 대화들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기억나는 굵직한 기억이라면 나를 바래다준다고 가던 차 안에서였다. 

서울서 평택으로 바래다준다고 가면서 무언가를 쭉 이야기하다가 문득 그의 나이를 물어보았다. 

"그런데요.. 몇 살이에요?"

그 짧은 질문에 그는 몹시 당황했고, 나이 대신 학번을 이야기해주는 것을 듣다가 계산해보니 열두 살 차이라는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네?!#$$@.... 열두 살!!"이라는 느낌표를 입 밖으로 내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고는 평택 톨게이트로 나가야 하는 남편이 놀란 나를 살피다가 나가지 못하고 천안까지 내려가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시작은 그랬다. 

소개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대상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오래 장벽을 쳐둔 마음으로, 띠동갑이라는 그를...

남편으로 아내로 우리는 10년째 잘 살아가고 있다. 

늦은 결혼이긴 했지만 아이들은 바로 생겨서 10살, 8살이 되었다. 

남편의 나이대에서 벌써 군대를 보내고, 대학 졸업을 논해야 할 때 유치원 재롱잔치와 초등학교 입학식을 찾아가는 때를 우리들은 나이를 잊은 채 아빠와 엄마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들을 바라보니 내가 남편을 만났을 나이 41살이 되고, 53살이 되어 있는 우리들을 보게 됐다. 

회사에서는 고참급이고, 어학이나 무언가 차별성이 있는 사람들은 57세인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 정년의 나이가 55세에서 60세로 연장되었다고 했을 때 좋아하던 것과는 다르게 현실 속 모습들은 버티는 것 같은 50대 중반 이후 모습처럼 느껴졌다. 

60세 꽉 채워 다닌다고 해도 고등학교에서 아빠의 직장이 마감된다는 것은 나의 남편으로서 바라볼 때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빠가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이 없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내가 마흔을 맞이했던 작년 마흔 방황기를 적으며 내가 마흔이지만, 남편과의 변화들이 나와 접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서 마치 같이 52살을 살아가듯이 작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주제들은 무장한 군인처럼 비장했지만, 삶은 아직까지는 말랑말랑했다. 간간이 고민은 했지만..

그러는 사이 나도 전업주부에서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은 글씨를 써주는 캘리그라퍼의 삶을 살아가며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평생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어 살아갈 줄 알았는데, 글씨를 쓰며 수업을 준비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 모든 것들이 시작은 남편의 나이 들어감에 따라 눈앞에 다가왔던 "은퇴, 정년퇴직"에 대한 단어들이 우리 삶에 놓이고 나서였다. 

생각하게 된다. 

고민의 시작이었던 단어들이 아내인 나에게 내가 살아가는 행복 같은 기쁨들을 느끼게 해주는 글씨를 쓸 수 있는 과정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뜻밖의 발견이었고, 오로지 남편의 몫처럼 느껴졌던 것들을 이제는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그 무게들을 덜어내는 과정들이 값진 발견이었다고. 


그러면서 고민했던 것은 여전하다. 

나는 얼마만큼 이것을 공개적으로 나의 삶들을 기록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려나, 이런 단계의 질문보다 더 먼저 생각이 든다. 멀리서 보는 산을 자세히 나무의 결 하나하나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이렇게 2019년의 기록을 해보기로 했다. 

"적어봐. 괜찮아"

어쩐지 허락받은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다시 글을 이어간다. 은퇴와 정년퇴직, 먹고 살아가는 것의 기준들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안다. 

부자가 그만두어도 평생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인 것은 충분할 것이고, 일당을 벌어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훗날이 아니라 당장 하루 살기도 버거운 날들이라는 간격들을 어떻게 보편해서 적을 수 있을까 


다만 29살, 41살의 우리가 만나서 나이 들어가는 이 과정들에서 만나는 것들을 기록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다. 

오늘이 내일 같지만, 몇 년 전과 몇 년 후의 날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삶들을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넘치게 적고 싶은 날들을 적어보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은 몇 살에 그 날을 직감할까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커갈까

나이들어가면서 보이는 것들을 잘 발견해서 적을 수 있을까


오로지 그 마음으로, 지금을 기록하기로 했다.

마흔한살의 아내가 쓰는 쉰세살 남편, 2019년의 기록을 그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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