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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Apr 22. 2019

#퇴직하는 그날까지 현역처럼

여보 요즘 어때요

은퇴 준비생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롭다. 

그것의 의미는 지금 당장 어떤 커다란 변화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남편도 나도 그것을 생각하지 못할 만큼 서로가 서있는 자리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어서 같다.

그러던 중 일요일에 남편과 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나눈 말들이 생각나서 적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보 요즘 회사는 어때요?"

이 질문은 결혼하고서 종종 했던 질문이었지만, 남편의 나이 쉰이 넘어가고 나서는 좀 다른 의미로 물어보는 질문이긴 했다.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 혹시 요즘 혼자 고민하는 것은 없는지 그런 것을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회사 일 생각에 머리가 지끈 거리는 듯하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어땔 때는 인사이동으로 회사가 어수선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회사에 흑자가 나서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래도 안 좋다는 이야기보다 회사가 잘 되는 것이 좋고, 회의할 것이 많아서 일은 많다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어쩐지 내 귀에는 좋게 들렸다.

그러고 나서 남편은 내게 말해줬다. 한창 일할 때라고.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년 연장이 되기 전에는 회사에서 쉰이 넘어가면 살짝 뒤로 빠지려고 하던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분위기라고 했다.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런 분위기라니 말이다.

그러면서 남편이 내게 해주었던 다음 말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퇴직하는 날까지 현역처럼 일해야지...."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다시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있잖아요. 그 말은 선임급이라서 그러는 거예요? 아니면 인사고과가 있어서예요?"

"아니.. 밥값을 해야지" 

남편이 해준 그 말은 무척 단순했는데 왜 그렇게 다르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순간 내가 한 질문이 무척 부끄러워졌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니깐 밥값을 해야지라는 그 말이 밑도 끝도 없이 감동으로 들렸을까 모르겠다.  


남편은 내게 말하곤 했다. 걱정 없다고. 몸만 건강하면 뭐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가끔씩 남편이 퇴근 후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가 보면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그것은 나도 다 아는 것이기도 하니깐 그려려니 했다. 남편 나름대로 결혼하고부터 쭉 정리해온 재정과 가족들의 나이를 적어놓고는 한동안 무언가를 적어놓았다.


#결혼했을 때부터 남편이 적어놓던 기록장 스타일


남편 42살, 아내 30살, 딸(태어난 해)

.

.

(10년 후)

남편 52살, 아내 40살, 딸 10살, 딸 8살 (이때 기억나는 무언가를 메모해놓음)

.

(정년이 가까워 올 즈음)

남편 60살, 아내 48살, 딸 19살, 딸 17살


언젠가 나를 옆에 불러놓고는 이때는 어떻고, 저때는 나이가 어떻게 될 거니깐 아이들은 몇 살이 될 거라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말을 나누곤 했다. 그랬는데 벌써 11년이 흘렀다. 아이들이 대나무처럼 쭉쭉 뻗어가는 동안 우리들도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그렇게 멀리 있을 것만 같던 나이였는데 이제는 그 나이가 되어 살아가고 있으니 숫자들이 우리들을 향해 달리기를 해온 것만 같다.

남편의 대답을 듣고 나서 지금 그에게 회사는 어떤 의미로 말하는 건지 느껴져서 나의 질문을 쏙 집어넣기로 했다. 

"그래.. 그런 의미였구나. 남편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남편이 그렇게 회사일을 하는 동안 아내로서 나에게도 조금씩의 변화들은 있었다. 마치 퍼즐 조각이 자신의 모양과 자리를 찾아 떠나는 것처럼 그렇게 요리조리 발견하고 맞추어가는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거나, 많은 돈은 벌지는 못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글씨를 쓰는 모든 것들이 좋을 뿐이다.

자신의 소명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고자 하는 그것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데 훨씬 수월할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못하더라도 쓰는 것을 꾸준히 하고 있는 동안에 글씨를 사람들 앞에서 쓰는 두려움들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난 시간들에 대한 선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전업주부에서 글씨를 쓰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기 위해 하나, 둘 노력하는 동안에 남편도 나도 그렇게 지금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잊고 싶지 않았던 남편의 말과 함께 지금을 적어놓는다. 하루아침에 무언가가 엄청나게 달라져 있는 삶이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새로움 들을 경험하며, 서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오늘도 묵묵히 하는 그런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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