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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Dec 30. 2019

#정년과 은퇴 준비생 사이, 부부의 시간 사용 일기

6월 이후 적는 글이다. 그동안 이후의 시간들을 기록으로 이어가지 못함에 대함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한 가지는 내가 하고 있는 캘리그라퍼로서의 시간들이 무척 분주해졌고, 다른 한 가지는 적을까 말까 여전히 고민하게 되는 우리들의 시간들에 대해서 이기도 했다. 은퇴와 정년에 대한 제목들이 어디선가 눈에 들어오면 한 번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되지만, 정작 그 과정을 적는 나는 아직까지는 마음이 편치 않은 무언가가 있기도 한가보다. 비밀글로 적을까 싶다가도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흘러가는 말로 했을 때, 그럼에도 공개적으로 적는 글을 써보라고 하셨던 어느 작가님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아 덮질 못했다. 


결론부터 말해놓고 시작하자면 회사는 잘 다니고 있고 별일 없다. 

그런 중에도 남편의 시간 사용법은 너무도 달라져 있음을 고백한다. 앞으로도 계속 그것이 이어갈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남편은 그 사이에 시험을 봤다. 어떤 시험인지까지는 아직까지는 말을 줄이고 싶고... 한번 봐볼까가 아니라 시험을 준비하느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과 잠시 교감을 나눈 뒤에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학원을 다니지도 않고, 인터넷 강의를 찾아서 준비를 했다.

그것도 그대로 영상을 들으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2배속, 3배속 의 말의 빠르기로 듣고 있는데 그 속사포 같은 낱말들이 나까지 생각만 해도 귓가에 달라붙어 있을 만큼 익숙한 시간들이었다. 

거실에 두 책상에 나는 열심히 붓글씨를 쓰고 있고, 한쪽에서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 부부의 모습은 이제 우리에게 참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퇴근 후에 그렇게 좋아하는 테니스 시청하느라 푹 빠져있던 작년과 다르게 남편의 시간은 달라져 있었다. 어떨 때는 그런 남편이 든든하다가도 고개 한 번 못 펴고 푹 수그리고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측은해서 그만하고 좀 쉬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남편은 그럴 적마다 "공부하는 거 재밌어"라고 하거나 늦은 퇴근 뒤에 집중에서 하면 1시간 길어야 2시간이라며 불굴의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공부가 취미라니 나는 머리가 아프지만, 10년을 같이 생활한 부부의 시간을 생각하면 그것이 전혀 모르는 것만은 아니었다. 


시험을 보러 가기 일주일 전 정도까지 그 사이 공휴일이나 주말은 가방 메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달라진 부부의 시간과 또 다른 풍경들을 느끼기도 했다. 

시험 보기 전날, 그리고 시험 당일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하루의 일상, 회사 가듯이 반나절 시험을 보고 남편은 전화를 걸어왔다.

"나 시험 붙은 거 같아" 가채점을 해보니 그랬다고 했다. "정말?! 대단하다. 근데 어떻게 알아?" 


한 달 뒤 즈음, 외출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에 누군가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시험에 합격했다며, 어느 엄마의 사연이었다. "아.. 오늘이 발표날이구나"

남편과 같은 시험을 본 라디오 사연을 듣고 합격자 발표날임을 알만큼 무심히 그날을 맞이했다. "붙었어. 1차..."

놀랐다. 그런 남편이 대단해 보였고. 

학원도 다니지 않고 퇴근 후 시간을 귀를 혹사시키듯이 한 것처럼 내어준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말한 대로 해가는 남편이 얼마나 절실히 살아가고 있는지 한편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내년에 2차 봐야지..."


이후 남편은 여전하다. 밤 10시가 넘은 퇴근 후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이. 

잠을 잘 때도, 시간이 날 때도 늘 무언가를 듣고 있다. 

다시 한번 물어봤다. 

"여보 시험에 붙으면 정말 이 일을 할 거예요? 응"


어느 날이었을까 가까이 지내는 지인과 함께 밥을 먹다가 남편의 은퇴와 정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도 꺼내지 않았는데 흘러나왔다.

"내 남편은 버스 운전기사 자격증이랑 부동산 자격증을 따놓았어."

순간 움찔했다. 그분의 남편은 40대 초반인데도 그것을 준비했다는 것에. 

물어봤다. "남편이 어떤 직업을 찾아간다 해도 상관하지 않아요?"

"물론이지. 남편이 하고 싶어 하는 거면 나는 다 하라고 해"


그 이야기를 나누어서는 아니지만, 나는 남편에게 몇 번을 물어봤다.

"여보 너무 순식간에 선택한 건 아니지? 공부해놓고 나중에 안 하면 헛수고가 되니깐 다시 한번 생각하고 해 봐요"

그런 질문에 남편은 "응,할거야, 아니 안 할 수는 있어도 이것이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이야"


그래서 점점 마음을 적응시키고 있다. 

언젠가 남편이 회사원이 아니라 전혀 다른 직업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어색해하지 않기로. 

"그래 당신이 좋아하는 거라고 했으니깐..."


회사에 갈 적마다 가방에 책을 넣고 출근하는 모습

거실 테이블에 남편의 공부할 책들이 익숙하게 놓인 모습

퇴근 후의 시간 공부하는 모습 

잠자기 전까지 강의 듣는 모습 


이것이 남편이 시간을 사용하는 모습이다. 

6개월 만에 다시 공책을 펼치고 적는 동안, 치열하게 까지는 아니어도 눈에 선한 남편의 모습들과 함께 오래 생각에 머물고 고민할 사이도 없이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또 다른 나의 시간 속에서 원 없이 손글씨를 쓰며 지낸 시간들이 생각나서 손만 노트북에 가져다 놓아도 적는 글자들이 빨라졌다. 


이 글을 적는 공간 역시도 여행지.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가면 나는 아마도 다시 손글씨를 쓰고 있을 것이 훤하여 미리 적어놓는다. 

그렇게 우리들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더도 덜도 아닌 적고 싶을 때 다시 마음을 쏟아놓을 때까지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평범한 일상을 정성을 들여 평범하게 살아가련다.


(이 글은 캘리그라퍼 41세 아내와 회사원 53세 남편, 초등생 두딸을 둔 누군가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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