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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Apr 06. 2021

# usb가 망가진 후, 소중한 것들을 대하는 자세

'어 이상하다 불이 안 들어와' 

이리저리 usb를 연결해보아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 슬슬 걱정스러웠다. 다시 잘 연결하면 되겠지. 그런데 점점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렸다. usb를 컴퓨터와 연결하는 부분이 툭 떨어져 나간 거다. '그 순간 멍....'

어지간한 것들을 고치는 편인 남편에게 다시 희망을 걸고 보여주었건만 그렇지 못했다. usb 연결 부분 부품이 삭아서 떨어져 나간 거라고 했다. '좌절 ㅜ이럴 수가... 어떻게 해야 하나'


결혼생활 13년. 내가 가지고 있는 usb 총 4개. 그중 이번에 망가진 것은 최초의 저장장치였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것들, 카메라로 찍은 것들을 여기에 보관했는데 최초의 기억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가끔 남편이 노파심에 "usb는 믿으면 안 돼"라는 말 할 적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데 그런 날을 만난 거다.  완벽히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찌 됐건 망가져서 되돌릴 수가 없었다.   

20대 직장생활의 풋풋한 모습, 서로의 감정이 느껴지는 연애 때 찍었던  모습 , 여자로 태어나 늘 눈에 그렸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던 날의 모습, 모든 예쁜 것들은 원 없이 입어보고 꾸며졌던 웨딩 촬영 날,  평생 잊을 수 없는 결혼식 하던 날,  마음 설레는 신혼여행, 임신했을 때 나의 몸이 변화되어갔던 모습들, 출산하기 전 진통하던 순간의 태어난 순간, 아이들이 태어나 하나하나의 의미를 두었던 사진들,  구구절절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 이 작은 기계 안에 다 들어있었다. 


남편은 이것저것을 찾아보더니 복구를 해보러 간다고 했다. 그런데 비용은 많이 들 거라고 했다. 20만 원 30만도 나온다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라도 해야 하는 생황이었다. 모든 추억들을 복구하고 싶었다. 아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비용보다 조금 낮아졌지만 그래도 추억을 복구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다. 그래도 이것이 어디랴. 

감사, 감사하다고 백번도 얘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usb를 꽂자마자 추억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렬로 정렬되는 장면이란 그야말로 찬란했다. 시간들이 촘촘히 수놓아진 작품처럼 새삼 보였다고 해야 할까.  이 참에 뭐가 들어있나 다시 열어보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날, 어떤 날로 이름 붙여진 수많은 좋은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추억"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다는 이 단어가 이토록 살아가는 날들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하는 여운이 감돌았다. 

마음 아프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도 분명 있었음에도 사진으로 담아두었던 것은 아름답고 마음 뭉클하게 했던 순간들, 따뜻한 날들의 기억들을 더 기억하고 싶었던 내 마음의 의지처럼, 의미처럼 다가왔다. 좋은 것들은 남겨놓게 되는 어떤 습관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 많은 장면들이 좋은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더해주는 것만 같다.


요즘처럼 꽃들이 만개하여서 거리를 지나가다가 보면 나도 사진을 찍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담아놓는 것을 본다. 

앞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들을 계속 찍을 테지...

그렇게 좋은 순간들을 자동적으로 보관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갈 테지...

조그만 저장장치. usb 사건(?)이 있은 후 내내 이런 생각들이 마음속에 맴돈다. 

소중한 것들을 저장해놓고 다시 한번 저장해 안전하게 백업을 하는 것처럼 잃어버리지 않고 싶은 것일수록 마음을 기울여 아껴줘야야겠다는 것 말이다. 더불어 그렇게 좋은 날로 저장해놓고 싶음 마음이 드는 순간을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이 이 일을 통해 덤으로 얻은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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