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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Apr 24. 2021

#글쓰기로 할 수 있는 것, 라디오에 원고응모

CBS 라디오, 한동준의 FM POS 내 마음의 보석송으로 나온 글

글을 쓰고 싶은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쓰고 싶어서' 그 이유 하나 뿐이었다.

그러다 오래전 싸이월드에 글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적어보면서 뜻밖에 글재미를 발견할 때가 있었다.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는 거다.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 칭찬으로 들렸고, 글쓰기를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  

싸이월드가 기울어가고 블로그로 이사를 해 글을 쓰면서는 나름의 일기장처럼 사용하며 글을 적어갔다. 반응이 있든지, 없든지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쓴 글들이 쌓여가면서 문득 자주 듣는 라디오에서 들리지 않던 말들이 귓가에 크게 들리는 듯 했다.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

그때부터 라디오에 종종 글을 보내봤다. 그런데 방송이 되는 거다. 그 기분은 뭐랄까, '글 써도 돼' 하는 말처럼 들렸다. 어차피 블로그에 고이 담겨있는 글이었으므로 글에 날개를 달아주는 마음이 들었다. 방송으로 소개 된 글이 꽤 많아졌다. 그것도 보내는 글마다 방송이 된 것도 신기하기도 하고, 라디오 덕분에 글을 쓰는 재미를 점점 더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만 말해 놓으면 자랑 중 자랑이 되겠지만, 한 기고지에 몇 년간 글을 투고해봐도 아직까지 미채택이 되는 걸 보면 글을 받는 곳의 스타일과 내가 일치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동안 그 기고지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글을 보내지 않았다. 글이 욕심처럼 다가올 적이면 멈추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이 되든 안되든, 채택이 되든 미채택이 되는 나의 어떤 날을 쓴 글의 가치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다만, 글을 써가는데 소소한 행복을 주는 것들을 찾아보는데 이런 방법도 있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어서 적어본다.


이번 글은 CBS라디오 한동준의 FM POPS에 소개된 "내 마음의 보석송" 사연으로 보낸 글이다. 오래 방송을 듣다보니 어떤 분위기의 글이 나오는구나 하는 것이 자연스레 느껴지면서 보내고 싶은 글을 보내봤다. 그렇게 나온 글이 2주 뒤 방송이 되었다. 



방송 사연으로 보낸 글:


'어 이상하다 불이 안 들어와' 
이리저리 usb를 연결해보아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 슬슬 걱정스러웠다. 
다시 잘 연결하면 되겠지. 그런데 점점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렸다. usb 연결 와 컴퓨터 연결하는 부분이 툭 떨어져 나간 거다. '그 순간 멍....'
어지간한 것들을 고치는 편인 남편에게 다시 희망을 걸고 보여주었건만 그렇지 못했다. usb 연결 부분 부품이 삭아서 떨어져 나간 거라고 했다. '이럴 수가... 어떻게 해야 하나'

결혼생활 13년. 내가 가지고 있는 usb 총 4개. 그중 이번에 망가진 것은 최초의 저장 장치였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것들, 카메라로 찍은 것들을 여기에 보관했는데 최초의 기억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가끔 남편이 노파심에 "usb는 믿으면 안 돼"라는 말할 적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데 그런 날을 만난 거다.   완벽히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찌 됐건 망가져서 되돌릴 수가 없었다.    
20대 직장생활의 풋풋한 모습, 서로의 감정이 느껴지는 연애 때 찍었던   모습, 결혼을 하기로 하고   나도 드디어 처음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던 날의 모습, 모든 예쁜 것들은 원 없이 입어보고 꾸며졌던 웨딩 촬영 날,   평생 잊을 수 없는 결혼식 하던 날,   마음 설레는 신혼여행, 임신했을 때 나의 몸이 변화되어갔던 모습들, 출산하기 전 진통하던 순간의 태어난 순간, 아이들이 태어나 하나하나의 의미를 두었던 사진들,   구구절절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 이 작은 기계 안에 다 들어있었다. 

남편은 이것저것을 찾아보더니 복구를 해보러 간다고 했다. 그런데 비용은 많이 들 거라고 했다. 20만 원 30만도 나온다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라도 해야 하는 생황이었다. 모든 추억들을 복구하고 싶었다. 아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비용보다 조금 낮아졌지만 그래도 추억을 복구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다. 그래도 이것이 어디랴. 
감사, 감사하다고 백 번도 얘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usb를 꽂자마자 추억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렬로 정렬되는 장면이란 그야말로 찬란했다. 시간들이 촘촘히 수놓아진 작품처럼 새삼 보였다고 해야 할까.   이참에 뭐가 들어있나 다시 열어보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날, 어떤 날로 이름 붙여진 수많은 좋은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추억"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다는 이 단어가 이토록 살아가는 날들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하는 여운이 감돌았다. 
마음 아프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도 분명 있었음에도 사진으로 담아두었던 것은 아름답고 마음 뭉클하게 했던 순간들, 따뜻한 날들의 기억들을 더 기억하고 싶었던 내 마음의 의지처럼, 의미처럼 다가왔다. 좋은 것들은 남겨놓게 되는 어떤 습관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 많은 장면들이 좋은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더해주는 것만 같다.

요즘처럼 꽃들이 만개하여서 거리를 지나가다가 보면 나도 사진을 찍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담아놓는 것을 본다. 
앞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들을 계속 찍을 테지...
그렇게 좋은 순간들을 자동적으로 보관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갈 테지...
조그만 저장 장치. usb 사건(?)이 있은 후 내내 이런 생각들이 마음속에 맴돈다. 
소중한 것들을 저장해놓고 다시 한번   저장해 안전하게 백업을 하는 것처럼 잃어버리지 않고 싶은 것일수록 마음을 기울여 아껴줘야야겠다는 것 말이다. 더불어 그렇게 좋은 날로 저장해놓고 싶음 마음이 드는 순간을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이 이 일을 통해 덤으로 얻은 교훈이었다. 



방송으로 수정되어서 나온 글(라디오를 다시 듣기하며 받아 쓴 글)



'어 이상하다 불이 안 들어오네'

USB를 컴퓨터에 아무리 연결해도 작동이 되지 않자 저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이 점점 하얗게 되는 순간, USB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부분이 '툭'하고 떨어져 나갔죠.

'아 이를 어쩐다' 웬만한 것들을 고치는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남편은 USB의 연결된 부분이 삭아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힘들 것 같다고 했습니다.

결혼 생활 13년, 제가 가지고 있는 USB 4개 중에서 이번이 처음으로 망가진 겁니다.

그 시간 동안 핸드폰과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여기에 보관했는데, 그 최초의 기억들이 연기처럼 사라진 기분이었죠.

남편이 노파심에 USB를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할 때마다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 이런 일이 드디어 일어난 겁니다. 

완벽하게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되돌릴 수는 없었죠. 

직장 생활을 하던 20대의 풋풋하던 제 모습

남편과 연애할 때 찍은 다정한 모습

처음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 모습

예쁜 옷들을 입으면서 제 자신을 아름답게 꾸몄던 웨딩 촬영 날

평생 잊을 수 없는 결혼식 날

마음 설렜던 신혼여행

임신해서 제 몸이 변해가던 모습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라는 모습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추억들이 이 작은 기계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남편은 복구하러 나가면서 비용은 20만~30만 원 든다고 했지만 저는 꼭 그 사진들을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저의 소중한 추억들이니까요.

다행히 남편이 예상한 비용보다는 덜 나왔지만, 그래도 추억을 복구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 건 사실이었죠.

수리한 USB를 꽂자마자, 시간들이 촘촘히 수놓아진 작품처럼 수많은 추억들이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이 USB에는 어떤 사진들이 들어있나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데,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떤 날로 이름 붙여진 수많은 날들을 제가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서 그 추억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꽃들이 만발한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요, 

앞으로 우리는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서 보관하고 살아가겠죠.

소중한 사진을 저장하고 안전하게 백업하는 것처럼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속 깊이, 고이 간직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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