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서울대생의 노트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 흔적으로 남은 공부
서울대학교 학생회관(63동)은
하루에도 수백 명의 학생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1층엔 식당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테라스가 있고,
2층과 3층엔 동아리방과 회의실, 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있다.
서울대생들에게 이곳은 단지 행정 건물이나 상점이 아닌,
하루의 쉼표와 시작점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바로 이 건물 계단 앞에서,
수험서를 든 학생들이 잠깐 멈춰 서고,
친구들과 시험을 마친 뒤 조용히 웃으며
나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처음 공부 모임을 만들었고,
또 누군가는 여기서 울고 웃으며
자신만의 공부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갔다.
서울대생의 노트는 이 학생회관의 벤치 위,
도서관의 책상 위, 버스 정류장의 기다림 속에서
조용히 쓰이고, 지워지고, 다시 써내려진다.
이번 장에서는 ‘서울대생의 노트에 어떤 흔적이 남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흔적은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도 흐릿해지지 않았다.
바로 그 흔적 속에,
서울대생들이 걸어온 공부의 시간이 있다.
서울대 철학과 A학생의 노트를 보면
본문보다 더 빽빽한 건 여백이다.
그 여백엔 이런 메모들이 적혀 있다.
“정말 그런가?”
“이 개념과 저 개념의 차이는?”
“내가 여기에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말했다.
“저기 적힌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이에요.
공부란 결국 질문을 품은 채 나아가는 일이니까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B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쓴 문학 노트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어떤 문장엔 두꺼운 밑줄이 있고, 어떤 단어엔 하트 표시까지 되어 있다.
“그날은 내가 그 문장에 위로받은 날이었어요.”
그는 말했다.
“공부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까지 담기는 일이에요.”
서울대생들의 노트 속에는
지식만이 아니라 감정의 선과 흐름도 함께 남아 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C학생은
오답노트를 따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틀린 풀이를 그대로 둔다.
“틀린 걸 지우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봤을 때
‘내가 왜 틀렸는지’를 복기할 수 있어요.
그게 더 강한 학습이 돼요.”
그의 노트에는 줄이 그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그 ‘틀린 흐름’ 위에 다시 생각을 덧붙여 쓴다.
서울대생들은 공부의 흔적을 덮지 않는다.
그 흔적이 성장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D학생의 노트를 보면,
한 개념이 4번, 5번, 심지어 7번 반복되며 정리돼 있다.
매번 구조는 조금씩 다르고,
예시는 바뀌고, 강조한 키워드도 달라진다.
그는 말했다.
“같은 걸 여러 번 정리할수록, 점점 내 말로 바뀌어 가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건 외운 게 아니라 내 말이 돼 있어요.”
공부란 결국 반복 속에서 자기 말로 바뀌는 과정이다.
그 흔적이 남은 노트는,
그 사람의 공부법 그 자체였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E학생은 시험 직전
노트 한쪽에 ‘최종 요약’을 쓴다.
단순히 압축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개념만 남긴다.
“핵심 메커니즘 3개만 기억하자”
“이건 실험 설계에 직접 연결된다”
“이거 하나만 알아도 60점은 나온다”
그는 말했다.
“요약은 줄이는 게 아니라, 나에게 남기고
싶은 것만 남기는 일이에요.”
서울대생들의 노트는
지식의 압축이 아니라, 의미의 선별이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F학생은
모든 시험이 끝난 뒤에도 노트를 버리지 않는다.
“공부했던 순간들이 거기 다 담겨 있어요.
그날의 집중, 그날의 고민, 그날의 질문이요.”
그는 3년 전 노트를 다시 펴보며 웃었다.
“아, 이때 이렇게까지 고민했었구나.”
공부란 결국,
머릿속에 남는 게 아니라
노트 한 권에 남아 있는 자기 자신의 흔적이다.
서울대생의 공부는 단지 결과가 아니다.
그들은 공부라는 과정을 노트에 남기고,
감정으로 붙잡고,
흔적으로 기억했다.
한 권의 노트엔
지식의 선과 선 사이에,
그날의 삶이 묻어 있었다.
공부란 결국,
어떤 노트를 남겼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서울대생 30명의 공부를 관찰하며 쓴 기록이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 공부하는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신의 노트에는 어떤 흔적이 남고 있는가?
지금 그 노트 위에 흐르고 있는 당신만의 공부가,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하나의 ‘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