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4화 “그날, 나는 울지 못했다” – 처음으로 죽음을 마주한 밤

by 라이브러리 파파

그날은 유독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회색빛 구름이 병동 창틀에 바싹 붙어 있는 듯했고,
나는 출근길 내내 무언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고 느꼈다.
아침 회의 때도 직원들 사이엔 웬일인지 농담 하나 없었고,
전날과는 다르게 복도엔 간호사의 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세상은 그대로였지만,
내 안에서 조용히 울리는 경고음 같은 기분이 계속됐다.

그분—나는 그를 아직도 이름보다 ‘그분’이라고 부른다—은
이미 여러 차례 입·퇴소를 반복한 분이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땐, 뚜렷한 말투와 또렷한 시선이 인상적이었고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을 정돈해서 말하던 분이었다.
그는 병원 내에서 ‘기억이 많은 사람’으로 통했다.
자신의 청춘을, 아내와의 마지막 여행을,
그리고 손녀의 첫 편지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분은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던 3주 전부터
조금씩 우리에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식사를 반쯤 남긴 채 숟가락을 내려놓던 날,
“지연 씨, 사람은… 오래 기억에 남는 것보다
짧게 따뜻하게 남는 게 좋은 거죠?”라고 물었던 그 말이
지금 생각하면 시작이었다.

나는 그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었다.
맞다고 하자니 이별을 허락하는 것 같았고,
다르다고 하자니 그의 지친 표정을 외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분의 침대 옆에 조용히 앉았다.
낡은 앨범이 반쯤 열려 있었고,
사진 속 한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분은 말을 걸지 않았지만,
가끔 눈동자만으로 충분히 대화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손등은 믿기지 않을 만큼 차가웠지만,
아직 따뜻한 감정 하나가 미약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숨결은 얇아졌고,
그 숨결 위로
정말 아주 작게, 마지막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그분은 그렇게
떠났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간단한 검진을 마치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아주 고요하고 단정하게 흘러갔다.
사망 보고서를 쓰는 손은 떨리지 않았다.
의료기록에 날짜를 적고,
유품 목록을 확인하고,
침대 시트를 새로 정리하며 나는
내가 울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딸아이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지만
나는 “괜찮아”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아이가 방으로 들어간 뒤,
조용히 찬장을 열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손편지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그분이 몇 달 전
나에게 건넸던 작은 종이 쪽지가 들어 있었다.
“지연 씨는, 오래도록 여기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문장을 천천히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도 없이, 숨도 쉬지 못하고,
식탁 위에 엎드린 채
긴 밤을 그렇게 보냈다.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그 사람의 끝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내가 그 사람의 삶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었다.
그분이 남긴 것은 침묵도, 사진도 아닌
‘존재했다’는 한 사람의 증명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바뀌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이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불렀고,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때
내 손에 온기를 전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잡았다.
죽음은 이별이지만,
죽음 이후의 침묵 속에도
그 사람이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며칠 후,
나는 그분이 자주 앉아 있던 창가 의자에
조심스럽게 담요를 덮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감잎 하나를 올려두었다.
그분이 좋아하던 가을의 향기,
그 계절의 작별을 대신할 수 있는
내 방식의 인사였다.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
울지 못하는 날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울음마저도
그 사람의 흔적을 오래 품기 위한
나만의 애도의 방식이라는 걸.


지연 (1).jpg


※ 다음 편 예고
5화 “웃지 않는 사람” – 처음 웃음을 본 순간
오랜 침묵의 시간을 견뎌온 남성 환자가
지연 앞에서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그 한 순간이 어떻게 ‘회복’이라는 단어를 다시 불러오게 되었는지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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