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그 신발을 신는다는 것
현관 한쪽 구석, 늘 같은 자리에 놓인 운동화 한 켤레가 있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 샀던, 특별할 것 없는 회색 러닝화.
처음에는 새것 특유의 빳빳한 느낌이 있었지만, 지금은 부드럽게 발에 맞춰 늘어났다.
어느새 발등에는 먼지가 얹히고, 바닥은 닳아버려 쿠션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 아침 그 신발을 신는다.
누군가 보기엔 그저 낡은 신발일 것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새 운동화를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이 신발은 다짐의 시작점이다.
하루를 흔들림 없이 살아내겠다는 마음,
도망치지 않겠다는 약속이 깃든 물건이다.
신발끈을 묶는 짧은 동작 하나에도 의미가 생겼다.
대충 살아지지 않겠다는 결심.
비가 오든, 몸이 무겁든, 기분이 가라앉든
그 순간 운동화를 신는다는 건 나를 다잡는 일이다.
어떤 날은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온몸이 무겁고, 이불이 땅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나는 꾸역꾸역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그 한 끗 차이가 나를 다시 하루 앞으로 데려갔다.
아이도 가끔 내 신발을 바라본다.
"아빠, 이 신발 맨날 신어? 다 낡았잖아."
나는 웃으며 답한다.
"그래도 아빠한테는 제일 좋은 신발이야. 이 신발 덕분에 매일 다시 시작할 수 있거든."
운동화 끈을 조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 안의 게으름과 변명들을 조용히 눌러놓는다.
매일같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 뛸 준비를 한다.
그렇게 아침을 시작한다.
세상은 변함없이 바쁘고,
나도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운동화를 신는 순간만큼은 내 하루를 내 손에 쥔 기분이 든다.
처음 운동화를 샀을 때는 몰랐다.
이 작은 물건 하나가 삶의 리듬이 될 줄은.
한 걸음 한 걸음 쌓이는 동안,
나는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비 오는 날에도 뛰었다.
바지가 무릎까지 젖고, 운동화 안에 물이 찰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달리는 동안에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것과 한 몸이 되는 듯한 자유를 느꼈다.
운동화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내게 같은 말을 건넨다.
'너는 어제도 해냈다.'
'그러니 오늘도 해보자.'
'힘들어도 괜찮아.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해.'
벗어둔 운동화에는 하루하루가 쌓여 있다.
아이와의 다툼이 있었던 날,
힘든 결정을 내렸던 날,
소리 없이 울었던 새벽,
그리고 아무 일 없던 평범한 아침들까지.
모두 이 운동화가 함께 했다.
발밑으로 스쳐간 수많은 기억들 속에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뛰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 자신을 매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무너지고 싶을 때도 있었고,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운동화를 신었다.
운동화 한 켤레는 내게 물었다.
"아빠, 오늘도 달릴 준비 됐어?"
그리고 나는 조용히 끈을 조이며 대답했다.
"응, 오늘도 버텨볼게."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말로는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 모습,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자세,
그걸 매일 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날은 뛰는 동안 눈물이 났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답답했던 날도,
혼자 울며 뛴 날도 있었다.
하지만 발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그것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훗날 내 이야기를 기억할까.
"우리 아빠는 매일 아침 달렸어."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내가 왜 이 운동화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신는지,
언젠가는 이해하게 되겠지.
운동화가 점점 해져가고 있다.
이제 발가락 끝이 비칠 정도로 얇아진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신발을 끝까지 신을 생각이다.
이 신발이 끝날 때까지,
나도 매일 아침을, 매일 하루를, 끝까지 살아낼 것이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느리지만
결국 끝까지 걸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그리고 오늘도,
현관 한쪽 구석의 낡은 신발을 신는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아빠의 이 발걸음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매일 흔들리면서도 달려가는 아빠의 이야기,
함께 걸어가고 싶은 당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