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퇴근하지 못한 마음 하나
사표는 내 가방 안에 있다.
실제로는 아니고,
마음속 주머니 깊은 곳에 늘 접어 넣고 다닌다.
말하지 못했지만,
몇 번이나 꺼낼 뻔한 그 종이 한 장.
몇 번이나 ‘오늘이 그날인가’ 싶었던 밤.
하지만 결국
다음 날 또 출근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표 대신 출근증을 찍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이직 시장이 얼어붙었잖아.”
“애들 학원비는 어떻게 하지…”
사표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회사 때문이 아니라,
삶 때문이다.
먹고살아야 하고,
가정을 지켜야 하고,
내가 나를 감당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사표는 늘 준비되어 있지만
한 번도 진짜로 꺼낸 적은 없다.
퇴근은 했지만,
마음은 아직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밤.
맥주 한 캔을 딴다.
다른 날보다 좀 더 시원한 걸 고른다.
씁쓸한 마음엔
더 차가운 게 어울리니까.
오늘도 퇴근길에
‘내가 왜 여기까지 와 있는 걸까’
그 생각이 스쳐 갔다.
분명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땐
설렘이 있었다.
어딘가에 기여한다는 느낌,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감정.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출근이 출옥처럼 느껴지고,
월요일이 벌처럼 느껴졌다.
일은 여전히 많고,
사람은 점점 줄고,
책임은 커졌는데
마음은 작아졌다.
“그만두고 싶다.”
그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 맴돈다.
그런데 그 말을
누구에게도 쉽게 꺼낼 수 없다.
말하는 순간
내가 약해지는 것 같고,
무책임한 어른이 되는 것 같고,
가정을 포기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래서
속으로만 접는다.
사표를.
말 대신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사표 대신 참는 법을 배웠다.
감정을 숨기고,
웃음을 지우고,
회의실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법.
진심을 말하는 순간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워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퇴근길 버스 창가에 앉으면
그 모든 걸 다시 되짚게 된다.
“오늘의 나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삼킨 건
몇 번째였을까.”
“이건 내가 원하던 모습이었을까.”
마음 한구석이 쓰리다.
단순히 힘든 게 아니다.
무너지고 있는 나를 스스로도 모른다는 게 더 아프다.
사표를 낼 용기는 없지만
이대로 계속 가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참는 게 미덕’이라 배웠지만
그 미덕에
내 감정과 건강, 삶의 균형까지 담보로 내주는 느낌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다 그런 거야. 원래 사회생활은 그래.”
“그래도 너 정도면 괜찮은 편이지.”
그 말들이
가끔은 위로가 되고,
가끔은 더 아프다.
왜냐면,
나는 ‘괜찮지 않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 살고 있으니까.
오늘도 일찍 퇴근하는 건 눈치가 보이고,
휴가를 내면 죄를 짓는 기분이고,
감정 표현하면 ‘예민하다’고 불린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 말 안 하게 된다.
그리고
사표를 품은 채
또 하루를 버틴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조용히 맥주 한 캔을 딴다.
아이들이 잠든 밤,
혼자 앉아있는 거실의 조명 아래에서.
맥주 거품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걸 보며
오늘 하루 내 감정도 그렇게 가라앉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묻는다면
왜 사표를 안 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사는 게, 생각보다 복잡하거든요.”
직장은 싫지만
거기 있는 사람들과의 정이 있고,
지겨운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익숙함이라는 버팀목이 있고,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현실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그냥 하루씩 버틴다.
하지만,
이젠 버티는 것만으론 안 될 것 같아
작게라도 나를 지키는 시도를 해본다.
점심시간 10분 산책,
일기장에 끄적인 한 줄,
출근길 음악 한 곡,
퇴근 후 맥주 한 캔.
그게 지금의 나를 붙잡고 있는
작고 소중한 루틴이다.
사표를 내는 용기보다
그 하루를 견디는 용기,
그리고 언젠가는 웃으며 떠날 수 있을 만큼
나를 준비시키는 용기.
그게 지금의 내 목표다.
오늘의 맥주 한 잔 문장
“사표를 품고도 버티는 당신,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