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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유리창을 따라 빗방울이 또르르 흐른다.

by 라이브러리 파파

유리창을 따라 빗방울이 또르르 흐른다.

창밖 세상은 회색의 커튼처럼 흐릿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만큼은 선명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작지만 단단한 공간.

차 안.


“아빠, 이 노래 좋다!”

조수석에 앉은 딸아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말을 건넨다.

우리가 자주 듣던 그 멜로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한때 내 유년의 배경음악이었고,

지금은 아이들의 추억으로 번역되고 있는 중이다.


뒷자리에서는 아들이 학습 만화책을 읽다가 툭툭 건넨다.

“아빠, 이거 봐. 진짜 웃겨.”

그림 속 캐릭터들이 우리 웃음을 유도하고,

우리는 같은 페이지에서 웃는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도,

이 순간만큼은 한 페이지에 머물러 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우리는 식지 않은 도시락을 꺼내 차 안에서 나눠 먹는다.

김밥 하나, 삶은 달걀 하나.

그저 그런 간식이지만,

아이는 “엄마 최고!”라며 감탄을 한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입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전하는 말.

그 말 한마디에 피곤함이 녹는다.


“아빠, 우리 다음엔 이 비 오는 날에 도서관 가자.”

딸아이의 말에 아들이 응수한다.

“난 캠핑도 좋아! 비 오는 날 텐트 안에서!”

그렇게 다음을 이야기하는 이 아이들이

이 순간을 추억으로 간직해 줄까.


차창에 흐르는 빗방울 너머로

어느덧 해가 질 무렵.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도착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감정을, 이 여운을

함께 나눈 사람들과 있다는 것.


오늘 이 차 안은

우리 가족의 작은 세계였다.

온전한 쉼표, 잊지 못할 장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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