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자유일까, 유도된 반복일까
형은 넷플릭스를 켤 때마다
무엇을 보고 싶은지보다
어디까지 봤는지를 확인한다.
자동으로 떠오르는 추천,
중단했던 지점부터 이어지는 재생,
비슷한 장르, 비슷한 배우, 비슷한 분위기.
그 익숙함 속에서
형은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에 안도한다.
반면 왓챠를 틀면
형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오늘은 뭘 보고 싶지?”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가 뭘까?”
“이건 누가 만든 거지?”
선택이 많아지는 순간,
형은 내가 뭘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넷플릭스 –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
넷플릭스는
선택을 줄이기 위한 설계의 정점이다.
자동 재생
장르 큐레이션
사용자 패턴 기반 추천
형이 느끼기엔
넷플릭스는
형의 시간을 점유하지 않으면서,
형의 성향을 통제한다.
보고 싶은 걸 고른 게 아니라
‘보게 될 것’을 유도받는 감각.
그건 게으른 게 아니라
지친 하루에 필요한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의
가치일지도 모른다.
왓챠 – ‘고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왓챠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이 작품을 왜 좋아하나요?"
"이 감독의 전작도 알고 계셨나요?"
"비슷한 평가를 한 사람들이 이런 걸 봤어요."
형은 왓챠를 통해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작품을 고르는 ‘나’를 관찰하게 된다.
그건 단순한 취향의 소비가 아니라,
스스로를 알고 싶은 사람의 탐색이다.
형에게 왓챠는
영상 스트리밍이 아니라
내 취향의 거울이 되어간다.
그래서 너는 지금, 무엇을 고르고 있니?
형이 보기엔
넷플릭스와 왓챠의 차이는
취향을 ‘소비’하느냐, ‘탐색’하느냐에 있다.
넷플릭스는 감정을 빠르게
해소시키는 플랫폼,
왓챠는 취향의 뿌리를 더듬게 하는 플랫폼.
둘 중 하나가 옳은 건 아니야.
중요한 건
형이 지금 무엇을 원하느냐는 거지.
형의 마지막 한 마디
형은 이제
영화를 고르기 전에
‘무엇을 보고 싶은가’보다
‘내가 오늘 어떤 감정인지’를 먼저 생각해.
그날의 기분이
넷플릭스를 고르게 하고,
또 어떤 날은
왓챠의 조용한 선택지를 찾게 하더라.
취향은 고르는 게 아니라,
그날의 나를 반영하는 창처럼 다가온다.
너는 오늘,
무엇을 보기로 했어?
그리고 그건
지금 너의 어떤 얼굴과 닮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