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사장님은 중학생입니다〉

[3화] – 꽃의 이름은 아직 몰라도

by 라이브러리 파파

새벽 다섯 시, 유난히 서늘한 공기.
로미는 유리창에 이슬이 어른거리는 창가에 앉아, 멍하니 빛이 번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과 파랑이 섞인 색으로 천천히 물들고 있었고, 창문에는 하룻밤 동안 맺힌 물방울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가게 문 옆, 나뭇결이 살아 있는 작은 나무 걸이.
그 위에 엄마가 손글씨로 쓴 메모가 마스킹 테이프로 살짝 붙어 있었다.
"시장 가는 날이야. 리스트는 카운터 옆에 있어. 자신 있게, 사장님 :)"

종이에는 약간의 구김이 있었고, 펜 끝이 지나간 자리에 잉크가 번진 흔적이 있었다.
사장님, 그 말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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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은, 익숙하지 않다고 피할 수는 없는 날이었다.

로미는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둔 앞치마의 끈을 조심스럽게 묶고,
흔들리는 손끝으로 엄마가 달아준 꽃 모양 브로치 하나를 꾹 눌러 달았다.
작은 금속 장식에는 미세한 긁힘 자국과 시간이 만든 광택이 묻어 있었다.

“잘 다녀올게요, 엄마.”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창밖에는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은 나뭇잎들과, 천천히 문을 여는 가게의 셔터 소리가 섞였다.
로미가 탄 버스 창문은 살짝 김이 서려 있었고, 손가락으로 그린 동그라미 너머로 세상이 뿌옇게 비쳤다.
꽃가게에서 벗어난 풍경은 마치 커다란 캔버스처럼 낯설고 압도적이었다.
시장이라는 단어엔 늘 엄마의 손이 함께 떠올랐는데, 오늘은 그 손이 없다.
그게, 조금 무서웠다.

꽃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숨이 막힐 정도로 시끄러웠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오가고, 발걸음은 먼지 낀 바닥 위를 거칠게 스쳐갔다.
천장에는 낡은 비닐천이 햇빛을 간신히 가리고 있었고, 그 아래로 수많은 손수레들이 금속 바퀴를 덜컹이며 지나갔다.
바닥은 물기로 젖어 있었고, 하수구 쪽으로 흐르는 물줄기엔 꽃잎과 흙이 섞여 떠다녔다.
모서리가 해진 골판지 박스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고, 골목 끝에서는 날카롭게 얽힌 흥정 소리가 퍼졌다.

"이거 한 박스 더! 여긴 여섯 다발!"
"아니요, 사장님. 오늘 이건 뽑기 힘들어요. 대신 이거 어때요?"

그 말들이 쏟아지는 공기처럼 시장을 가득 채웠고,
로미는 그 한가운데에서 말 한마디를 꺼내지 못한 채, 가방 끈을 꼭 쥐고 서 있었다.
그 가방은 엄마가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천 가방이었고,
오른쪽 주머니에는 약간 찢어진 자국이 있어 실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사람들의 말이 너무 빠르고,
걸음이 너무 크고,
아무도 나를 눈에 두지 않는 이 공간에서
나는 너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나…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마치 어른들의 세계에 잠시 끼어든 실수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쪽 구석으로 조심히 비켜서려던 순간.
로미는 조용히 무너지는 꽃상자 하나를 보았다.
누군가가 툭 건드렸는지, 붉은 거베라 한 다발이 바닥에 흩어졌다.
꽃잎은 물에 젖은 바닥에 눌려 있었고, 가장자리부터 조용히 갈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피해 바쁘게 지나갔고,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렇게 예쁜 꽃도, 누가 신경 써주지 않으면 그냥 밟혀버리는구나.’
어쩌면 지금의 내 마음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겠지.
그런 생각이 슬그머니 눈가를 뜨겁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라벤더가 보였다.
햇빛 한 줄기가 스며드는 선반 위에서,
보랏빛 꽃들이 조용히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작고 단정한 잎사귀, 정갈하게 정리된 줄기,
그리고 무엇보다도—소란한 공기 속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지는 은은한 향기.
왠지 모르게 그 앞에서는 발이 멈췄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가는 틈에서도
그 작은 꽃은 조용히, 묵묵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소란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꽃.
조용하지만 존재감이 있는 향기.
그게… 나랑 닮은 것 같았다.

“이거… 무슨 꽃이에요?”
드디어 내뱉은 질문은
떨렸지만, 진심이었다.
그 짧은 말에 상인 아저씨는 로미를 한참 바라보다
천천히 웃으며 대답했다.
“프렌치 라벤더. 향이 참 고와.”

라벤더는 마치 기억 속에서 피어난 것처럼 코끝을 간질였다.
어릴 적, 엄마가 머리맡에 두었던 작은 천 주머니 속에서 풍기던 그 냄새.
달콤하면서도 차분한, 마치 마음을 어루만지는 향기.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그게 마음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문장이었다.
그 순간, 로미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리스트에 없지만, 이 꽃은 가져가야 한다고.

프렌치 라벤더 한 다발, 옅은 노란 장미 한 묶음,
그리고 민들레처럼 부풀어 오른 드라이플라워를 곁들였다.
엄마가 쓰던 공식은 아니었지만,
이건 오늘 로미가 처음으로 만든 자기만의 조합이었다.

계산을 하고 꽃을 포장받는 동안,
포장지의 셀로판지에 햇빛이 반짝였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진짜로 내가 해낸 거야…”
그 말은 마음속에서만 조용히 울렸다.

꽃들을 품에 안고 돌아오는 버스 안,
창밖으로 햇살이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
무릎 위의 꽃이 따뜻했다.
마치 꽃이 아니라 사람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꽃의 이름은 아직 다 모르겠어도,
오늘 나는 꽃이 말을 거는 방법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로미는 속으로 중얼이며 창밖을 바라봤다.
세상은 여전히 크고 빠르지만,
그 속에서 오늘 나는 한 송이의 말을 듣는 법을 배웠다.
그건 작지만 확실한 성장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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