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집 앞에서 4편

돌아온 이유

by 라이브러리 파파

도시의 아침은 언제나 바쁘게 시작된다.
버스는 구름처럼 떠다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초침을 앞질러 걷는다.

그녀는 유리창 너머로 그런 풍경을 오래 바라봤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세상과 단절된 듯한 카페 한구석.
그곳이 그녀가 자주 숨는 자리였다.

무인카페.jpg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이고 켰다 껐다.
노트북을 펼쳤다 닫았다.
머릿속은 가득 차 있었지만,
그 어떤 생각도 완전히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문장도, 마음도.

물끄러미 바라보던 커피는 어느새 식어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식어가는 커피에서조차
지금의 자신처럼 아무 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바쁜 건 핑계였고,
사실은 지쳐 있었다는 걸.

그녀는 퍼스에 있었다.
조용하고 햇살 좋은 도시.
하지만 그녀가 일했던 곳은 그 도시의 정반대였다.

쇼핑센터 안의 바쁜 카페.
잔을 닦고, 커피를 내리고, 다시 잔을 닦고.
카페 문이 열리면 하루가 시작됐고,
문이 닫히면 하루가 사라졌다.

“더블 샷 라테, 얼음 없이!”
“카푸치노는 누가 가져가요?”
“테이블 세 개 들어왔어요!”

속도는 미덕이었고, 감정은 사치였다.
그녀는 몸이 기억하는 대로 움직였고,
감정은 서랍 깊숙이 밀어 넣었다.
하루에 몇 백 명의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단 한 사람의 눈빛도,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존재처럼,
그녀는 투명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아니, 몸이 너무 지쳐버린 평일 오후가 되면,
그녀는 조용히 가방을 들고 바닷가 근처의 작은 카페로 향했다.

그곳은 쇼핑센터 안의 카페와는 달랐다.
한가롭고, 적막하고, 창밖으로 파도가 보였다.
벽에는 누군가 손으로 적어 놓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Silence is sometimes the best conversation.”

그녀는 그 문장 앞에 앉아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커피 향을 맡고,
고개를 들어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종종,
‘그의 마당’을 떠올렸다.
평상 위에 마주 앉았던 그 날들.
차를 따라주던 손.
말없이 웃던 얼굴.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함께 바라보던 노을빛.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녀는 어느 날,
해가 기울어가던 바닷가 카페 한편에서
문득 눈물이 고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친 일상 속에서도,
그가 생각나지 않던 날은 없었다.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던 것뿐이었다.

그녀는 외로움이 아니라,
그를 잃을까 봐 겁이 났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는 다가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않았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떠났던 날에도
그는 붙잡지 않았지만,
떠나는 뒷모습에 어떤 미움도, 실망도 남기지 않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침묵이 진심이었다는 걸.

하지만,
그 침묵이 그녀를 돌아오게 만든 것은
단지 ‘그가 좋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이 다녀갔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정리해 두고,
언제든 다시 앉을 수 있게끔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날,
그녀는 지하철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 자리를 그리워했던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내 모습’을 그리워했던 거였어.”

그곳의 그녀는
조금씩 웃고 있었고,
어깨가 덜 무거웠고,
말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퍼스에서 떠나기 전,
작은 다이어리에 짧게 적었다.


“나는 다정한 사람 곁에 머물고 싶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퍼스의 바다는 멀어졌고,
익숙한 하늘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 무엇인가 맺힌 듯
숨이 막힐 만큼 긴장됐지만,
동시에 한없이 설레는 감정도 있었다.

‘혹시 그가 여전히 그 자리에 없다면.’

‘혹시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수많은 상상과 불안이 교차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희망 하나만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을 거야.”

해가 지기 전,
그녀는 마당 입구에 도착했다.
바람이 조금 차가웠고,
심장은 이유 없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평상 위엔,
그가 있었다.
책을 읽고 있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놀라지 않았다.
뛰어나오지도 않았다.

대신, 조용히.
익숙하게.
마치 매일 보던 사람을 맞이하듯 말했다.

“오셨어요.”

그녀는 울컥했다.
“보고 싶었다”는 말보다,
“왜 왔냐”는 말보다
이 한 마디가 훨씬 따뜻했다.

그 순간,
그녀는 안심했다.
자신이 돌아온 이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날 밤,
두 사람은 평상에 앉아
차를 마셨다.
말없이도 많은 것을 나누는 사람처럼.
긴 여행 끝에 다시 도착한 집처럼.

그녀는 조용히 찻잔을 감싸 안고
속으로 말했다.

“나는 돌아온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로 다시 걸어온 거야.”



다음 편 예고 – 〈조용한 걸음, 깊어진 시선〉

말은 없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눈빛에 마음이 들키고,
조심스레 다가간 손끝에
작은 떨림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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