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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꽃시장에서 사라진 날

― 로미의 가장 오래된 기억 한 조각

by 라이브러리 파파

다섯 살 로미는 주말마다 엄마를 따라 꽃시장에 갔다.
엄마는 작은 꽃집을 운영했고, 시장은 그들의 주말 아침 루틴이었다.


그날도 노란 머리핀을 단 로미는 한 손에 엄마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반대쪽 손엔 지난주에 외운 꽃 이름 목록이 적힌 작은 수첩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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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야, 오늘은 어떤 꽃을 가장 먼저 찾을까?”
엄마의 질문에 로미는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금어초! 마음이 깨졌을 때 도와주는 꽃!”

엄마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금이 간 마음을 감싸주는 꽃이지.”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따뜻했다.
엄마의 손은 꽃잎처럼 부드러웠고,
목소리는 라벤더 향기처럼 조용히 퍼졌다.

시장 안은 활기로 가득했다.
선홍빛, 연보라색, 하얀 꽃들,
각기 다른 향기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얽혀 들려오는 곳.
로미는 작은 키로 그 속을 뚜벅뚜벅 걸으며 꽃 이름을 맞히고,
엄마는 로미를 안쓰럽게 지켜보면서도 자랑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로미는 눈을 뗀 순간,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다.

시장 한복판,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
로미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당황한 마음에 두 눈이 커졌고,
손에 쥐고 있던 꽃 이름 수첩이 바닥에 떨어졌다.

주변은 여전히 바빴고,
세상은 마치 로미 혼자만 멈춘 것 같았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고,
발끝에서부터 공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어깨가 떨렸다.

그때였다.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미야!!”

엄마였다.
길 건너편, 시장 입구 쪽.
엄마는 로미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장미다발을 든 채, 헐레벌떡.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로미…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는 숨을 고르기도 전에 로미를 꼭 안았다.
로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엄마 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작은 몸이 흔들릴 정도로,
그 울음에는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는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렇게 둘은 한참을 안고 서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소음은 멀어지고,
그 순간, 세상은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로미는 침대에 누워 조용히 말했다.

“엄마, 다음엔… 내가 꼭 엄마 손 놓지 않을게.”

그 말에 엄마는 이불을 덮어주며 웃었다.
“그래, 우리 이제 서로 절대 손 놓지 말자.”

로미는 그 말을 마음 깊이 넣어두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엄마 손을 잡을 땐 꼭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처럼.

그 기억은 지금도 로미의 마음에 남아 있다.
꽃시장 골목의 향기와,
엄마의 숨결,
그리고 작은 공포가 만든
절대 잊을 수 없는 약속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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