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제도가 늘었는데 왜 구성원은 더 힘들까
언뜻 보면 호텔 휴게실 같았다.
그런데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 명, 두 명 다녀가긴 했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나갔다.
편안함보다 어색함이 컸다.
사내 복지 만족도 조사에서 이런 응답이 많았다.
“마음은 가는데 발길이 안 갑니다.”
“쉬는 공간은 있는데 쉴 시간이 없어요.”
“눈치 보여서 마사지 신청도 못 해봤어요.”
조직은 복지를 도입하며 말한다.
"구성원들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투자입니다."
하지만 구성원은 되묻는다.
"그럴 거면 일의 양을 줄여주세요."
요즘 기업들은 복지 콘텐츠를 잘 만든다.
사내 전용 카페, 마사지 서비스, 생일 케이크,
복지 포인트, 사내 콘서트까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하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 보면, 그 복지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사용하지 않는 대다수는 그 혜택에 거리감을 느낀다.
"그 팀은 여유 있어서 자주 가던데요."
"우린 이번 분기 성과 압박 때문에 다 못 쉬었어요."
결국 복지는 이용 가능성이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한 부서장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카페라운지 만들어놓고, 정작 우리 직원은
다 식판 들고 회의실에서 먹어요.
이상하죠?
근데 분위기가 그래요. 한 명이 먼저 빠져나가면
괜히 눈치보이고,
부장님이 안 쓰니까 팀장도 안 가고, 팀장이 안 가니까
사원도 못 가는 거죠.”
복지제도는 늘었지만,
그걸 사용하는 건 또 다른 조직문화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었다.
구성원들은 복지를 ‘혜택’이라고만 여기지 않는다.
복지는 회사가 나를 사람으로 대우하는가를
보여주는 감정적 지표다.
복지가 많아질수록,
그걸 못 누리는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간식 창고가 채워질수록, 야근하는 직원은 공허해진다.
사내 콘서트 사진이 올라올수록, 현장직은
‘우린 해당 안 되는구나’라며
스스로를 조용히 내려놓는다.
쌓아놓은 혜택보다 중요한 건,
그걸 쓸 수 있는 분위기, 당당히 누릴 수 있는 조직문화다.
그래서 나는 복지 관련 보고서에 이런 문장을 꼭 쓴다.
“복지제도는 예산이 아니라 신뢰로 운영되는 제도입니다.”
〈“공고는 열렸는데, 자리는 이미 정해졌더라” –
사내 공모의 민낯〉
기회로 보였던 공고. 하지만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었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