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관계에 대한 고찰

아빠와의 기록: 삶의 철학

by 이지

제목: 한국에 가고 싶었던 YJee의 일기


보낸 사람: YJee(******@hotmail.co.kr)

보낸 날짜: 2012년 6월 9일 토요일 오전 8:23:42

받는 사람: 명아(******@hotmail.com)


비록 내가 바보같이 커피에 같이 먹으라고 준 빵조각을 커피 속으로 풍덩 집어넣었더라도 오늘은 그냥저냥 흘려 넘기련다.

사람이라는 건 적응의 동물인지, 항상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동물인지, 혹은 너무나도 지나치게 이기적인 동물인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찾게 되고 끊임없이 다른 관계를 요구하게 된다. 내가 사랑한 만큼 남도 나를 사랑하길 바라고. 내가 노력을 쏟은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노력을 쏟길 바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서 사랑하는 건데 거기에 대한 대가를 지나치게 바라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내가 크게 크게 크게 부풀어서 사랑하고 기대한 만큼 풍선 터지는 소리는 더 커질 텐데. 나한테 관심 갖아달라고 아우성쳐도 상대방이 보기엔 자신이 심심하니까 남을 찾는 한심한 사람일 수도 있는데.


어렵다. 많이 생각했고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내 마음은 갈대와 같고 남의 마음은 블랙홀보다 더 깊기만 하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 이건 나에게 사랑이 너무 컸기에 결국 혼자 자학하여 낸 상처가 아닐까. 사랑보다 깊은 상처만 준 너는 결국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나겠지.


문득 상현오빠가 보여준 영화가 생각난다. 얼마 전에 본 건데도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줄 것이라 생각했던 친구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리자 지나친 외로움에 못 이겨 결국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 이야기. 이상하게도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이해가 안 되던 스토리인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사랑과 외로움, 고독. 이런 것들이 참으로 아름답지만 힘들다는 것이.


내가 사람 맛을 너무 알아버린 것인지, 아님 그냥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것인지. 어려울 따름이다. 스페인에서의 고독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아마 그때 알아서 그랬을 수도. 외로움에 몸부림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성 폭발의 시기다. 내가 좋아하는 시원한 빗 바람과 청량한 빗소리. 예쁜 도시 풍경에 느리게 가는 시간까지.

나는 왜 이렇게 남미 여행을 함께 했던 24명의 사람들을 그리는 것일까. 아니다. 24명보다는 2명, 혹은 3명이겠지. 태국을 같이 여행할 때도, 스페인 모로코를 여행할 때도 못 느끼던 감정이라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리도 안되고.... 내가 이렇게 사람에게 집착했던 적이 있었던가. 열심히 카톡만 찾아다니던 작년 5-6월 경이 문득 떠오른다. 혹은 남이 스카이프 해주길 간절히 기다리건 작년 9월 스페인의 자취방.


사람에 목맨다는 것은 쇼핑이나 여행에 목매는 것보다 백만 배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쇼핑하고 돈 벌고 여행하는 것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사람한테 매달리는 것은 절대 혼자 해결하긴 어려운 일이나 말이다.


그만큼 내가 지치고 외로웠던 걸까, 아님 그만큼 내가 그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 사람들에게 의지했던 것일까. 사랑과 전쟁. 이건 사랑하는 마음과 나와의 전쟁이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길 바라니 일이 점점 커지고 나만 외로워지고 자괴감에 빠지는 듯하다. '외로우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의 설리처럼 비틀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게 이런 마음 아닐까. '나를 인정해줘, 나를 사랑해줘, 나만 바라봐줘.' 그러지 말아야겠다. 내가 인정하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래야 내가 외로워지고 내가 단단해지고 나로서의 '나'가 되지 않을까. 단단해지기 위해서 여행하고 경험하고 있는데 이렇게 말랑해져서 가면 억울하지 않겠니!



제목: 인생


보낸 사람: YJee(******@hotmail.co.kr)

보낸 날짜: 2012년 6월 9일 토요일 오전 8:23:42

받는 사람: 명아(******@hotmail.com)


석가가 처음 태어나서 한말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다. 인생이란 것이 늘 좋은 것에서 안 좋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어서 자신감이 없으면 무엇에라도 의지하고 싶고 그 의지처가 단단하다고 믿을수록 그것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고 좋은데, 갑자기 밖으로 밀려나서 혼란스러울 때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전적으로 엄마에 의존해야 하니 엄마가 없으면 너무 불안해서 울고 불고 하는 것이고, 종교에 귀의 한 사람들도 자신을 믿지 못하고 전적으로 신에게만 의지하려고 하다 보니 있지도 않은 신에게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중시하는 가르침 중에 4제 팔정도가 있다. 4제는 인생은 '고'인데 그 이유는 '집착'이고 '그 집착을 버리는 것이 해탈하는 것이다'는 '고집멸도'라고 하는데, 이는 사람이 어떤 것에 집착하는 것이 고통을 주는 제일 큰 이유라는 것이다. 집착을 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으려면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고 자신을 제일 중요하게 여길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중심점을 갖출 여유가 있어야 하고 나 혼자 여유롭게 살아갈 의지가 있어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그러면 현재를 살기가 재미없게 된다.

아빠가 추구하는 인생관이 유아독존이다. 세상에 아무것도 나를 좌지우지할 수 없게 욕심을 버리는 것인데 그러려면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는 끊어야 하고, 어떤 일이든지 간에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쉽지가 않다. 다만 아빠는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고독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 지금도 될 수 있으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많이 맺지 않으려고 노력하니까 근심이 적어지는 것이지.

절연무우라고 했다(인연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하지만 너처럼 젊은 청춘은 사람이 재산인것니까.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청춘인 것이다. 다만 어떤 일에도 집착을 하지는 말아라. 특히 변화무쌍한 것이 최고인 인간들에게는.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고 현재의 나를 믿고 나에게 최고의 점수를 주도록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니 현재가 힘들더라도 자신을 비하하지는 말고 내일은 더 나은 나일 것이라는 것을 믿고 힘내서 살면 된다.

긴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은 쉬고 나면 추억이 될지니 하룻밤 잠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나이다. 고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양분이니 고맙게 받아들이고, 남은 여행 즐거이 마치고 집에 오면 최고의 여행 었다고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건강하고...




RE: 인생


보낸 사람: YJee(******@hotmail.co.kr)

보낸 날짜: 2012년 6월 9일 토요일 오전 8:23:42

받는 사람: 명아(******@hotmail.com)


나는 건강하오.

사는 게 참 어려워. 아니지 잘 사는 게 어려운 것이겠지? 한국에 있었음 친구도 만나고 훌쩍 혼자 여행도 떠나고 책이라고 읽을 텐데 말도 안통하는 생판 남의 나라에서 무언가 나를 치유하고 바로 세울러니 영 어렵네. 내 일기를 읽고 이렇게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는 아빠가 있어서 항상 의지되고 고마워. 고독하게 사는 법을 배우라고 했지만 그래도 가족하고는 의지해야 하는 것이겠지.

(내가) 재미있게 살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으려면 그 사람에게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그게 참 생각만으로는 정리가 잘 안되네. 의식하고 있다 보면 관계 속에서 깨달음이 올까. 난 건강해. 이틀 내내 비싼 돈 주고 호스텔에서 늘어졌더니 피곤이 줄어들은 것 같아. 아빠도 건강해야 해. 우리 여행에 부정맥 있는 오빠가 있었는데 보니까 아빠 생각나더라. 파이팅!


여전히,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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