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마음 기억하기
어렸을 땐 글쓰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학교에서 시를 적어오라, 독후감을 적어오라 하면 안쓰겠다고 울며불며 버티다 결국 아빠가 아침에 후다닥 써준 글을 받아가곤 했다. 중학교 때는 초등학교 교사인 고모에게 부탁해서 항상 방학숙제를 마무리했을 정도로 원고지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고등학교 때는, 더했다. 논술고사로 대학을 가야한다고 고등학교를 올라가기 전부터 벌써 옛날에 죽어 실체도 없는 데카르트, 니체와 싸워야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내가 글쓰기에 더욱 좌절했던건, 3년 내내 논술학원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논술고사를 치는 대학은 줄줄히 낙방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평생 글과 나는 절대 이어질 수 없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글에 흥미를 갖게된 것은, 모든 학생이 그렇듯, 선생님의 칭찬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대학교 1학년 때 필수 교양으로 (이말은 즉슨 억지로) '읽기와 쓰기'라는 수업을 듣게되었는데, 젊고 톡톡튀는 나의 교수님은 읽기 20% 쓰기 80%의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의 원성을 샀더랬다. 매 주 글쓰기 미션이 있았는데 가령 바람을 느껴보고 시를 쓰라하고, 도축하는 장면을 보고 느낀 점을 쓰라하고,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쓰라고 닥달하니 같이 수업을 듣던 내 친구는 결국 중간고사 이후에는 수업을 거의 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수업이 정말 좋았다. 내가 느낀대로 마음 가는대로 쓰라고 하니 정말 쭉쭉 글을 쓸 수 있었고, 나의 논리를 가지고 조목조목 빨간 줄 쳐가며 비난하지 않으니 신이 났다. 특히나 내 어린시절을 돌아보던 글은 추억을 되살리는 느낌이었고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짜릿했다.
물론, 나는 내가 글쓰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수업 이후에도 딱히 글을 쓰진 않았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글쓰기는 일기. 그리고 여행(느낌)기였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나의 무지막지한 여행역사가 열린다. 학기 중엔 돈을 벌고 방학 때는 어딘가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그 전에 여행했던 기억들이 가물가물해졌다. 그래서 처음엔 찍지도 않던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일기를 쓰면서 여행을 기록했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하게, 오늘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먹었고 누구를 만났는지를 적었다. 그 다음 여행에서는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썼다. 그 다음 여행에서는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꼈고, 이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지 적었다. 그 다음 여행에서는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꼈고, 이것을 바탕으로 과거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떠올렸고 그 기억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여행이 모두 끝난 후 나의 여행기를 바탕으로 내 자아를 찾기 시작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생각으로 정리되지 않는 것을 글로 쓰는 것이 좋았다. 글로 쓰면서, 과거의 어떤 경험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미래의 나에게 영향력을 줄지 생각하는 과정이 좋았다. 중고등학교 때 하지 못했던 자아찾기를 나는 20대 중반이 된 지금 글을 통해 하려고 한다. 사회로 나아가기 앞서 밀려오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해소하는 매체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나의 삶을 기록하고 나를 추억하고 싶었다.
나의 글쓰기는 이런 자기애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