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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Jul 14. 2016

그대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2

'여행향기'와 함께한 것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 하나만 꼽으시고, 그 사건이 자신에게 준 의미와 영향에 대해서 적으시오'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실은 전에 썼던 부산여행기보다 더 먼저 생각난 사건이 '여행향기' 엠티에 간 것이었다. 대학생 여행동아리인 '여행향기(이하 여향)'는 내가 6년 대학생활 중 4년을 활동한 단체이다. 내 역사 상 가장 높은 감투인 동아리 부회장을 맡았던 곳이고, 평생 취미인 여행을 가르쳐 줬으며, 죽기 전까지 함께 여행하고 싶은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준 동아리이니 내 삶에 정말 큰 사건이 아니겠는가!


여향에 가입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만날 지나다니던 도라지와 엑스관 사이의 게시판은 학과 생활이 크게 재미없었던 나에겐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었다. 특히나 학기 초가 되면 한창을 서서 정독을 해야할 정도로 각종 동아리 모집, 강연회, 기자단, 봉사활동 등의 외부활동 정보가 그득했다. 그리고 2009년 가을, 그 보물 보따리 속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인도 배낭여행을 간다던 그 동아리였다. 배낭여행을 간다면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이 캄보디아와 인도였다. 결국 그 때 인도와는 인연이 안되었지만, 당시엔 인도를 가고 싶단 꿈에 부풀어 '함께, 알고, 싸게' 갈 수 있게 해준다는 그 동아리에 신청서를 냈다.

여향력 = 지리산 둘레길도 급하게 모아 급하게 잘 다녀올 수 있는 추진력


그리고 여향에 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난 첫인상이 별로인 사람과 오랫동안 친하게 잘 지내는 경우가 있는데 여향이 그랬다. 신입생 환영회라고 첫 모임을 갔더니 사람들이 정말 발랄하여 어찌나 잘 놀고 마시던지! 내 페이스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에너지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기본적으로 노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확률적으로 많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노는 것이 좋아도 꽤나 정적인 경향이 있어 당시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친한 사람도 없고, 친해질 능력도 안되니 거의 매일 있는 놀'꺼리'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 당시 나에겐 문과대 공연팀 춤 연습이 우선시 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향과 인연이 될 운명이었을까. 수없는 모임을 모두 불참 한 후 간 모임은 여향의 정기 국내답사였고, 세번째는 활동비를 많이 지원해준다는 문자에 참여한 기수 마지막 엠티였다. 국내답사는 여행이니 가고 싶었고 신입생환영회 때와 같이 친해진 사람 없이 무난하게 다녀왔었다. 생각해보니 뒷풀이도 가질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 엠티 역시 나 빼고 모든 사람이 친한 모임이었다. 아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국내 답사에서 같은 조였던 언니들이 주축이었고 천사같은 언니들은 나를 데리고 다녀주며 굉장히 즐겁게 놀아주었었다. 그리고 술취한 언니들은 이후 길이 남을 모습들을 보여주며 나와 공감대를 형성했고, 겨우 두번째 본 나에게 동아리 여행 기획팀 운영진을 제안하며 내 여향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아! 그 운영진을 안했으면 나는 지금 어떠한 사람들과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까? 당시 시작했던 라켓볼을 죽도록 치면서 근육질이 되어 운동 중독녀가 되었을까, 아님 여향과 비교하며 고민했던 미술 교육 동아리에 가입해 그림을 더 그렸을까? 학과 공부에 더 집중해서 공부를 많이 했을 수도 있겠다. 단순한 생각들 말곤 다른 옵션들이 크게 생각나지 않는 이유는, 그 때가 아니더라고 결국 여향 활동을 했을 것 같아서이다. 활동비를 지원해줘 거의 공짜 엠티라는 그 문자 하나에, 언니들이 일 잘할 것 같다며 기획팀으로 오라고 했던 그 한마디에, 다음 답사지가 (정말 가고 싶었던) 거제도라는 그 지역명에 반응했다는 건 내 마음이 항상 여행에 쏠려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일 수도 있기에 말이다.


사진찍는 것도 이 때부터 시작했다


여튼 그 이후, 나의 2010년은 여향을 빼곤 아무 설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동아리로 가득차있었다. 멋도 모르는 새내기 대학생이었던 내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알아가고 책임감이 무엇인지 짊어져보는 것은 정말 값진 일이었다. 봄엔 거제도 국내 답사를 준비하고 다녀오며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고, 여름엔 인생 일대의 신경전이 가득하여 마음 속의 화를 잠재우지 못했던 티벳 해외 답사를 다녀왔더랬다. 가을엔 티벳 여행의 여파를 수습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하면서도 성공적인 담양 여행을 기획했음에 뿌듯했고, 겨울엔 내가 좋아하는 터키를 소개해줄 수 있어 보람된 해외 답사를 기획했었다. 그 이후의 대학 생활 역시 7할 이상 여향과 함께한 여행들이 가득 매우고 있다.



지금은 취미로 정착한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다양한 여행을 '공부'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첫 해외 배낭여행이었던 티벳 해외답사는 팀원들이 2달 전부터 일주일에 2번씩 모여 스터디를 하고 책자를 만들었었다. 여향의 전통인 '함께, 알고, 싸게 여행하자'는 슬로건에 잘 부합하는 것이 여행 스터디이다. 알고 가는 여행을 하다보니 여행을 가선 견문이 더욱 넓어 졌다. 기존에 친하지 않던 사람들이 여럿 함께하는 여행을 하다보니, 서로 존중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 이러한 여행력 덕에 이후 혼자 혹은 동행을 구해 다니는 것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여행을 기획하고 실현하여 추억을 공유하는 일을 매 학기 마다 반복하니 여행이 익숙해질 수 밖에!

첫 배낭여행 이었다, 티벳.


내 여행력을 넘어 가장 중요한 여향의 유산은 평생 함께할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내 주변엔 재밌는 사람들이 많다. 각자 나름의 이유와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친구들이라 만나면 즐겁고 항상 새로운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 내가 조금 다른 방향의 삶을 사려고 할지어도 '난 너를 항상 응원해!'하며 내 어깨를 으쓱이게 만들어주는 친구들은 나의 일순위 자랑거리이다. 얼마전 친구가 주변에 본인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너무 많아 피곤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들 그렇게 변하는가보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려하지 억압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학생 때나 직장인인 때나 크게 다를 것 없이 컨텐츠 가득한 친구들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이런 감사하고 존경하는 친구들의 씨앗을 나는 여향에서 많이 얻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배움을 사랑하는 그들은 그대로인 듯 항상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업데이트가 없는 앱이 엄청난 버그를 내듯 새로움이 없는 사람은 만나면 재미가 덜하다. 좋은 건 가지고 있되 삶의 지혜와 연륜을 더해가는 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나는 내가 대학생활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패기 넘치는 3등석 침대칸, 인도여행


얼마 전, 여향 친구 셋에 대학 동기 하나를 더해 한강에서 텐트를 치고 맥주를 마신 적이 있다. 내가 사는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보면 모를 수 없는 이들! 여향친구 DK오빠, 홍오빠, 욱이 그리고 동기 퐝이는 나의 1순위 여행크루라 일전에 함께 여행갔던 안면이 있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이런 저런 여행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번뜩 내가 '6월 셋째주 주말에 나 충주가는데 같이 갈래?'라고 물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DK오빠, 홍오빠, 욱이가 핸드폰을 뒤적거려 스케줄을 확인하더니 나와 충주에 함께 갈 수 있을지의 가능성들을 차례로 이야기해줬다. 스케줄이 있는 사람은 아쉬워하고, 스케줄이 없는 사람은 내 여행계획을 적어놨다. 그리고 다른 여행에 함께할 생각 없냐며 이야기들을 풀어갔다. 우리에겐 일상인 이야기들이 동기인 퐝에겐 웃겼는지 '이래서 다들 친구구나. 보통 쟤가 저렇게 얘기하면 또 놀러가냐고 뭘 같이가냐 한 마디 하는데 이 사람들,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주다니!!'하는 것이 아닌가.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도 여향은 여향인가보다. 여행 얘기는 뭐 하나 흘려듣는 것이 없으니 우린 자주 여행한다. 결국 나는 홍오빠와 6월 셋째주에 충주를 다녀왔다. 다른 이들이 왜 못갔냐고? ... DK오빠는 동호회사람들과 워터파크로, 욱이는 가족들과 오대산으로 여행을 간다나 뭐라나. 못말린다, 그들의 여행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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