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캉스, 사랑, 미래
1. 놓은 것
프랑스어인 'Vacance'는 영어의 'Vacant'와 이어진다. 휴가, 휴식, 비어있음. 올 한 해 나의 해는 업무적 바캉스였다. 올 한 해 어떤 일을 했을까 생각해봤는데 그야말로 번아웃이었다. 작년까지 많은 것을 불태우고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던 시기라고나 할까(번아웃 증후군 : 한자어로 소진.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의 통칭. 정신적 탈진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출처: 나무위키).
작년은 해외여행만 4번을 했고 수없이 국내여행을 했다. 수료증을 서너 개는 받았고 돈 버는 일을 해야 하니 돈 버는 일도 멈추지 못했다. 봉사활동도 했고 새로운 일과 업무에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쉼이 없는 주 7일을 지내다 보니 결국 병이 왔다. 아무리 즐겁고 재밌는 일을 할 지어도 몸은 멈추어야 할 시기를 정확히 알았다. 그것의 연장선인 듯 2017년에는 의욕이란 놈이 찾아오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던 놈이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더라.
무기력증이란 건 꽤나 멋있으면서도 무서운 것이었다. 나에게 절대적 쉼과 생각할 여유, 멀리서 바라볼 여유를 주는 동시에 정말 모든 것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함께 안겨주었다. 일도 하기 싫어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어졌다. 그냥 평생 이렇게 잠만 자면서 뒹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 해는 나에게 그런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랬더니 지금 의욕이란 것이 살포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삶과 함께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이 나는 가장 어렵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생각하는 것은 항상 내 마음을 흔든다. 이걸 잘 하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하찮은 존재가 되는 것 같고, 도움이 되는 사람인 것 같다가도 민폐만 끼치는 사람인 것 같은 생각이 들쑥날쑥 오고 간다.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니 받아들이자 마음먹고도 쉽지 않은 것이 자아성찰인 것 같다. 그래서 도를 닦아야한다고 하는 것인가.
2. 얻은 것
올 한 해 나는 실컷 연애했다. 일생에 없을 것 같았던 것이었는데. 연초 우연히 내게 불타오르는 사랑이 왔고 나는 그 불덩이 속에 자발적으로 들어가 온몸을 흔들었다. 이런 감정을 다루는 것도 쉽진 않았다. 업무적으로는 비어있었지만 감정적으론 넘쳐흘렀으니 2017년을 완전히 바캉스라고 할 수는 없겠다. 끓어오르는 감정들이 즐거웠다. 다행히 난 화가 많거나 싸움을 좋아하는 성질이 아니라 상대와 그닥 싸우지 않았다. 사랑이 넘쳐흐르다 적정 수준이 되고 안정되었다 해서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냥 사랑했다.
순간의 사랑들을 만끽하느라 다른 것들에 신경을 덜 썼을 법도 하다. 그게 삶의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글을 많이 써 놓았더니 갈무리에 쓸 내용은 많지 않다. 그냥 마무리하자면, 일생의 사랑인 나의 그를 만나 즐겁게, 나답게 연애하고 있다. 사랑과 감정, 결혼 그리고 앞날에 대한 고민을 덕분에 더 많이 하게 되었고 결혼을 삶에 고려하지 않던 내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과도기 단계까지 왔다. 앞으로 배울 것이 참 많다.
3. 갖고 싶은 것
사고하는 방법, 사유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삶은 치열하고 매 순간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이야기했더니 아빠가 철학을 공부하라고 일러줬다. 삶의 무게가 점점 늘어난다고 이야기했더니 자신만의 철학을 세워야 흔들릴 때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혼자는 쉽지 않았다. 공부를 할 친구들을 모으고, 천천히라도 읽고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글을 많이 써야겠다. 나의 비전을 기록해둔 글들을 보며 나는 부정적이고 이기적인 생각들을 많이 고쳤다. 4년 전, 5년 전의 페이스북과 브런치 글들 그리고 수필 일기장을 보며 과거의 나에게 많은 일침을 당했다. 올해 글을 많이 쓰지 못했다. 행복하면 글이 안 써진다더니, 배가 불러 글이 써지질 않았다. 고뇌는 줄었고 순간과 단순함이 내 손목 위에 무겁게 붙어 글쓰기를 막았다. 그래서 좀 단순한 글이라도 쓰자하여 일기장을 집어 아무 거나 끄적이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남겨보기도 했다. 블로그에 후기글 같은 것도 써봤는데 이렇게라도 기록에 손을 놓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싶다. 30살에는 공부를 시작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이것저것 경험하던 것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요 근래에는 안정적인 삶과 돈을 벌기 위한 궁리를 더 많이 했던 것도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리고 지금 공부를 더 해볼 생각을 하고 있다. 기억력이 감퇴되고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머릿속에 오래 저장되지 않는 지금.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교육 관련 콘텐츠였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재밌게 교육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아 재밌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어떻게 해도 좋았다. 음식도, 여행도 좋아하지만 그것들은 나를 고민하게 하기보단 소비하게 했다. 결국 내가 나와 주변을 위해 쏟을 수 있는 열정은 교육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한다.
책바에 왔다. 역시 나오니 글이 잘 써진다. 발리 여행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밖으로 나오고 많이 표현해야겠다. 세상아!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2017년 많은 일이 있었고 행복했다. 2018년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