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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Nov 19. 2018

2008년 11월 13일 목요일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날


무언가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면, 그게 무엇이니?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수능이었다. 수능날이 다가오는 올 해도 나의 수능 생각이 계속 난다. 수험생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그들에게 무엇을 얘기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내가 다시 고등학교를 다니면 무엇을 하고 싶나 종종 떠올린다. 


중3 말부터 고3 말까지는 내가 제일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었다. 필사적으로 공부했고 항상 하고 싶은 것이 뚜렷했던 나는 명확한 목표를 세워 내가 되고 싶은 것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했다. 아침 7시에 학교를 가서 아침 자습을 하고 수업을 듣다가 점심을 후다닥 먹고 점심 자습을 했다. 오후 수업을 듣고 석식을 먹은 후 바로 학원으로 달려가 또 수업을 듣고 12시에 학원이 끝나면 독서실에 들어가 공부한 것을 정리하다 1시 30분에 나왔다. 이런 생활을 3년이나 했는데, 억울해본 적도 이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근데 난 수능을 내 마음대로 보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내 깜냥이 그 정도였을 지도 모르지만 내가 원하는 학교와 과를 쓸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잘 보았던 성적이지만 난 내 노력에 비해 성적이 안 나왔다 생각했었고, 내 삶을 치열하게 비난했다. 19년 인생 처음으로 사람이 죽고 싶은 마음은 이럴 때 일어나는구나 생각했다. 다행히 나에겐 좋은 부모님들이 계셨기에 잘했다 칭찬받았고 네가 붙은 대학이 네가 가고 싶은 대학보다 훨씬 좋은 곳이니 걱정하지 말고 다니라 했다. 다니고도 정 아니면 수능을 한 번 더 볼 수 있게 지원도 해주신다는 말을 들으니 큰 위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 그리 실망할 일이라고 만날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었을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3년이 조금 억울하다. 공부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건 도대체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휴가철에도 방학에도 특강을 들어가며 숙제에 치여 살던 그 시절의 시간들은 누가 만든 것일까. 엄마 아빠는 공부하라고 나에게 강요한 적도 없었는데, 고등학생의 나는 정말 욕심이 많았다. 누군가의 월급 이상의 돈을 학원비에 쏟아가며 했던 공부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때 그 시절을 통해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뭐든 내가 하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내가 계획을 짜서 그 계획대로 실행하고, 성적이 올랐던 경험은 나에게 엄청난 아드레날린을 선사했다. 중3 때 백지상태로 시작해서 고등학교 3학년 수능까지 나는 성적이 계속 올랐다. 바닥에서 시작했으니 성적 오르는 재미가 얼마나 좋았는지. 그거에 휘말려 공부했던 것 같다. 공부하면 성적이 올랐고 학교 선생님이 좋아해 줬으며 나 스스로도 대견했다.


근데, 그게 참 과했다. 성적을 받기 위해 맹목적으로 공부했고 주변 사람들을 많이 괴롭혔다. 학원 선생님을 닦달하여 풀 수 있는 모든 수학 문제를 풀었지만 나는 결국 만점을 받지는 못했다. 나중에 내가 학습법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건 내가 멈추지 않고 앞으로만 돌진했기 때문에 끝까지 나의 단점을 보완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내 단점을 보기 싫어했던 나는 칭찬을 듣기 위해, 그리고 나에게 당당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 풀어내긴 했지만 멈추고 돌보는 연습을 하지 못했다. 목적만 생각하고 달려가기만 했었다.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과 마주하면 항상 어떤 말을 해주는 것이 좋을까 고민한다. 꿈을 꾸어라, 꿈을 가져라! 하는 말들은 아이들에게 더 큰 실망을 남겨주지 않을까 싶어 고민이 된다. 열심히 살아라, 노력하여라! 하는 것들도 너무 맹목적인 삶을 살 게 할까 걱정이 된다. 아직 많이 살지 않았지만 우린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우린 모두가 멋진 삶을 살 것이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실은 세상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는 다양한 것을 많이 배우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냥 내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만약 내가 2008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공부하는 데 성적보다 공부하는 과정을 배우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걸 하기 위해 필요한 목표를 설정한고, 그 목표에 맞게 장기, 중기, 단기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정하는 것을 배울거야. 주변에 정보를 모으고 책을 읽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음 좋겠지? 그리고 결국 원하는 목표를 이루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스포츠맨십도 배우는게 수능일 것 같아.


이왕 공부하는거, 공부 과정을 즐겨봐. 수학, 사회, 과학, 역사 심지어 기술가정 수업까지도 지금 돌아보면 재밌는 지식들이었는데 그걸 왜 그땐 그렇게 크게 보지 못했나 싶은 생각이 나는 지금 들거든. 역사적 사실을 알고, 그와 관련된 박물관을 가보고 싶어. 수학자들의 생각 과정들을 따라가며 그들의 사고력을 배우고 싶어. 자전거의 원리를 배워서 내 자전거는 내가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 때 모든 것을 궁금해하며 공부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많이 생각하거든-'



참, 수능이란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매년 수능이 되면 내 수능이 생각나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가득해서 그런 것도 같다. 수능도 '또한 좋은 경험'이니까, 앞으로 또 다른 경험들을 만들어 가는 좋은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화이팅,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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